감기

by 물빛

감기는 병명은 아니다. 기침을 하거나 몸이 으슬으슬한 오한을 느낀다거나 콧물이 나는 등의 나쁜 증상이 있을 때 두리뭉실하게 편의상 감기라고 통칭한다. 우리 가족은 알러지성비염이 있다. 주로 일교차가 심한 환절기에 심해진다. 지난겨울은 수능날도 춥지 않을 정도로 예년에 비해 포근한 날이 지속되더니 갑자기 강추위가 닥치고는 감기몸살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병원에서 평소처럼 알러지성 비염이라고 했는데, 2주가 넘어도 나을 듯 말 듯 낫질 않더니, 어느새 축농증이 되었다고 했다. 연말이 지나 새해가 되어 며칠이 지났는데도 콧물을 킁킁거리고 콧속이 아팠다. 처방받았던 약을 다 먹었는데, 병원 갈 타이밍을 놓쳐서 주말을 지내면서는 꼭 다시 진료를 보고 약을 더 먹어야 할 것 같았다. 큰아이와 함께 중요한 약속이 있는 날이라 아침에 병원에 가기는 곤란했다.


아이가 어릴 때 다니던 영재원 원장선생님을 만나 뵙기로 했던 날이다. 당시에도 아이들을 참 예뻐해 주셨었고, 졸업 후에도 성장과정에서 따뜻한 위로와 조언을 아끼지 않으시던 분이시다. 선생님 댁에서 좀 먼 곳이지만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이 있고, 대화하기 적당한 곳으로 정했다. 몇 년 만에 부쩍 어른이 되어버린 모습에 놀라면서도 잘 자랐다고 칭찬과 격려를 해주셔서 기운 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게다가 아이의 진학을 축하하는 뜻으로 오랜 기간 아끼던 물건을 챙겨주셨다. 20년이나 기념으로 보관하고 계시던 찻잔 세트였는데, 선생님보다 아이에게 더 잘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하셨단다. 시간 내어 주신 것 만으로 감사한데, 더더욱 의미가 있었다. 선생님을 댁으로 모셔드리고 돌아오는데, 예정보다 훨씬 시간이 지나있었다. 아이의 이후 일정도 변경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우리 둘 다 연신 미소를 띠며 이야기를 하느라 조급한 마음은 들지 않았다. 집에 들어왔을 때 온기가 느껴지며 살짝 코가 킁킁대는 느낌이 왔다. 얼른 나잘스프레이를 뿌리고 연고도 짜서 넣으며 생각했다.


어쩌면 감기도 마음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감사로 채워지니 약을 안 먹어도 괜찮아질 것 같은 기분이 들잖아. 단순히 플라시보효과가 아닐런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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