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

by 물빛

기회는 항상 열려있는 것은 아니었다. 좋은 학교에 입학하거나 안정된 직장을 잡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모두가 노력한다고 해서 그 기회들을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생에는 수많은 선택의 기로가 있다. 사실 살아간다는 것은 매 순간 선택을 하고 그쪽으로 발걸음을 향하는 것이다. 무엇을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삶이 되는 기회. 내 인생에는 그런 기회 중 놓치기로 결정한 것이 두 번 있다.


첫 번째 기회는 미국으로 이주할 수 있는 기회였다. 남편의 회사에서 보스턴의 회사를 인수했었다. 미국 사업을 맡을 적임자를 물색하던 중에 남편이 물망에 올랐다. 이미 남편은 업무를 위해 미국에 몇 번 출장을 다녀오곤 했었고, 인수 후에는 두 달 정도 장기 출장을 가게 되었다. 우리는 정말 진지하게 미국이주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학위 과정 중에 있었고, 졸업 요건 중 논문 하나만 남겨두고 있었다. SCI급 논문을 써야 하지만, 모아둔 결과를 잘 정리하면 논문을 쓸 수 있을 것이었다. 학위 논문도 그간의 데이터를 모아서 작성하면 될 것이었다. 이주를 염두에 두고 지내며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온 어느 날, 우리는 새로운 상황에 직면했다. 둘째가 우리에게 찾아온 것이다. 당시에 학교 교직원에게 제공하는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교직원으로서의 생활에서 혼란을 느끼던 터라 망설임 없이 상담을 신청해서 몇 달간 진행하던 터였다. 출산시기를 생각하면 미국행을 접는 것이 맞았다. 남편 역시 출장에서 미국행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고 돌아오기도 했기에, 그동안의 직장에서의 심리적 불편함이나 미국이주를 위한 고민 모두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두 번째 기회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직전에 왔다. 나는 둘째를 낳으며 학교 일을 그만두었다. 복직을 앞두고 둘째를 돌봐줄 베이비시터를 구했다. 큰 아이는 친정 엄마가 봐주셨었는데, 둘째를 낳자마자 아빠회사에서 일을 하기로 결정하셨다. 그 해 봄 큰 아이를 학교부속 어린이집에 입학시켰는데 적응이 쉽지 않았다. 원장선생님, 담임선생님과 여러 번 상담을 해보고서 결정했다. 결국 전업을 선택하고 아이는 어린이집을 그만두게 했다. 나에게는 아이의 마음의 안정이 더욱 중요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대신 학과 교수님은 연구에 연구원으로 기용해 주셨다. 비정기적으로 교수님을 뵙고 상의를 하곤 했다. 큰 아이의 입학을 앞두고 있던 해에 교수님이 제의를 해오셨다. 이전 학위 대신 교수님 아래 새로운 학위를 시작해서 함께 연구하는 것이 어떠냐 하는 것이었다. 사실 제안을 받고 너무 설렜다. 이전의 전공은 데이터를 모아두긴 했어도 실험실 생활이 좀 더 필요한 일인데 반해, 새로운 전공은 교육학이라 꼭 실험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어서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몇 달을 고민했는데, 아이들을 보며 나는 또다시 아이를 선택했다. 주변에서 도와줄 이도 없고, 남편도 없는 상황에 다시 공부하기 위해 학교로 돌아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정말 눈물이 핑 돌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들은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한 존재였고, 아직은 내 손길을 필요로 했다.


가끔 생활이 팍팍하다는 생각이 들 때면, 그 두 번의 기회를 생각한다. 과연 그때 그 기회를 잡았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상상해 본다. 크게 아쉽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기회로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새로운 꿈을 꾸게 한다. 이제라도 다른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하고. 새로운 습관을 들이고 있고, 또 내 안의 능력을 차곡차곡 쌓다 보면, 놓치고 싶지 않은 기회가 다가올 때 꽉 움켜쥘 수 있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좀 더 내실을 다져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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