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첫 등원: 일주일짜리 속성 적응기

나의 이기적인 생존과 너의 시린 홀로서기

by 윤슬

복직은 현실이었다.

오랜만에 입은 유니폼은 내 몸을 옥죄었고, 내 문서함에 쏟아지는 업무들은 내가 자리를 비웠던 시간을 증명하듯 날카롭게 나를 파고들고 있었다.


갓 돌아온 복직자에게 조직은 그리 너그럽지 않았다. 법적으로 보장된 '육아시간'이라는 네 글자는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무책임한 사원으로 낙인찍힐 것만 같은 금기어였다.


그 서슬 퍼런 복직의 현장과 아이의 어린이집 입소가 겹쳐버렸다. 남들은 엄마와 아이가 함께 교실을 탐색하며 한 달간 천천히 스며든다는 '적응 기간'.

하지만 내게 허락된 시간은 고작 일주일이었다. 아니, 일주일이라는 시간조차 매일 아침 동료들의 눈치를 보며 헐떡거리며 벌어온 귀동냥 같은 시간이었다.
​어린이집 상담실에서 나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비겁한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제가 이미 복직을 해서요... 혹시 적응 기간을 일주일정도..단기간 으로 끝낼 수 있을까요?”


​그 말은 곧, 5개월 된 아이가 엄마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데 필요한 시간을 내 일터의 사정에 맞춰 강제로 도려내겠다는 선언이었다. 원장 선생님은 난처한 기색을 내비치면서도, 일하는 엄마의 절박함을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 끄덕임에 안도하면서도, 가슴 한구석은 날카로운 칼날에 베인 듯 쓰라렸다. 나의 생존을 위해 아이의 시간을 훔치고 있었다.


​등원 첫날, 어린이집 문 앞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전쟁터였다.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아이를 선생님의 품에 안겨주던 순간, 아이는 본능적으로 직감한 듯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뜨렸다.

그 작은 손이 내 옷자락을 허망하게 긁어내리며 매달렸다.

​“정말 죄송합니다, 선생님. 우리 애가 많이 울죠. 제가 빨리 가봐야 해서... 잘 부탁드릴게요.”


​아이를 달래는 건 이제 내 몫이 아니어야만 했다. 울음을 그치게 하려 진땀을 뺄 선생님의 노고에 비굴할 정도로 고개를 숙이며, 나는 도망치듯 건물 밖으로 뛰쳐나왔다.

닫힌 문 너머로 아이의 울음소리가 길게 늘어졌다. 그 소리는 서둘러 올라탄 차 안까지, 그리고 사무실까지 따라붙어 내 심장을 짓눌렀다.

일주일. 남들은 걸음마를 떼는 시간도 부족할 그 짧은 기간 동안, 우리 아이는 강제로 '사회'를 배워야 했다. 엄마가 보이지 않아도 결국 다시 돌아올 거라는 믿음보다, 울다 지쳐 잠들면 결국 시간이 흐른다는 체념을 먼저 배운 것은 아닐까.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지만, 내 영혼은 반으로 쪼개져 있었다. 한쪽은 밀려드는 공문과 회의를 감당하느라 분주했고, 다른 한쪽은 낯선 천장을 보며 울다 잠들었을 아이의 옆에 웅크리고 있었다.

늦게 출근하는 것도, 육아시간을 쓰겠다는 말을 꺼내는 것도 불가능했던 그 시기, 나는 번듯한 유니폼 뒤에 비겁한 엄마의 얼굴을 숨기고 있었다.

​내 이기적인 복귀를 위해 아이가 흘린 눈물이 얼마나 될까. 선생님의 품에서 버둥거리던 그 작은 몸짓이 자꾸만 컴퓨터 화면 위로 겹쳐 보여, 나는 몇 번이나 마른세수를 했다.


일하는 엄마가 된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아이의 눈물을 거름 삼아 내 사회적 자아를 연명하는 지독하고도 시린 거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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