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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는 건 편한데 마음이 힘들잖아.

보호종료아동의 코로나 자립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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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눈을 떴는데 손목이 저릿하게 아팠다. 고개를 들고 몸을 일으키니, 어깨부터 허리까지 근육통이 느껴졌다. 시간은 9시를 지나고 있었다. 분명 잠을 충분히 잤는데도 침대 밖으로 나오고 싶지 않았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나는 어제 80kg 정도 되는 드럼세탁기를 기사님과 함께 옮겼다. 무거운 세탁기를 들며 내 손목은 달달 떨렸지혹시 내가 같이 들지 못하면 추가 비용이 나올까 봐 가진 힘을 써서 세탁기를 계단으로 옮겼다.


 기사님은 몇 번이고 “학생, 이거 정말 무거워. 못 들 거 같은데” 하고 말씀하셨다. 난 타고난 하체를 믿으며 “저 할 수 있어요.”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실제로 이사 갈 집으로 세탁기를 옮겨놨다. 어제는 뿌듯했다.

그리고 오늘은 그게 서러웠다.








 추가 요금을 낼 돈이 없어서 하나뿐인 내 몸을 아프게 했다는 게 갑자기 속상했다. ‘나도 편하게 살고 싶어. 누가 몸 고생시키면서 살고 싶겠어?’

어제와 오늘의 차이는 약간의 근육통뿐인데, 지난 힘들고 서러운 기억들이 함께 뭉쳐서 다가왔다.

 감정은 회로로 연결이 되어있어서 힘들 때는 힘들었던 기억들이 더 잘 생각나고, 우울할 때는 내 삶이 온통 우울했던 것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나는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오늘 하루뿐만 아니라 내 인생이 슬펐다.


 오전 내내 ‘난 지금 서럽잖아. 그리고 몸도 아프잖아. 그러니 아무것도 못해.’하고 스스로 믿으면서 이불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점심이 되니 배가 고팠고, 밥을 차려 먹고 나니 나른해졌다. 난방비를 아낀다고 보일러를 잘 틀지 않아 바닥이 깨질 듯이 차가웠다. 것은 따듯한 침대로 기어 들어갈 좋은 이유가 되어주었다.

어쩔 수 없이 오전 시간을 포기했다.



당근마켓으로 거래해서 새집으로 옮겨놓은 세탁기




언제부터 하지 못 할 이유들을 먼저 찾았을까.



 나는 오늘 뭉친 근육을 살살 풀어가며 가볍게 산책을 할 수도 있었고, 널브러진 이삿짐을 정리할 수도 있었다.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와 놀면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고, 읽고 싶었던 책을 들고 무작정 밖으로 나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열심히 사는 나를 방해하는 것들’을 먼저 생각했고, 결국 근육통과 차가운 방바닥이 나를 행동하지 못하게 한다고 믿어버렸다.

나는 침대에서 널브러져 있는 건 쉬는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게 아니다.

그 시간에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 침대에 있는 것인지가 중요하다. 난 다른 방법으로 그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말은 정말 쉽지만 행동하는 건 너무 어렵다.

행동하지 못할 이유들이 주위에 넘실거린다. 손만 뻗으면 잡아챌 수 있기 때문에 적당히 이유를 데려와 가져다 놓고 포기하는 게 쉽다.


 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이 문득 들었다할지라도 ‘돈이 없으니까. 내가 지금 한가하게 여행이나 다닐 때가 아니니까. 어쩌면 여행 가고 싶다는 마음 자체가 회피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 여행을 떠나기 어려워질 것이다.

그리고 점점 여행이라는 말도 반갑지 않을 것이다.


출처 : 네이버 블로그 bizhrd



 행동하는 게 어려운 건 수많은 이유들과 부딪혀야 하기 때문이다.

이유의 힘은 강하다. 하버드 대학 심리학과의 엘렌 렝어 Ellen Langer 교수는 이를 증명하는 한 실험을 했는데, 프린터기 앞 복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양보를 부탁하는 것이었다. “혹시 양보해주실 수 있으세요?”라고만 말했을 때 약 60%의 사람들이 줄을 비켜주었다. 이후 “혹시 양보해주실 수 있으세요? 왜냐면 복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에요.”하고 말했을 때는 93% 사람들이 줄을 비켜주었다. 사실 그곳에 줄을 서있는 사람들은 모두 복사를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인데 말이다.(ㅎㅎ)


 이 실험을 통해 증명된 것은 우리는 이유가 타당한 지보다 이유가 있는지가 행동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나는 오늘 하마터면 약간의 근육통이 있다는 것과 방바닥이 차갑다는 이유에 넘어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뻔했다. 그리고는 내가 서러운 인생을 살고 있다고 믿을 뻔했다.

나는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을 막는 이유가 차가운 방바닥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만약 지금의 모습이 원하는 삶을 사는 자신이 아니라면, 혹시 그 이유가 정말 타당한지 한번 점검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을 것 같다. 그 자리를 꿰차고 있는 이유는 진짜이유가 아닐 수도 있으니까.






2020.12.7 스터디 카페에서 _ 선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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