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화면이 책장 너머 햇살보다 훨씬 익숙해진 요즘이다. 하루에 남는 시간 대부분을 좁은 화면 안에서 소비한다. 어릴 때 침대에 기대 각종 소설책, 만화책을 읽으며 즐거워하던 내가 요새는 잠깐 쉬는 시간이 나면 책 보다 스마트폰을 집어 든다. 머릿속이 단순해진 건지, 세상이 바쁘게 변해 볼거리가 많아진 건지 가끔 헷갈린다.
한밤중, 방구석에서 불을 끄고 누워 있다 생각 없이 휴대폰 화면의 시계를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나는 과연 제대로 살아 있었나? 무의미하게 스크롤만 올렸다 내렸다 하다 언제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게 하루가 끝난다. 생산이 아니라 소비, 아니 낭비 같은, 차곡차곡 나 자신의 삶을 쌓아가야 할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며 끝내는 게 아닐까.
책을 펼친다는 건 나와 다른 삶의 시간 일부를 나 자신에게 읽어 들이는, 로딩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책 페이지를 넘기면 장면이 바뀌고 주인공이 변해도 결국 나는 그 이야기의 일부가 된다. 나는 책이라는 세계에서 잠시 다른 인생을 살아보고 다시 나로 돌아오는 환상을 경험한다. 그리고 조금씩 쌓이고 휘발되지 않는 무언가가 내 안에 남는다.
유튜브나 방송에 나와 이야기하는 잘 나가는 작가나 지식인을 흉내 내거나, 두꺼운 인문학 서적을 억지로 읽을 필요는 없다. 때로는 만화책, 소설책 한 권에도 마음에 변화가 생긴다. 지금 다시 읽고 있지만, 나는 책과 멀어질 때면 아주 어릴 때 읽었던 <은하영웅전설>이라는 소설책부터 다시 읽는다. ‘세상이 나에게 바라는 책 읽기는 어렵고 불편하고 올바른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는 편견이 사라지니까 내 세상이 매번 더 넓어진다.
누군가 “읽지 않는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까칠한 말이지만 자주 떠오른다. 책을 멀리한 날이면 본래 성장할 수 있었던 나의 일부를 모르고 살아간 듯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손에 책 한 권만 있으면 불필요한 일들로 가득했던 내 하루에서 그나마 나를 위한 작은 여백과 여유가 남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저녁 책장 어딘가에서 잠자고 있는 책 한 권을 꺼내서 봐야겠다. 어쩌면 아주 오래전 성장통을 버티던 내 모습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삶을 온전히 살아내고 싶다면 책 읽기보다 손쉬운 시작은 없다. 내 인생을 조금 더 나답게 살아보기 위해 책 한 장부터 열어 조용한 시간 속에서 우리가 몰랐던 나 자신을 다시 마주하면 오늘 하루가 조금은 더 괜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