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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게 손절 당했다.

번아웃을 지나는 이야기





요즘들어 몸이 나를 따라주지 않고 멋대로 파업을 하고 있다. 

잠을 10시간 이상 자거나, 하고싶은 일들이 모조리 사라지는 등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보이는 나를 어떻게 달래줘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캘린더를 보다가 그 주 수요일까지 일정이 비어있는 것을 확인하고 충동적으로 여행을 계획했다. 부담없이 다녀올 수 있게 숙소는 게스트 하우스로 정했다. 이전에 최저가로 게스트하우스를 구하고 방에 들어갔다가 남자가 누워있는 것을 보고 다급하게 도망나온 기억을 떠올리며, 신중하게 '여성전용' 방으로 결제했다.

이번 여행은 넘어져 빼액 우는 아이에게 엄마가 다급하게 사탕을 쥐어주듯, 돌아선 나의 마음을 달래기 위한 결정이었다.


세시간을 달려 속초에 도착했다. 체크인을 하고 방에 올라가 짐을 풀면서 생각했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지치게 만들었을까.

아마도 지속적인 협박 때문일 것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당위성 언어를 많이 사용했다. '꼭 해야만 해. 잘 해내야 돼. 실패하면 큰일 나.' 

누구나 당연히 겪는 시행착오를 나는 무조건적인 실패로 간주했다. 그러니 하루의 시작은 늘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가볍게 놀이처럼 여겨도 되는 상황조차도 경기처럼 느껴졌다. 이기고 지는 결과가 있는.



분명 내 몸은 사인을 보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을 두려워 했고, 위와 장이 자주 아팠다. 마음도 내게 신호를 보냈다. 그만하고 싶다고.

그럴 때마다 나는 두려움을 들이밀었다. "지금 안하면 다들 실망할텐데?"

이렇게 몸과 마음을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질질 끌고 다녔다. 노력이 헛되지는 않았다. 성과가 생겼고,기회를 만들어가며 주위에서 인정을 받았다. 한동안은 그게 나에게 주는 보상 같았다. '거봐, 내가 하라는 대로 하니까 좋은 일이 생기잖아.' 그때는 느끼지 못했다. 내가 점점 침묵하고 있음을.



주변에 강요를 일삼고 모든 행동을 판단하는 사람을 주위에 둔다면 어떨까. 어느정도 견디다가도 얼마 가지 않아 그 사람을 피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손절 당했다.





자동차가 달리면서 주유하는 거 봤어요?

고갈 된 나에게 상담선생님은 채워지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멈춰야 한다고 했다. 사실 조바심이 많이 난다. 지금 속초에 와서도 뭐든 만들어 내기를 바라는 마음을 잠재우고 있다.


'돈을 들여 여행을 오면 뭐라도 남겨야 한다고 누가 그랬어?

괜찮아. 바다 구경도 하고 누워서 핸드폰도 하고 편하게 시간 보내는 게 어때서.'


27살이 이제 두달도 채 남지 않았고, 내년이면 졸업학기를 채우러 복학을 할 수도 있다. 모아둔 돈이라고는 천만원 가량 보증금이 전부이고 복학하려면 학비도 마련해야 한다. 주위에서는 천천히 가도 된다고 몇차례 내게 말했지만 말처럼 쉽게 설득이 되지 않는다. 정말 내가 멈춰도 될까.





답은 아마도 멈춰봐야 알것이다. 멈췄다가 잘 안풀리면 시행착오로 받아들이면 된다.

삶은 이미 실수하고 시행착오하는 것까지 계획되었을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분명 다시 일어나 가야할 때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나 혼자 해야한다고 생각하지 말자. 

분명 필요할 때 함께 할 사람도, 도움을 줄 사람도 이미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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