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뒤로 희진은 자주 퀭한 눈을 하고 나타나 초콜릿케이크를 찾았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가게 주인과 손님에서 친한 언니 동생 사이가 되었다.
어느 날 희진이 말했다.
“언니, 삶에서 달달한 것들을 빼면 무슨 재미가 남을까?”
그 무렵 나는 카페 개업을 위해 온갖 종류의 디저트를 맛보고 만들어 보느라 달달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사양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나와는 달리 달달함을 몹시도 사랑했다.
“언니, 이번 휴일에 우리 바닷가 놀러 가자!”
벚나무에 푸른 잎사귀가 무성해진 어느 여름날, 희진이 불쑥 찾아와 여행을 가자고 했다.
“여행?”
“응. 마침 다음 주에 일이 없거든. 언니 휴무일 맞춰서 1박 2일로 어때?”
생각해 보니 최근 몇 년간은 개업 준비며 카페 메뉴 개발로 정신이 없어 제대로 된 휴가를 다녀온 적이 없었다. 내가 대답했다.
“음…. 그래. 그러자. 여행 간 지도 오래됐네.”
양양으로 여행을 떠나는 날, 가게 앞에서 희진을 기다리고 있는데 멀리서 걸어오는 모델 같은 여인이 보였다. 핫팬츠 아래로 드러난 긴 다리와 크롭티 아래 잘록한 허리에 시선이 갔다. 가까이 다가와 보니 그 여인은 다른 사람이 아닌 희진이었다. 큰 키에 긴 생머리, 뽀얗고 작은 얼굴. 누가 봐도 예쁜 외모였다. 항상 화장기도 없이 잠자리 안경을 끼고 피곤한 모습만 보다가 단장한 모습을 보니 짐짓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그렇게 예쁘다는 것을 그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 순간 작은 키에 큰 얼굴, 약간 볼록한 뱃살에 짧은 다리를 가진 내 모습이 너무 부끄럽게 느껴졌다.
“언니, 너무 신난다! 빨리 가자!”
내 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희진이 한껏 들떠서 말했다.
“그래. 얼른 가자. 신난다.”
이미 가라앉은 마음을 애써 끌어올리며 내가 대답했다. 조수석에 앉은 희진이 뒷좌석으로 짐이 담긴 백팩을 던졌다. 이런. 희진이 방금 내던진 백팩을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건 지난봄에 내가 몇 번이나 구매를 망설이다 결국 사지 못했던 명품 백팩이었다. 던져진 희진의 백팩 옆으로 가지런히 앉아 있는 나의 저렴한 백팩이 초라해 보였다.
양양으로 가는 두 시간 내내 희진은 쉬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도 가라앉은 마음을 헹여나 들킬까 더 신나는 척을 하며 말을 많이 했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 지나니 바다가 보였다. 오랜만에 탁 트인 바다 앞에 서니 저절로 큰 숨이 쉬어졌다. 파도를 바라보며 희진에게 가졌던 내 초라한 질투도 바닷물에 쓸려 가 버리길 바랐다.
예쁜 자세를 잘도 취하는 희진을 따라다니며 계속해서 사진을 찍어 주었다. 좋은 배경을 뒤로하고 예쁜 사람을 찍으니 어디를 어떻게 찍어도 멋진 사진이 되었다. 희진의 사진을 찍어주며 마음이 자꾸만 작아졌다. 내 못난 마음을 쓸어 가기엔 그날의 파도가 너무 고요했다. 그런 내 마음을 전혀 모르는 희진은 앵글 속에서 매 순간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