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다니에서
나는 늘 설명이 늦다.
이력서의 빈칸 앞에서, 요즘 뭐 하냐는 질문 앞에서 괜히 한 번 웃고 말꼬리를 흐린다.
이미 길을 떠나오긴 했지만 아직 도착했다고 말할 수는 없어서, 지금 어디에 서 있냐는 질문 앞에서 잠시 망설이게 된다.
매출이나 월급 같은 숫자로 보여줄 만한 성과도 없고, 스스로를 지칭할 마땅한 직함도 없다.
누군가는 이미 건너간 것 같고 누군가는 훨씬 앞에서 손을 흔드는 것 같은데, 나만 제자리에서 시간을 밟고 있는 기분이 들 때가 많다.
요한복음에는 베다니라는 장소가 나온다.
괴짜 요한이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던 곳이다. 요한복음은 그곳을 굳이 ‘요단강 저쪽 편’이라고 기록한다. 성전이 있는 요단강 ‘이쪽’이 아니라, 요단강 ‘저쪽’. 그러니까 중심이 아닌, 변방의 자리라는 뜻이다.
그 외곽의 장소에서 가장 중요한 소리가 시작되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자리에서 방향을 바꾸는 말이 먼저 울려 퍼진 것이다.
베다니.
나는 지금 베다니에 서 있는 걸까.
베다니에 서 있다는 건 실패했다는 뜻도 아니고, 길을 잘못 들었다는 의미도 아니다. 아직 모든 말이 눈에 보이게 정리되지 않았을 뿐, 의미를 향한 소리가 먼저 나오는 그 시점에 서 있다는 뜻이다.
지금 이 시간이 공백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고, 괜히 불안만 쌓이는 시간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시간은 결코 비어 있지 않다. 아직 이름 붙지 않은 이야기가 조용히 만들어지고 있는 중일 것이다.
그러니 속도를 재촉하지 말고,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말고, 내게서 나오는 이 소리 속에서 조금 더 기다려 보고 싶다.
베다니에 서 있다는 건 이미 길 위에 있다는 뜻일 테니까.
(요한복음 1:1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