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뇌 여백의 미
컴퓨터는 켜고 끄고가 분명한데, 스마트폰은 잘 끄지 않게 된다. 밤에도 무음으로 해놓고 잔다. 끄면 중요한 연락을 놓치거나 정보에서 소외될 것 같다. 세상의 중심에서 나만 벗어난 기분이랄까.
의도적으로 끄지 않는 이상 그냥 켜두는 게 디폴트모드가 된 듯하다.
우리의 두뇌도 비슷한 것 같다. 두뇌 풀가동 = 디폴트 모드가 된 듯하다.
빈 시간, 고요한 적막이 어색하다. 적막은 어느새 불안과 조급함이 잠식해 버린다.
물론 잠잘 때 강제로 두뇌 시동을 끄긴 하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렘수면 기간에는 두뇌 활동이 가장 활발하다고 하지 않던가.
우리의 두뇌에는 40개 이상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있다고 한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인지 과정을 거칠 때 두뇌 활성화 정도가 떨어지고, 휴식할 때 특별하게 활발해지는 두뇌 영역들(내측측두엽, 내측전전두엽피질, 후대상피질, 두정엽피질)을 통칭한다. 우리가 휴식을 취할 때 이 부분이 활성화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멍 때리기, 명상, 잡생각들도 여기에 포함된다.
연구에 따르면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자아 성찰, 기억, 사회성과 감정의 처리, 창의성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나의 행동과 상황을 돌아보는 귀중한 시간은 디폴트모드에서 시작된다.
쳇바퀴 같은 일상에 '의미'를 부여해 주고, '성장'을 가속화하는 것은 쉴 새 없이 정보를 습득하고 신경을 집중해 멀티태스킹을 하는 상태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무 생각 없이 뇌 활동을 멈춘 상태에서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는 생산성을 향해 달려가는 기계 혹은 노예가 아니라 그 기계를 의미 있게 다루고 조작하는 인간이기에. 오늘도 오른손에 쥔 스마트폰과 왼손에 쥔 채찍을 내려놓고 잠시 딴 세계로 가 본다. 나의 방향과 속도를 점검하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