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지도 못하는 아이를 안고 들어선 새로운 세계

모든 질문의 끝이 나를 향해 있을 때의 비겁함

by 윤슬

채 걷지도 못하는 아이를 품에 안고 어린이집 상담실 문을 두드렸다. 복직까지 남은 시간은 단 몇 주. 내게는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찾아온 곳이었건만, 원장 선생님은 의외라는 듯 나를 맞이했다.

​“어머니가 올해 첫 상담이시네요. 보통은 이 시기에 잘 안 오시거든요.”

​당연히 늦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마저도 누군가에게는 유난스러울 만큼 다급한 준비였나 싶어 묘한 기분이 들었다. 5개월. 누군가에게는 이제 겨우 고개를 가누고 뒤집기를 완성한 경이로운 시기였겠지만, 내게는 아이를 사회라는 거친 파도 속에 밀어 넣어야 하는 카운트다운의 시간이었다.

​원장 선생님은 아이들의 일과와 활동 프로그램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오감을 자극하는 놀이, 영양 잡힌 식단, 따뜻한 보살핌. 하지만 그 화려한 설명들은 내 귓가를 스치듯 지나갈 뿐이었다. 내 입술을 뚫고 나온 질문은 전혀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다른 아이들도 6시 다 돼서 집에 가나요?”

“아이가 너무 오래 있으면... 많이 힘들어하지 않을까요?”

​아이가 무엇을 배우고 어떤 경험을 할지보다, 내가 퇴근하고 올 때까지 이 작은 아이가 얼마나 ‘버텨줄 수 있는지’가 더 궁금했다. 죄스러운 마음이 울컥 올라왔다. 아이의 하루를 걱정하는 척했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내 복직 스케줄이 무사히 돌아가길 바라는 비겁한 안도감을 갈구하고 있었다.

​머뭇거리는 내 마음을 읽으셨는지, 원장 선생님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어머니, 마음 쓰이는 거 다 알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원장 선생님은 익숙하다는 듯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으셨다.

​“연장보육 신청하시면 돼요. 우리 원이 유독 다른 곳보다 맞벌이 부모님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해 질 녘까지 친구들이랑 같이 노는 아기들이 꽤 많답니다. 우리 아기만 혼자 덩그러니 남겨지는 게 아니니까, 너무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어머니만 그러시는 거 아니에요.”

​그 순간, 나는 참으로 비겁하게도 안도해버렸다. 나만 아이를 늦게까지 방치하는 나쁜 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에, 이 낯선 세계에 나 같은 처지의 동지들이 가득하다는 사실에 방금까지 나를 짓누르던 죄책감이 찰나의 위안을 얻었다. ‘나만 그러는 게 아니구나.’ 그 한마디가 마치 면죄부라도 되는 양, 나는 비겁한 안심을 품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질문이 깊어질수록 다시 속상함이 밀려왔다. 이만한 아기들은 한 달 차이도 성장의 간극이 큰데, 혹시 비슷한 월령의 아이들이 또 있는지. 회사 사정상 적응 기간을 일주일 정도로 짧게 끝내도 괜찮을지.

​상담지를 채워가는 펜 끝이 떨렸다. 모든 질문의 중심은 아이가 아니었다. 아이가 얼마나 행복할지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편하게 일터로 돌아갈 수 있을지를 묻고 있었다. 내 편의를 위해 아이의 적응 기간을 깎아내고, 내 욕심을 위해 아이의 하원 시간을 늦추려 애쓰는 내 모습이 거울처럼 투명하게 보였다.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 길, 품 안의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내 품에 얼굴을 부비며 잠들어 있었다. 걷지도 못하는 이 작은 존재를 안고 내가 들어선 세계는 ‘교육’의 현장이 아니라, 나의 ‘생존’을 위해 아이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 냉정한 거래처처럼 느껴졌다.

​일하는 엄마가 되겠다는 당당한 포부는 상담실의 낮은 의자 아래에 버려두고 온 것 같았다. 아이를 위한 결정이라 자위하기엔, 내 질문들이 너무나 나만을 향해 있었던 오후. 나는 그렇게 비겁한 엄마가 된 기분으로, 아이의 작고 보드라운 손을 꽉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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