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안 쓰는 습관이 되기 전에

글을 쓰기 어려워집니다.

by 파이프라인

키보드를 누르려다가 멈칫 다시 손을 뗍니다. 글거리는 풍성하지만 써야 하는 내용이 맞는지 자꾸 망설여집니다. 내가 아는 누군가가 이 이야기를 읽고 기분 나빠하지는 않을까, 내 자랑이 있지는 않을까,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상처가 되지 않을까 혼자 괜히 부담을 가집니다.


휴대폰을 봅니다. 이럴 때 시간은 참 애매합니다. 분명히 마무리를 못할 것 같고 이번에도 작가의 서랍에 저장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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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하는데, 읽어야 하는데, 봐야 하는데 여러 가지 이유가 항상 주위를 맴돕니다. 심플한 스케줄에서도 편안한 나만의 시간이 한 시간도 없습니다. 일이 마치면 또 누군가 나를 부르거나 찾고 있고 다른 일을 맡깁니다. 책은 하루에도 수십, 수백 권이 나오고, 게다가 저보다 훨씬 글을 잘 쓰고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작가들의 작품입니다. 각종 영상들은 흥미와 호기심을 자극하고 가끔은 웃음과 눈물을, 그리고 지식과 깨달음을 줍니다.


이러한 유혹을 뿌리치고 겨우 책상에 앉으면 이번에는 불안함과 의구심이 저를 감쌉니다. 너의 이야기가 글거리가 될까? 너의 문장이 의미 있는 데이터 맞아? 괜히 쓸데없이 데이터센터의 저장공간을 차지하며 불필요하게 환경이나 오염시키고 에너지나 낭비하는 거 아냐? 이러한 속삭임에 저는 분명한 대꾸를 하지 못합니다.


네가 이럴 때야? 남들은 부동산이다, 주식이다, 재테크로 하루하루 더 앞으로 나아가는데 글은 나중에 쓰고 신문 다시 한번 더 보고, 블로그, 강의나 유튜브 영상 이런 것을 먼저 보는 게 낫지 않아? 네가 특별히 작가에 대한 꿈이 있거나 하는 것도 아니잖아. 나중에 시간 날 때 쓰면 되지.


매번 이러한 유혹에 넘어갑니다. 그래, 나중에 하자. 또 시간이 있겠지. 이게 더 중요한 일인 거 같아. 지금은여기에 신경 써야지. 이거 쓴다고 달라질 것도 없는데...


이렇게 항상 글 쓰는 시간은 저를 기다려주지 않고 지나갑니다. 그녀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사라져 버리고 저는 또 그녀를 잊은 채 살아갑니다. 그러다 문득 떠올립니다.


'나는 어느새 이렇게 살고 있구나...'


생활에 묻혀 글을 쓰지 않는 익숙함에 젖어 어느새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하고 있는 것은 많은데 개운치 않은 느낌이 듭니다. 제대로 살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이렇게 지내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예전 같으면 펜을 잡는다고 하겠지만 이제는 키보드로 아무 글자나 두드려봅니다. 선뜻 써지는 글은 없지만 마음대로 자판을 눌러봅니다. 내가 바라던 꿈은 무엇이었을까. 어린 시절 장래 희망 직업과 동의어였던 꿈이 아니라 내가 바라는 삶은 어떤 삶이었을까.


버리기에 관련된 책을 많이 읽으면서 물건도 버리고 머릿속도 비워버리니 마음이 한결 가볍습니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내가 좋아하는 책들과 글을 쓸 수 있는 도구들, 나만의 공간만 있어도 삶은 충분할 것 같다는 그림을 마음에 그립니다. 그러려면 글을 안 쓰는 것이 습관이 되기 전에 글을 다시 써봐야겠습니다. 그녀를 잃지 않으려 노력해야겠습니다. 작심삼일로 자주 끝나지만 그래도 다시 시작할 수 있기에 희망이 있습니다. 분명한 각오가 아니지만 마음이 가벼워지는 오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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