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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abella Jul 15. 2024

240629

안아줘요

어젯저녁 충치의 예감처럼 시큰거리며 존재감을 드러내던 외로움이 홍수처럼 밀려와 나를 적셨다.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 우울해하며 굴러다녔다. 블로그에 적기에는 차마 너무나 딥하고 무거운 걱정들과 사무치는 외로움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계속 누워서 의미없이 시간을 죽이는 것보다는 나가서 뭐라도 하는 게 나을 것 같았으므로. 한식당에 가서 고국의 맛을 느끼기로 했다.

준비해서 나가려는데 밖에 레일라의 친구 겸 사촌들이 놀러와 있었다. 꼬마 레일라는 원래 나를 좋아하기는 해도 먼저 와서 안기거나 달라붙지는 않는데, 친구들이 있자 나에게 안아 달라 치대며 나와의 친분을 과시하려고 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 쓰다듬어주었다. 꼬마 알레산드로는 초면이었는데도 굉장히 빠른 이탈리아어로 자기가 좀비를 때려잡을 수 있다며 내게 자랑을 했다. 아이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서 향한 곳은, 첸트로에 있는 한식 리스토란테, '궁'이었다.

리스토란테 궁은 한식을 다양하게 맛볼 수 있는 곳인데, 개인적으로 피렌체, 이태리를 넘어 내가 해외에서 방문했던 모든 한식당 중에 가장 좋았던 곳이었다. 우선 인테리어가 한국적 미를 잘 드러내는 멋진 디자인이었고, 음식도 외국에 있는 한식당답지 않게 상당히 준수한 맛이었다. 나는 육개장 한 그릇에 소주 한 병을 시켜 처량하게 혼자 들이켰다. 이 장면을 촬영한 사람이 있었다면 분명히 BGM으로 캔의 내 생에 봄날은...같은 노래를 삽입했으리라. 소주 한 병에 이만 원이 넘는 사악한 가격이었지만 그거라도 들이켜야 외로움을 좀 덜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자리에 서빙을 도와준 서버는 한국어를 잘 했지만 발음이 조금 어눌했다. 어디에서 왔는지 물어보자 그는 일본인이며, 도쿄에서 왔다고 했다. 우리는 일본어로 가벼운 대화를 나누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데 오랜만에 혼자서 소주 한 병을 급하게 마셨더니 조금 알딸딸한 기분이 들었다. 광장에 설치된 간이 벤치에 앉아 행복하고 즐겁게 떠드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나만이 지독하게 외로운 것 같았다. 내 옆에는 굉장히 잘생긴 청년이 앉았는데,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방글라데시에서 왔다고 했고, 여기 산다고 했지만 나만큼이나 이탈리아어에 능숙하지 못한 듯했다. 나는 방글라데시어를 몰랐고, 그는 영어를 할 수 없었으므로 이야기는 금방 마무리되었다.

털레털레 집으로 돌아와 누웠다. 괜찮다. 다 괜찮다. 괜찮아질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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