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물빛

한적한 곳에 로스터리 카페를 열면 좋겠다는 꿈을 꾸었다. 나이가 들어 희끗해진 머리를 하고서 느리지만 정성 들인 필터커피를 내려 대접하듯 손님에게 내는 것이다.


내가 처음 상상한 것은 삼십여 년 전 처음 카푸치노를 마셨던 베니스의 귀퉁이 골목 할아버지의 작은 카페였다. 누구라도 햇살 좋은 공간에서 때로는 수다스럽고 때로는 고즈넉한 고요함이 깃든 그런 시간을 보내며 쉴 수 있게 하고 싶은 마음이다. 조금 욕심을 더한다면, 마음을 나누고픈 손님이 있다면,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주어야지 싶다.


이 이야기를 남편에게 했을 때, 남편은 서둘러 폰에 무언가를 꾹꾹 누르더니 잠시 후 말을 했다. AI에게 물어보았단다. 나는 고양이를 좋아하니 ‘펠린커피로스터스’라는 이름을 추천해 주었다. 몇 가지 키워드를 더 넣었더니 브랜드스토리, 캐릭터, 카페스타일, 연계활동, SNS활동뿐만 아니라 굿즈까지 가상브랜딩을 완료해 주었다. 아! 뭔가 내가 꿈꾸던 것과는 멀어져 간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묘한 조합이 형성되기도 한다. AI 녀석, 이젠 정말 꽤 쓸만한가.


단골카페 사장님은 내가 어릴 적 살던 동네에서 카페를 하신다. 꽤 친해진 후 알고 보니 신문사를 퇴직하며 카페를 내셨다. 내게는 굳이 비싸게 배우지 말라며 로스팅하는 방법도 가르쳐주셨다. 원두 다루는 법도 섬세히 알려주셨다. 안 해도 된다고 말씀하시면서도 원두 상태를 보며 손으로는 굳이 불량원두를 골라내는 공정을 하시며, 맛과 향의 차이도 알려주셨다. 지금껏 그 동네까지 원두를 사러 찾아가는 수고를 하게 된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꿈을 꾸는 것은 자유롭다. 이상적이라 완벽하게 행복할 수 있다. 현실화를 고려하는 순간 여러 가지 장벽을 만나게 되지만, 다시 떠올려본다. 스멀스멀 미소를 피어오르게 했던 순간은 무엇이었나. 세련되고 빠른 손놀림의 설렘이 아니라 느릿하고 대충 하는 것 같으면서 아침 인사를 건네던 할아버지의 여유에서 진한 커피 향과 밝음과 안락을 동시에 마시지 않았던가. 오늘 하루도 괜찮을 것 같은 안심. 오늘도 괜찮게 살아낸 것 같은 안도. 무엇보다도 내 마음에 넉넉한 인심이 쌓여야만 가능한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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