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삼켜버린 조리원, 그리고 황달이란 이름의 노란 공포
“식사 나왔습니다. 식탁에 두었습니다.”
철컥. 소리조차 내지 않고 닫히는 문 너머로 단조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작은 원형 식탁에 덩그러니 놓인 식판 하나가 나를 반겼다. 한때, 이곳은 ‘천국’이라 불리우던 조리원.
하지만 24시간 마스크를 써야 하고, 보호자는 오직 남편 한 사람만 출입이 허용된 코로나 시대의 조리원은 천국이라기보다는 세련된 ‘독방’에 가까웠다.
그 4평 남짓한 방은 나에게 이중적인 공간이었다. 문밖을 나서는 순간 마스크는 생명줄이자 족쇄가 되었지만, 무거운 문을 닫고 들어온 방 안에서만큼은 유일하게 마스크를 벗고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었다. 수유실마저 폐쇄된 탓에 모든 수유는 방 안에서 이루어졌다.
“어머니, 아기 배고파해서요.”
전화가 오면 나는 서둘러 마스크를 쓰고 아이를 데리러 갔다. 좁은 방 안에서 아이의 주린 배를 불리며, 둘만의 숨결을 나누는 그 짧은 시간만이 나의 유일한 해방구였다.
하지만 그 평화로운 해방구마저 침범하는 건 매일 아침 들려오는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였다.
매일 아침 아기들을 회진한 의사 선생님이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평소 같으면 아이의 안부를 전해주는 반가운 소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몸에 노란 공포, 황달이 드리운 뒤부터, 그 노크 소리는 내 부족함을 꾸짖으러 오는 '심판의 시간'처럼 느껴져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아침 회진 시간이 다가오면 나는 마스크를 다시 고쳐 쓰고 죄인처럼 앉아 문밖의 발소리에 귀를 세웠다. 내 방 문 앞에 멈춰 서는 발소리, 그리고 어김없이 들리는 노크 소리. 문이 열리자 의사 선생님은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어머니 혈액형이 어떻게 되시죠? RH+ 맞나요?”
“지금 모유 수유 중이신가요? 얼마나 먹이고 계시죠?”
반복되는 질문은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가슴에 박혔다. 내 혈액형 때문에, 혹은 내가 먹이는 이 모유 때문에 아이의 수치가 떨어지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자책감이 밀려왔다. 방 안에서 아이와 마주하며 행복해했던 시간조차 괜스레 죄스럽게 느껴졌다.
결국 아이의 황달 수치는 15.0을 찍었다. 아이는 신생아실 유리창 너머 푸른 빛 아래 홀로 누워야 했다. 면회조차 조심스러운 시국, 갓 태어난 작은 몸에 커다란 안대를 씌운 채 광선 치료를 받는 아이를 보며 나는 유리창에 이마를 댄 채 숫자의 노예가 되었다.
14.8, 15.2, 다시 15.0. 소수점 아래 0.1의 변화에 내 세상은 무너졌다 일어났다를 반복했다. 매일 아침 방으로 찾아오는 의사 선생님의 발걸음은 점점 더 무겁게 느껴졌고, 급기야 최후통첩과 같은 경고가 날아들었다.
“어머니, 오늘도 수치가 떨어지지 않았네요. 내일 아침에도 이 상태면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야 합니다. 소견서 써드릴 테니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대학병원이라니. 태어난 지 열흘 남짓되는 아이의 몸에 링거 바늘을 꽂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눈앞이 아득해졌다. 남편의 면회가 가능했지만, 그마저도 서로의 불안을 확인하는 시간일 뿐이었다. 코로나라는 거대한 장벽과 황달이라는 노란 공포의 감옥. 나는 그사이에서 철저히 고립되어 있었다.
퇴소를 하루 앞둔 마지막 날 아침. 나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의사 선생님의 발소리를 기다렸다. ‘똑똑’. 마침내 문이 열렸고,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 어떤 음악보다 감미로웠다.
“어머니, 수치가 12로 뚝 떨어졌어요! 오늘 치료 끝내고 내일 같이 퇴소하셔도 됩니다.”
그제야 꽉 막혔던 숨이 터져 나왔다. 4평짜리 독방의 창문 너머로 쏟아지는 햇살이 비로소 따스해 보였다. 비록 조리원 동기들과 미역국 한 그릇 나누지 못한 쓸쓸한 조리원 생활이었지만, 나는 그 고립된 시간 속에서 매일 아침 의사 선생님의 질문에 답하며 배웠다.
아이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숫자에 가슴 졸이고 대답을 준비하는 일뿐일지라도, 그 간절함 자체가 엄마가 되어가는 첫 번째 수업이었다는 것을.
독방의 문이 열리고 밖으로 나가는 길, 나는 아이를 품에 꼭 안았다. 0.1의 수치에 일희일비하던 그 지독한 ‘노란 공포’는 끝났지만, 이제 진짜 실전 육아라는 더 거대한 행복의 감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