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고등학교 때 교련수업이 있었다. 1학년 1학기에는 삼각건, 2학기에는 붕대 처치법을 배웠다. 둘 씩 짝을 지어서 서로에게 처치를 해주고 실기시험을 치러야 했다. 2학기 붕대 시험의 내 짝은 나보다 키가 크고, 여리여리하며 예쁜 아이였다. 늘 미소를 잃지 않았고, 정말 참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아이. 우린 도시락을 함께 먹었고, 같이 추가 야간자율 학습을 신청하여 함께 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 시절 유행하던 시화가 그려진 엽서에 손 편지를 적어 주고받기도 했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연습을 하곤 했는데, 시험을 앞둔 주말에는 학교에 모여 연습을 좀 더 하기로 했다.
일요일 아침, 외출 준비를 하는데 엄마가 막아섰다. 나에게는 친구와의 약속도 소중하고, 실기시험도 중요했다. 필기시험만 중요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엄마 마음은 달랐다. 그렇다고 해서 내 약속을 엄마가 마음대로 파기해도 되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처럼 휴대폰이 있는 시절이 아니었다. 엄마랑 실랑이가 길어져 친구네에 전화를 했을 때에는 이미 친구가 집에서 나간 이후였다. 아무런 말도 전하지 못한 채 주말이 지났다. 월요일에 학교에 갔을 때 친구는 말없이 엽서를 건네주었다. 오지 않는 나를 기다리며 속상하고 화났을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적어 준 시 한 편이었다. 미안하다고 거듭 사과했고, 친구도 받아주었다. 무사히 교련시험도 잘 마쳤다. 하지만, 내 마음은 도무지 무어라 설명이 되지 않았다. 2학년이 되며 우리는 문이과로 나뉘어 반이 달라졌다.
아이가 대여섯 살 즈음에 토요일이면 미술학원에 다녔다. 두 녀석을 수업에 넣고 나면 그제야 나에게는 한 시간 반의 자유가 주어졌다. 그날도 어김없이 학원 근처의 도넛가게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가게 문이 열리고, 늘씬하고 예쁜,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들어왔다. 눈에 띄는 미모여서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갔다. 주문을 하고 맞은편에 앉아 선글라스를 벗는데, 세상에! 그 친구인 거다. 20년이 지나도 오목조목 예쁘고 뽀얀 모습이었다. 항상은 아니지만, 가끔 생각나던 선명한 그 얼굴이었다.
서로 알아보고 안부인사를 하다 보니 미국서 잠시 들어왔는데, 아이가 우리 아이들과 같은 학원에서 체험수업을 하기로 해서 온 것이었다. 한참 일상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떠올라 그 일에 대해 늦은 사과를 했다. 정말 미안했었노라고. 나는 그 일이 계속 잊히지 않았었다고 말했다. 친구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사과는 받아주겠다며 예의 그 환한 웃음을 웃어 보였다. 나도 함께 웃었다. 세월이 지나도 가슴 한켠에 자리 잡은 기억들이 존재한다. 늘 의식하지는 않아도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 말이다. 좋은 일만 있으면 좋겠지만, 내가 잘못한 일, 억울했던 일, 너무 속상하고 슬펐던 일들도 제각각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서로가 마음이 전해지면, 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해결될 수 있는 것이로구나. 친구는 기억에 없다고 했지만, 제대로 사과를 하고 친구의 웃음을 대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