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쓰기

by 물빛

내게 오래 쓴 것이라 하면 단연 피아노이다. 내 나이 여섯에 집에 들어온 사십 년이 훌쩍 넘은 친구이다. 내 희로애락을 묵묵히 지켜봐 온 내 친구.


다섯 살이 되던 해에 동네의 피아노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지금의 유치원을 겸한 시설이었고, 집에는 세 살 어린 동생이 있었다. 이제와 생각하면 엄마에게는 조금이나마 숨 쉴 수 있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나는 피아노가 너무나 좋았다. 이론 수업도 재미있었고, 실기수업은 더더욱 재미있어서 집에 와서도 책 뒤에 있는 종이 피아노에 대고 연습을 하곤 했다.


여섯 살이 되며 서울로 이사를 했다. 새로운 동네에서 다닌 피아노 학원은 이전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선생님들이 애살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겨우 일 년 경력의 꼬맹이에게 선생님들은 콩쿠르를 권하셨고, 그 덕이었을까. 여섯 살 여름을 맞기 얼마 전, 나는 생애 처음으로 나만의 것을 지니게 되었다. 피아노는 오직 나만의 것이었다. 동생이 잠시 배우며 같이 사용해야 했지만, 이내 시들해져서 결국 나 혼자 독차지했다.


아홉 살 여름의 초입에 우리 집에는 세찬 바람이 휘몰아쳤다. 아빠의 사업이 부도를 맞았다. 긴급히 이모 가족과 살림을 합쳐 서둘러 이사를 했고, 내 피아노는 이모방에 들어갔다. 온 집안의 물건들에는 빨간색 차압 딱지가 붙었다. 이모방에 있는 내 피아노는 다행히도 빨간 딱지를 피했다. 어쩌면 엄마가 내게 피아노를 부적처럼 남겨주신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피아노를 너무 좋아해서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고 말하고 다니곤 했다. 하지만 전공을 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전공에의 욕심은 진작에 마음에서 내려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아무리 생활고에 시달려도 틈틈이 조율을 해가며 피아노만큼은 지켜주셨다.


어린 시절부터 내 친구였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엄마의 분신이 된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결혼하고도 피아노는 엄마의 소유였다. 신혼집이 작긴 했어도 피아노를 들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못 준다고 하셨다. 직장에 출퇴근으로 왕복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일상이었어서 아쉬워도 내색은 못했다. 그러다 첫아이를 낳고 나자, 엄마는 피아노를 우리 집으로 보내주셨다. 손자가 배울 수도 있으니 "네게 주마." 하시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아이 짐이 많아지니 솔직히 '이제서야 왜?' 싶은 마음도 들었다. 결과적으로는 그 덕분에 아이들도 이 피아노로 피아노를 배웠다.


아이가 중학교 때 수학수업을 원해서 잠시 친구의 동생이 운영하는 공부방에 다녔다. 집에서는 좀 멀고, 대중교통으로는 가기 곤란한 곳이었다. 아이 일정에 맞추어 픽업을 해주다가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공부방 근처 상가를 돌아다니다가 다시 피아노를 배우는 게 어떨까 싶었다. 아이들을 가르쳐주던 선생님께 연락을 했더니, 마침 선생님 어머님이 운영하시는 학원이 근처에 있어서 수업이 가능하다고 하셨다. 아이를 공부방에 내려주고, 학원에 가서 한 시간 피아노를 치고 다시 아이를 데리고 오면 시간이 딱 맞았다. 그렇게 덮어두었던 내 피아노와 다시 마주했다.


매년 피아노 조율을 하면서 소리를 지켜오려 애쓰고 있지만, 이제는 소리가 나지 않는 건반들이 있다. 오래 쓴다는 것은 세월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열정적으로 대하다가도 어느 순간 다툰 듯이 등을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삶을 함께 묵묵히 견뎌가는 것이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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