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혜나 Jul 08. 2023

브로컬리를 지키는 방법

친환경일까. 친사람 일까.

 3년 전 전남 영암군 독천리에 작은 주택을 마련했다.


 처음 집을 보았을 때, 내 집이구나 싶었다. 사람 다섯에 고양이 둘, 대형 댕댕이 하나까지. 대 식구가 살기에는 큰 집이 필요했다. 그런 면에서 5칸짜리 개량 한옥에 큰 창고까지 갖춘 집은 보기 드문 물건이었다. 원래 사시던 분이 돌아가시고 아들이 근처에 살며 관리해 온 집이라는데 낙엽하나 없이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결정적으로 아주아주 싸고, 아주아주 오래되어 (비록 등기가 없는 집이지만) 빚 한 푼 없이 사서 고칠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이었다.


 원래도 시골을 좋아했다. 아파트에 살면서도 차를 타고 이동할 때면 창밖으로 보이는 논 밭의 풍경에 언제나 마음이 설레었다. 청보리가 바람에 넘실대고, 너른 논에  어 모들이 심기고, 밭에 채소들이 줄지어 서 있는 걸 보면 괜히 마음이 좋았다. 자연에서 뛰놀았던 어린 시절과 일 년에 서너 번은 다녀왔던 시골 할머니집의 기억이 내 정서의 주춧돌이라 그랬던 모양이다.


그렇게 시골집을 고쳐 살기 시작하며 소소하게 텃밭을 가꾸다가 올해는 마음을 먹고 텃밭을 제대로 만들었다.

넓지 않지만 야무지게 만들었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텃밭을 만들고 좋아하는 채소들을 이것저것 심었다. 삽질은 힘들었지만, 작은 텃밭 구석구석에서 스무 가지가 넘는 채소가 그럭저럭 자라는 것을 보며 봄날 날씨처럼 마음이 얼마나 뿌듯하던지!


문제는 6월이 넘어서면서부터였다.  각종 벌레들이 한 마리씩 텃밭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벌레 자체는 전혀 두렵지 않다. 집에서 나오는 왕지네도 잡아서 해치울 수 있다. 하지만 이놈들이 텃밭에 나타나는 순간, 벌레는 해충이 되어 버린다. '충'은 두렵지 않지만 '해충'은 두렵다. 정확히 말하자면 해충이 텃밭에 만드는 피해 두려운 것이다.


 가장 무서운 놈들은  뭐니 뭐니 해도 노린재와 나비, 그리고 모기이다.


 모기. 모기. 모기. 

 한 여름에도 두꺼운 긴팔 바지와 상의를 입고 꽃무늬 모자를 뒤집어써야 한다. 얇은 옷을 입으면 모기가 옷을 뚫고 문다. 모자부터 바지 끝단까지, 얼굴을 제한 온몸에 살충제를 뿌린 후에야 밭으로 갈 수 있다.  작물에도 안 쓰는 살충제를 몸에 뿌리다니 어이가 없지만 이렇게 안 하면 10분도 밭에 있을 수가 없다.


 노린재는 어디선가 한 마리씩 나타나 순식간에  어마어마하게 개체를 늘린다. 줄기에 붙어 있는 놈들이 열 마리라면 여덟 마리는 짝짓기를 하고 있다. 이놈들은 농약으로도 잘 안 죽어서 일반 농가에서도 큰 피해를 입히는 골칫거리다. 인기척이 있다 싶으면 우르르 땅으로 떨어져 죽은 척을 한다. 퇴치 방법은 오직 하나. 직접 한 마리씩 잡아 죽이는 것 밖에 없다. 손으로 꾹 눌러 죽이던지, 물이 들어있는 컵에 떨어뜨려 죽여야 한다. 7월이 된 지금은 잎 뒤쪽도 잘 살펴보아야 한다. 노린재는 알을 어마어마하게 낳기 때문에 알을 내버려 두면 아무리 잡아도 개체가 자꾸 늘어나기 때문이다.


 꽃밭에 날아다니는 흰나비는  봄, 여름 경치를 수놓는 아름다운 오브제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 녀석들이 배추밭에 들어오면 해충도 이런 해충이 없다. 흰나비는 배춧잎,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십자화과 식물의 잎 뒷면에 알을 무지하게 낳는다. 그리고 그 알에서 부화한 애벌레는 나의 소중한 작물을 갉아먹고 오통통하게 자란다.

애벌레가 먹어봐야 얼마나 먹냐 싶겠지만  애벌레가 지나간 자리를 보면 그런 말이 안 나온다.


 사진에 브로콜리는 양호한 정도. 하루만 안 잡아도 잎맥만 남기고 모조리 먹어 치운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면 '벌레도 먹고, 나도 먹자.' 했던 마음이 그렇게 청순하게 보일 수가 없다.

 '어떻게 해야 내 브로콜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

 결국 장갑 낀 손으로 록빛 오동통한 귀여운 애벌레를 잡아 꾹 눌러 죽이고야 만다. 한두 번만 잡고 끝나면 좋으련만 매일 이 일을 반복해도 매일 오동통한 애벌레가 잎사귀 위에 또 나타난다.


 유기농도 아닌 자연농을 표방하는 텃밭이다. 밭에 넣는 거라곤 퇴비와 베어낸 풀이 전부다. 균형이 잡힌 자연농 밭에는 육식곤충이 자리를 잡아 생태계균형을 맞춘다고 한다. 올해 우리 밭에도 3년 만에 사마귀와 거미가 나타나서 혼자 콧노래를 불렀지만 녀석들은 아직 손톱만 한 노린재보다도 작다. 그래도 육식곤충들은 밭에서 '익충'이다.  내게 있어 나쁜 놈이 아니라 착한 놈이란 말이다. 애벌레가 나타날 때 식초물을 뿌리면 좀 낫다는데 3년 만에 나타난 착한 놈들까지 죽을까 싶어 식초물도 못 뿌렸다.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내 손가락이 육식곤충을 대신할 수밖에 없다.


 매일 아침 밭에 나가 노린재와 애벌레들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죽이다 보면 '과연 친환경이 무엇일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친환경, 유기농, 자연농. 요즘은 그 분류 안에서도 갈래가 많다.


 친환경적으로 살기 위해 친환경 세제를 쓰고, 비닐이 안 썩어 문제가 된다고 하니 대체 비닐을 만들고, 플라스틱 빨대가 해양 생물을 괴롭히니 종이 빨대를 만든다. 못 살기 때문에 자연이 좋은 나라는 탄소 배출권을 팔고 , 잘 살기 때문에 탄소를 무진장 배출하는 나라는 그 권리를 돈을 주고 산다. 야생동물을 구하겠다고 비행기를 타고 오지로 가고, 바다생물을 살리겠다고 배를 타고 먼바다로 나간다. 농약 대신 친환경 자재를 쓰고 인증 마크를 받는다. non gmo 사료를 확인하지만 고기는 계속 먹는다. 공정한 포획을 인증하는 마크를 확인하고 참치와 연어를 사지만, 인증마크를 발급하는 국제 협회와 대량 포획 업체의 출발이 같다는 사실에는 별 관심이 없다.

 세제 쓸 일 자체를 줄여야 한다. 비닐을 쓰지 않아야 하고, 빨대 없이 음료를 마셔야 한다. 잘 사는 나라에서도 일부 산업을 포기하더라도 산림을 다시 회복해야 하고, 장거리를 가기 전에 화석연료의 사용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마트 선반 올려진 깔끔한 친환경 농산물은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 고기 1kg 생산을 위해 얼마나 넓은 땅에서 옥수수를 키워야 하는지, 연어와 참치를 먹지 않고는 살 수가 없는지. 진짜 환경을 생각한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바꾸어야 한다.   


 위에 적은 일중에 그나마 내가 조금 떳떳할 만한 일은 마지막 참치와 연어에 관련된 일뿐이다.(포획에 관한 사실을 알고는 얼마 전부터 참치와 연어를 먹지 않는다.) 그 외에는 스스로 그 어느 부분 하나도 떳떳하지 못하다.


 우리가 흔하게 사용하는 단어, '친환경'은 정말 '친'환경적인 상황에 사용되고 있는 게 맞는 걸까?

 친환경의 '환경'이 자꾸만 '사람'이라고 읽히는 것, 친환경이 친사람인 것 같은 느낌은 그저 삐딱한 내 사고 때문일까?


 오늘도 내 밭에 나타나는 착한 놈들은 악착같이 지키고 나쁜 놈들은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죽이며, 자칭 자연농을 지향한다는 텃밭에 서서 혼자 생각이 많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