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유, 예정에 없던 작별
조리원을 나서는 길은 해방인 동시에 두려움이었다. 0.1의 수치에 일희일비하게 만들던 황달의 공포로부터는 벗어났지만, 그 대가로 나는 ‘잠시만 끊어보자’는 의사 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모유 수유를 멈춘 상태였다.
아이의 눈동자가 다시 맑아지는 것을 보며 안도했지만, 유축으로는 완전히 해소되지 못한 내 가슴은 돌덩이처럼 단단해져 갔다.
“이제 수치도 안정권이니 다시 직수 시도해 보세요.”
그 한마디에 나는 다시 설레는 마음으로 아이를 품에 안았다. 다시 내 숨결을 나누고, 아이의 입술이 내 몸에 닿는 그 경이로운 교감을 기대하며 조심스레 가슴을 내어주었다. 하지만 아이의 반응은 내 예상과 전혀 달랐다.
아이는 내 가슴이 닿자마자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낯선 이물질이 몸에 닿기라도 한 듯, 작은 머리를 매몰차게 돌리며 나의 가슴을 밀어냈다. 황달 치료를 위해 며칠간 맛보았던 실리콘 젖꼭지의 매끄러움에 익숙해진 아이에게 엄마의 살결은 이제 불편하고 힘겨운 노동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날부터 전쟁이 시작되었다.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완모가 엄마의 도리라고 굳게 믿었던 나는 아이를 달래고 어르고, 때로는 아이와 함께 울며 억지로 가슴을 물렸다.
하지만 아이는 단호했다. 젖병이 아니면 차라리 굶겠다는 듯, 식음을 전폐하며 울다 지쳐 잠들기를 반복했다.
서랍 속에 숨겨둔, 포장도 채 뜯지않은 젖병과 배고픔에 헐떡이는 아이. 그 사이에서 나는 길을 잃었다. 아이의 고통을 외면하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엄마의 도리’가 무엇인지, 몰려오는 자책감 앞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내가 황달 때에도 직수를 고집했어야 했나?’, ‘내 모유가 맛이 없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나를 할퀴었다. 아이를 살리려고 시작한 단유가, 역설적으로 아이와 나 사이를 가장 멀게 만들고 있었다.
사흘째 되던 날, 퀭해진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다 문득 깨달았다. 아이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집착했던 것은 ‘모유’라는 영양 성분이 아니라, ‘모유 수유를 해내는 완벽한 엄마’라는 나의 허영심이 아니었을까. 내 품에 안겨 평온하게 배를 채워야 할 아이는 지금 고통스러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결국 나는 팽팽하게 당겨졌던 고집의 줄을 놓아버렸다.
“그래, 엄마가 미안해. 이제 안 괴롭힐게.”
따뜻하게 데운 분유를 젖병에 담아 아이의 입에 물렸다.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꿀꺽꿀꺽 소리를 내며 분유를 삼켰다. 아이의 눈가에 맺혀 있던 눈물이 마르고, 비로소 평온한 숨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젖병을 붙잡고 평온하게 잠든 아이의 얼굴. 그토록 원했던 평화였건만, 마음 한구석이 아릿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안도와 미안함이 뒤섞인 복잡한 눈물이 뺨 위로 조용히 흘러내렸다.
예정에 없던 작별이었고, 준비되지 않은 이별이었지만, 그것은 아이를 위한 나의 첫 번째 포기이자 사랑이었다.
돌덩이 같던 가슴의 통증보다 마음의 통증이 더 컸던 그 밤. 며칠 후, 나는 유축기 마저 정리하며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모유를 먹이지 못한다고 해서 사랑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고. 젖병을 통해서도 우리는 충분히 눈을 맞출 수 있고, 따스한 체온을 나눌 수 있다고.
죄책감을 비워내고 나니, 비로소 아이의 맑은 얼굴이 온전히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완벽한 엄마’라는 환상을 버리고, ‘아이의 행복을 먼저 살피는 엄마’로 한 걸음 나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