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현대미술의 거장 : 마이클 크레이
벚꽃이 활짝 필 무렵, 예술의전당에서 색다른 전시회가 하나 열렸다. 바로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展이라 하여 영국의 현대미술 거장의 전시로서 전 세계 최초로 열리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전시는 4월 8일에 시작해서 8월 28일까지 진행하는데 오픈한 첫 주말인 4월 10일에 방문하여 관람하게 되었다.
개념미술 선구자로 알려진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Michael Craig-Martin, b. 1941)은 개념미술의 1세대 작가로 알려져 있다. 개념미술이라고 하는 의미는 쉽게 말하면 작가의 아이디어가 중요한 미술을 뜻하고 있다. 자신이 직접 작품을 제작하고 만들지 않더라도 아이디어(개념)만 있다면 그것이 작품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개념미술이 조금 어려워 접근하기가 쉽진 않았는데 이번에 열린 전시를 통해서 개념미술에 대해 구체적으로 배워 볼 수 있는 전시가 될 것 같아 들뜬 마음으로 방문하게 되었다.
맨 첫 공간에서 탐구라 하여 예술의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공간이다.
남성용 소변기를 '샘'이라는 제목을 붙여 전람회에 출품했던 마르셀 뒤샹으로 인해 미술계는 파격적인 이슈를 일으켰고 뒤이어 나온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참나무 (An Oak Tree 1973)'는 벽면에 선반과 물 한 잔을 올리고 물컵을 참나무라고 명명한 것이 개념미술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그 시발점인 참나무라는 작품과 간결한 선으로 표현된 초기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사실 물 한 잔이 어째서 참나무가 되었는지에 대해 접근하려고 하면 굉장히 어렵다. 비본질적 요소의 변화는 전혀 없다. 상징 또한 아니다. 외형은 결국 물 잔이랑 똑같아 이를 증명하기에는 어렵다. 단어를 바꾼 것도 아니다. 그냥 본질을 변화시킨 것뿐이다. 이는 그가 그렇게 정했기에 이 사실은 누구도 바꾸지 못한다. 저건 참나무가 아니라고 해도 이미 작가에게 있어서 이 물 잔은 참나무이기 때문이다. 참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설명하고자, 그리고 다른 관람객들에게 이해시키고자 질문과 대답을 하는 인터뷰 형식의 글을 읽을 수 있지만 글만 본다 해서 이 전체의 개념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작가 또한 이를 완전히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고 하는데 어찌 잠깐 보는 사이에 이 깊이를 깨닫게 될 수 있을까. 본질을 변화시켰다고 하는 이 자체가 바로 개념미술적인 해석의 결과이다. 해석은 관람객의 몫이니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느냐는 결국 이를 바라보는 관람객에게 달려있다.
두 번째 공간은 크게 언어라는 주제로 나뉘어있다. 글자는 뜻이 있는 하나의 언어가 아니라 그저 오브제라고 생각하면 된다. 알파벳 모양 자체를 활용한 이미지 작업이라고 생각하면 더 편할까, 그러다 보니 알파벳의 글자와 그림 사이에는 어떠한 연관 관계도 없다. 하지만 사람은 꼭 이런 부분에 있어 연관성을 찾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나도 모르게 그림을 보며 이건 뭘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요소들을 하나씩 분해해보며 바라본다. 아무런 뜻이 없고 아무런 내용이 없기에 아무런 생각이 없이 볼 수 있기도 하다.
일상을 보는 낯선 시선, 보통의 것을 또 다르게 해석한 공간으로 보인다. 공산품을 주로 그림을 그리는 마이클 크레이크 마틴은 일상의 평범한 물건의 성질을 이해하는 게 삶의 본질에 더 가까이 간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색이 화려하기에 뭔가 처음에는 팝아트를 연상했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팝아트적인 느낌이 들도록 한 이유는 과감한 색과 미니멀한 라인을 강조하기 위한 시각적 효과일 뿐, 좀 더 개념적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도 있는 것 같다. 친숙한 물건을 선과 색으로 변화시켜 사물의 본래 의미는 지워버리고 새로운 의도를 부여하여 이 물체는 원래 알던 것이 아닌 또 다른 것으로 인지되게끔 만드는 해석의 과정을 보며 개념미술에 대한 접근을 더 가까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들의 규모는 생각보다 크다. 그리고 엄청 깔끔하다. 이걸 손으로 그렸다고?라는 생각이 들 만큼 깨끗하게 그려져있다. 다른 사람이 본다면 선과 색으로만 그림을 그렸다고 생각할 수 있고 다자인을 하는 사람이라면 컴퓨터가 그려낸 것 같은 느낌이 들 만큼 정교하다. 그래서 개념미술에 대해 어럽고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이런 심플한 작품들을 감상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좋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회화 말고도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여러 작품을 만든 사람이다. 하지만 매체는 다르더라도 그 내용은 하나이다. 어떤 서사, 이야기, 내용, 뜻을 부여하지 않은 채 이미지로만 보는 것, 이런 작품은 그에게 있어 하나의 놀이와도 비슷하다. 그래서 그의 그림들은 신기하다. 마치 라인 아트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반복적으로 나오는 이미지들을 합쳐 또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기도 하며 여기에 주어진 색을 변형 시키거나 살짝 각도를 비틀어서 여러 각도로 보기도 하며 재미있는 놀이를 만들어 나가는 것 같은 작품들이 보인다. 예술적 놀이라는 것은 장르의 한계를 넘나드는 그런 즐거움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번에는 경계에 대한 전시 섹션이다. 프레임은 정해져있으나 이 프레임 안에 자신이 그릴 물건을 맞추지 않고 오버해서 그림을 그린다. 마치 클로즈업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겠지만 이는 경계라고 부르는데 보이지 않는 부위를 그림을 보면서 상상해서 채워 넣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일부분만 보고도 그림의 주제를 알 수 있다는 점, 등을 보며 흥미로 음을 느낀다고 한다. 일부분만 보고도 이 그림이 뭔지 딱 느낌이 오는 것도 있고 배경이 하얗다 보니 흰 배경이 마치 그림을 상상 속으로 이어 그릴 수 있는 도화지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다. 잘린 부분들이 모여져 있으니 오히려 부족하다기보단 꽉 차 보이는 느낌이 들기도 해서 재미있었다.
마지막으로는 결합이다. 익숙하지 않은 관계가 주는 연관성이라 하여 완전히 연관이 없는 것을 모아 작품 안에 재미있게 구도를 배치하여 원근법을 주기도 하거나 크기를 줄이거나 늘리는 등으로 공간을 표현한다. 연관성을 지금까지 전혀 배제시키고 생각하였지만 여기서는 서로 스토리텔링을 부여하기도 한다. 주어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아무 상념 없이 물질을 바라보는 일이란 쉽지 않다. 인간관계를 찾기 위해 꼭 왜?라는 질문을 던져 해결책을 찾고 싶어 하는 마음 때문일까. 이런 상념에서 벗어나 그저 그림을 바라보기만 하면 또 다른 상상력을 만들어주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개념미술에 대해 어렵다고 생각을 하고 방문했지만 오히려 잡생각이 더 없어지는 것 같다. 많은 생각과 많은 상념을 가지게 만들 것이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오히려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 그로 인해 생각하지 않고 주어진 대로 그림을 바라보게 만드는 것 같다. 많은 생각 끝에 도달한 결론은 결국 원래 주어진 고정적 개념을 탈피하려는 시선을 알려주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이런 의도는 성공적으로 많은 아티스트들에게 전달되어 데미안 허스트, 줄리안 오피, 사라 루카스, 게리 흄, 트레이시 에민 등 '영국의 젊은 예술가'(yBa)들에게 개념 미술의 방향을 제시해 주게 된다. 현재 활동하는 최고의 현대미술 작가들에게 영향을 준 개념미술의 시작을 직접 눈으로 감상하며 82세 작가의 예술 인생을 한 번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게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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