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이 되던 해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피아노 학원은 요즘의 유치원 역할을 하던 곳이었다. 아침에 가면 이론 수업을 하고, 피아노 실기를 했다. 연령별로 있던 반들이 다 모여 합동수업을 하기도 했다. 나에게 피아노는 너무나 즐겁고 재미있는 것이었고, 4학년이 되면서부터는 집안 행사의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사촌 오빠의 결혼식 날이었다. 예식 후에는 모두 할머니댁에 모였다. 첫 번째 결혼식 연주였어서 잔뜩 긴장을 했었지만 뿌듯한 마음도 있었다. 혼자 흥얼거리고 있는데, 그 집 큰오빠가 말을 걸었다. 나보다 열한 살이 많은 오빠라 대학생이어서 한동안은 자주 보지 못했었다.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다가 나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오빠는 곧 물어왔다. “클래식 음악이 뭔데?” 늘 듣고 연주하던 모차르트나 베토벤 같은 음악이라고 대답하긴 했지만, 그 질문은 한참 동안 내 마음을 찜찜하게 했다.
꼬맹이가 몇 년간 피아노를 배웠다고 해서 음악의 다양한 장르를 잘 알 리가 없었다. 내가 연주를 하고 음악을 좋아하니 언젠가 아빠가 턴테이블을 들여주셨다. 집에 있던 음반들은 콩쿠르 준비를 위해 내가 듣고 익히고 연주해야 하는 곡들이었다. 집안의 어른들은 딱히 음악을 찾아 듣거나 즐기는 분들이 아니셨다. TV의 음악방송을 보며 대중가요를 듣고 흥얼거리는 게 전부였다. 집에서도 친척들이 모여서도 장기자랑하듯 노래를 시키고 잘한다며 손뼉 치며 즐거워하시기만 했다.
그 당시의 내게 클래식은 노래가 없는 연주곡이었고, 아무나 연주하기 어려운 곡이었다. 친척들은 모두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다느 것만으로도 칭찬을 해주시던 때였다. TV에 나오는 트로트나 댄스곡 같은 가벼운 곡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빠의 그 질문은 내 머릿속을 계속 쾅쾅 울렸다. 어린 마음에도 단순히 그런 분류를 말하는 게 아닐 것 같았다.
지금이라면 온라인으로 검색하거나 AI에게 물어볼 수도 있을 테다. 정보가 귀하던 그 시절에는 혼자 궁금해하고 답답해하다가 클래식이라 이름 붙인 분류에도 수많은 사조가 있고, 다 다른 성향을 띤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때 바로 명확하게 답하지 못하고 두리뭉실 대답한 것이 못내 아쉽고 부끄럽기까지 했다. 제대로 잘 모르면서도 대중음악에 대한 경시를 깔고 있었던 탓일지도 모른다.
오빠의 그 질문은 살면서 어떤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내게 울림이 되어주었다. 이 말 또는 문제의 정의나 의미는 무엇일까?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의미는 없는 것일까? 감사하게도 문제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어준 것이다. 매 상황에서 깊이 있는 생각이나 사유를 할 수는 없지만, 표면적인 이해에 그치지 않으려는 노력을 조금씩 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