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머리로 엑셀을 밟는 아침: 워킹맘의 1분 1초

나를 지우고 너를 채워야 시작되는 하루

by 윤슬

새벽 6시 30분. 알람 소리가 정적을 깨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한다. 눈을 뜨자마자 시작되는 건 우아한 기상이 아니라, 1분 1초 단위로 쪼개진 정교한 타임라인과의 사투다.


​오늘 아침 내가 수행해야 할 미션은 명확하다. 아이의 기저귀를 갈고, 이유식을 먹이고, 어린이집 가방을 체크하고, 그 와중에 내 몸뚱이를 '출근 가능한 상태'로 둔갑시키는 것. 이 과정에서 '나'라는 존재를 챙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7시 15분. 아이가 칭얼거리기 시작하면 모든 스케줄은 꼬이기 시작한다. 한 손으로는 아이의 입에 숟가락을 밀어 넣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내 얼굴에 쿠션을 두드린다. 화장이 잘 먹었는지 확인할 여유 따위는 없다. 그저 사회인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만 갖추면 다행이다.


​가장 큰 난제는 머리 감기다. 아이를 씻기고 입히다 보면 정작 내 머리를 말릴 시간은 늘 부족하다. 드라이기 소리에 아기가 깰까 봐 조마조마하며 대충 물기만 털어낸다.

거울 속의 나는 화장은 번져 있고 머리칼에선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참으로 볼품없는 몰골이다.


​“미안해, 엄마 금방 다녀올게!”


​아이를 등원시키고 주차장으로 뛰어가는 길. 눅눅한 머리카락 사이로 아침 공기가 파고든다.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자마자 핸들을 잡는 손이 바빠진다. 갓 막내를 뗀 내게 출근 시간 엄수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업무는 산더미고, 선배들의 눈치는 서슬 퍼런데 '애 엄마라 늦는다'는 소리만큼은 죽기보다 듣기 싫다.


​앞 유리에 습기가 차오르는지도 모른 채 가속 페달을 밟는다. 뒷목을 타고 흐르는 차가운 물줄기가 시트 깃을 적시지만 닦아낼 여유조차 없다.

신호 대기 중에 룸미러로 비친 내 모습은 가관이다. 어깨 위로 젖은 머리칼이 달라붙어 옷깃이 축축하게 젖어 있다.

화려한 커리어우먼의 복직을 꿈꿨던 적도 있었으나, 현실은 그저 ‘머리도 못 말리고 나온 서툰 실무자’일 뿐이다.


​회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사무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안, 누군가 나를 보며 "애 키우는 게 저럴 정도일까"라며 혀를 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젖은 머리카락은 내가 아침 내내 사투를 벌였다는 훈장이자, 나보다 아이를 먼저 챙겼다는 지독한 사랑의 증거이기도 하다.


​사무실 책상에 앉아 정신없이 공문을 확인하고 업무를 쳐내다 보면, 모니터 열기에 머리카락이 서서히 말라간다. 머리가 다 마를 때쯤에야 나는 비로소 엄마의 허물을 벗고 '직장인'이라는 이름의 가면을 완성한다.


​매일 아침 나를 지우고 아이를 채우느라 헐떡이는 삶. 젖은 머리로 엑셀을 밟는 이 일상이 언제쯤 익숙해질까. 아마도 아이가 혼자 신발을 신고, 엄마의 손길 없이도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을 때쯤이겠지.


그때가 오면 나는 보송보송하게 마른 머리로 운전대를 잡으며, 지금의 이 축축하고 절박했던 아침들을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도 나는 젖은 머리를 휘날리며 세상이라는 전장으로 뛰어든다. 비록 모양새는 빠질지언정, 내 삶의 무게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음을 스스로 위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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