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5개월, 내 품보다 사회를 먼저 알게 될 너에게

"일하는 엄마라 미안해", 내가 가장 이해못했던 그 말을 뱉던 날

by 윤슬

아이를 낳기 전, 나는 소위 말하는 ‘쿨한’ 커리어우먼을 꿈꿨다. TV나 책에서 심심치 않게 마주하던 “일하는 엄마라 미안해”라는 문장을 볼 때면,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왜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저토록 처절한 죄책감을 앞세워야 하는 걸까.


​일하는 아빠들은 굳이 미안해하지 않는데, 왜 유독 엄마의 일터는 아이에 대한 배신이 되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결심했었다. 복직하는 날, 나는 미안함 대신 당당함을 선택하겠노라고. 나의 일은 너를 위한 희생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완성하는 조각이라고 말이다.


​허나 막상 나의 일이 되어보니, 그 오만했던 결심은 뼈저린 현실 앞에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복직원을 내고 회사 문을 나서는 날, 내 안을 가득 채운 것은 다시 일할 수 있다는 기쁨도, 다른 소속감이 생긴다는 희망도 아니었다. 그것은 차마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날카롭고 시린 죄책감이었다.


​육아에 지쳐갈 때쯤이면 ‘출근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한켠에 솟아오르곤 했다. 24시간 아이에게 저당 잡힌 삶에서 벗어나, 내 이름을 불리며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일터로 돌아간다는 것은 분명 설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설렘이 커질수록, 비례해서 커지는 죄책감은 독한 가시가 되어 목에 걸렸다.


​복직원을 제출하고 돌아온 오후, 유난히도 작아 보이던 아이를 보며 나는 결국 그토록 혐오하던 말을 내뱉고 말았다.


​“미안해, 우리 아가. 엄마가 너무 이기적이지.”


​만 5개월. 뒤집기를 겨우 마친 네가 내 품의 온기보다 어린이집의 낯선 냄새를 먼저 배워야 한다는 사실이 가슴을 후벼 팠다. 내가 사회에서 내 자리를 지키기 위해, 너는 사회에서 너무 일찍 홀로서기를 배워야 했다.
​일하는 아빠들은 무얼 하느냐고 비판하던 예전의 나는 온데간데없었다. 누굴 탓하고 비난하기엔 내 아이의 눈동자가 너무나 맑았고, 그 맑은 눈을 뒤로하고 돌아서야 하는 내 발걸음은 너무나 무거웠다.


​사회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설레었으나, 그 설렘조차 아이에게 미안해 숨겨야 했던 날들. 나는 그렇게 내가 가장 싫어하던 문장을 품에 안은 채, 서툰 워킹맘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당당한 엄마가 되겠다는 다짐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당당함이 아니라, 너를 떼어놓고 돌아서는 이 미안함을 견뎌낼 수 있는 아주 작은 용기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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