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행복

내가 쓰는 이유

by 주혜나

며칠 전, 여느 때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는데 문득 질문 하나가 마음을 스쳤다.

'나는 정말 쓰기를 좋아하나?'


좀 전까지 모니터 위에 글을 만지작 대던 나의 손가락이 키보드에서 멀어졌다.

아는 언니가 쓴 글이 기억났다. 언니는 어느 날 팟캐스트를 듣다가 '돈이 아주 많으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자신에게 물어보라.'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 질문을 통해 장기여행자가 되고 싶은 자신의 오랜 꿈을 발견했고 초등학생인 두 아이와 함께 인도네시아로 47일간의 여행을 떠났다.

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해 보았다.

‘지금 돈이 아주 많다면 무엇이 하고 싶은가?’

잠시 생각해 보니 하고 싶은 일이 금방 떠올랐다. 전망이 좋은 집에 가장 좋은 방을 작업실로 삼아 쓰고 싶을 때 쓰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쓰기의 내공이 좀 붙으면 좋은 공간을 만들어 다른 이들과 함께 쓰는 시간을 나누고, 좋은 책도 공유하는 모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본질적으로 원하는 것을 묻는 말에 이렇게 금방 대답이 떠오르다니. ‘나는 쓰기를 좋아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때 다음 질문이 떠올랐다.


'그럼 왜 쓰는 게 좋은 거야? 쓰는 일이 행복해?'


날카로운 질문에 답이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과거를 돌아보니 나는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모를 때, 항상 쓰기를 시작했다. 그러다 다른 할 일이 생기면 쓰기와 멀어졌고 다시 시간이 생기면 쓰기를 시작했다. 그렇게 몇 번을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지기를 반복했다.

쓰는 재능에 대해 생각해 보자면, 초등학생 때 담임선생님이 일기를 읽고 '넌 꼭 커서 신춘문예에 도전해 보렴.'하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하지만 그 일 외에 딱히 글쓰기에 소질을 보인 적은 없었다. 어릴 땐, 독서에도 별로 관심이 없었고 일기를 꾸준히 쓰지도 않았다. 서른 살이 되기 전엔 작가의 삶을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쓰는 일이 행복한가? 쓰는 일은 사실 괴로운 일이다. 한 번도 한방에 시원하게 써진 적이 없다. 퇴고는 늘 고통스럽다. 퇴고가 잘 안 되면 삭신이 아프고 혓바늘이 돋는다.

그런데도 쓰는 일이 좋은 이유는 뭘까? 돈이 아주 많은데도 전망 좋은 방에서 계속 쓰고 싶다니. 그 이유가 뭘까?

지금은 답을 할 수 없어서 생각을 묵혀두기로 했다. 퇴고가 안 될 때 원고를 묵히듯이 해결이 안 되는 생각도 서랍 한편에다 묵혀둔다.

주말에 영화 '리바운드'를 보았다. 전국 고교농구대회, 지방의 작은 학교, 교체도 할 수 없는 다섯 명뿐인 선수진. 부산중앙고 농구부가 일으킨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였다. 영화에서 그들은 8일 내도록 경기를 뛰어 결승전까지 올라갔다. 결승에서 5명의 선수는 서 있을 힘이 없을 정도로 지쳐 있었고, 악전고투 끝에 2명이 퇴장당했다. 에이스는 원래 좋지 않은 발목이 완전히 망가졌음에도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고 치열하게 싸웠다.

그들이 뛰는 모습을 보다 대학 시절 연극을 하던 때가 생각났다. 대단한 목표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우린 모든 작품을 치열하게 만들었다. 작품을 올리고 나면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고 도망가기도 했지만, 방학이 되면 다시 돌아와 또 같이 작품을 만들었다. 연극을 하며 한 역할이 지나갈 때마다 새로운 알을 깨고 나가야 하는 것 같았다. 그 과정은 매번 치열했고 매우 괴로웠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 시간을 행복했다고 기억하고 있다. 영화 '리바운드'의 실제 주인공들도 그때를 행복하게 기억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행복하다'는 말이 괴로움이 없는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행복했던 순간들 속에는 웃음과 눈물과 땀과 한숨이 모두 뒤섞여 있으니 말이다.

피해 가도 되지만, 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부딪쳐 통과하는 일, 그래서 알을 깨고 나아가는 일, 그게 어쩌면 행복이 아닐까?


서랍 한편에다 넣어 둔 질문이 떠올랐다. 아직은 명확히 답을 할 수 없지만, 언젠가 답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쓰는 일이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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