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혹시 엉뚱하고 이상한 사람?
오늘 만난 환자는 ADHD가 의심되는 초등학교 저학년 남아였다. "여기 뭐하는 곳이에요?", "저건 뭐예요?"라고 계속 묻는 아이의 텐션이 심상치 않았다. 검사가 끝날 때까지 아이는 그 텐션을 유지하면서 지루함과 호기심을 번갈아 표현하였다. 깔깔대며 웃다가 갑자기 짜증을 내다가 시무룩해졌다가를 몇 사이클 반복하니 검사가 끝나 있었다. 아이고 힘들다.
끝나고는 보호자 면담을 하였다. 어머니는 의자에 앉자마자 우리 아이가 ADHD인지 당장 알려달라고 하셨다. 재작년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ADHD 검사를 제안했는데, 작년 담임은 우리 아이는 그저 밝은 아이이고 ADHD는 아닐 것 같다는 얘길 하셨다며 나보고 심판을 봐 달라 했다. 나는 심리검사가 동전을 넣으면 바로 결과가 나오는 기계가 아님을 에둘러 설명해드렸고, 헷갈림을 줄이기 위해 다시 세세하게 묻기 시작하였다.
정신과 질환은 O, X로 구분하기 참 애매할 때가 있다. 모든 일이 ‘좋다’, ‘나쁘다’의 이분법으로 구분되기 어렵고 스펙트럼 상의 어딘가에 존재하듯이 정신과 질환 역시 정상과 비정상을 딱 잘라서 구분하기는 어려울 때가 있다. 특히 어린아이의 경우는 아직까지 경험이라는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물론 어머니의 입장도 이해가 갔다. 아이의 상태에 대한 모호함과 불확실성은 어머니의 불안감을 증폭시켰을 테고, 명쾌한 해답을 얻고 해결방안을 찾고자 나를 흔들어보셨을 것이다. 그렇지만 중요한 일일수록 신중에 신중을 더해야 하는 법이기에 나는 오늘도 조심스러워진다.
ADHD 아동의 부모는 참 힘들다. 특히 주 양육자의 피로도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보통 아이들보다 몇 배 많은 ADHD 아동의 에너지를 감당하려면 하루하루가 전쟁일 수밖에. 이 아이들의 에너지가 무언가 생산적인 일에 집중되면 좋으련만 어릴 때는 에너지가 대개 엉뚱해 보이는 곳으로만 발산되어 특이한 장난을 치려고 하거나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려고 하니 어른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피드백을 주게 된다. 어딜 가도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는 아이가 안쓰럽다가도, 내 앞에서 방방 뛰며 숙제도, 양치질도 안 하려는 아이를 보고 있으려면 속이 터지고 화가 치밀어 오를 수밖에...
그렇지만 ADHD 성향을 가진 이들에게는 엄청난 보물도 숨겨져 있다. 남들보다 열정과 호기심이 몇 배 많으니 그 에너지를 잘만 쓴다면 보통 사람이 해 내기 어려운 일을 해낼 수도 있다.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 위대한 물리학자 아인슈타인, 다양한 분야에 천재적 업적을 남긴 다빈치, 미국의 41대 대통령 조지 부시, 이들은 모두 ADHD 증상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은 천재가 아니라, 단지 호기심이 강할 뿐'이라며 ADHD 이면의 장점을 멋지게 설명한 바 있었다.
나 또한 산만함이 많은 사람이다. 겉으로는 무척 차분해 보이지만 늘 생각이 딴 길로 샌다. 강의를 듣다가 뭐 하나에 꽂혀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이어지고 우스갯소리라도 들으면 속으로 히죽대다가 정작 중요한 내용을 놓치기 일쑤다. 영화를 볼 때도 남들보다 전체 스토리를 잘 캐치하지 못하는 편이지만, 인상 깊은 장면을 클로즈업하여 기억하는 건 잘한다. 그리고 뭐 하나에 꽂히면 주야장천 파는 것도 있다. 흥미로움에 꽂혀서 빠른 속도로 피아노 연주나 새로운 운동을 해낸 적도 있었고, ‘이거다’싶은 거에 열중해서 깐깐한 시험을 통과해낸 적도 있는데, 이는 분명 내 안의 호기심과 열정이 한마음으로 똘똘 뭉쳐 이룬 결과일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엉뚱하다’, ‘이상하다’, ‘속을 모르겠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바꿔 말하면 사실 개성과 창의력을 의미하는 거였다. 창의력과 개성은 ADHD 아이들에게 숨겨진 보물 같은 거다.
정신과 치료는 대개 ‘증상 완화’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치료와 별개로 그 사람의 '성격', '성향', '기질'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키워주는 편이 좋다. 나는 '산만한 문제아', '나는 우울한 사람'이라고만 규정짓기보다는 ‘나는 특이하고 엉뚱하고 산만하지만 다른 사람이 못 보는 걸 볼 수 있는 사람’, ‘나는 무언가 하나에 꽂히면 몰입해서 해내는 사람'이란 생각이 자연스레 들 수 있도록 관련된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주는 거다. 또한 '나는 우울한 사람', '나는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이라고만 규정짓기보다는 ‘나는 나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 ‘나는 정서적인 스펙트럼이 넓은 사람’,‘다른 사람보다 감정의 깊이와 폭이 넓은 사람’이라고 자꾸 표현해준다면 내 안에 숨겨진 보물들이 비로소 안심하고 정체를 드러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