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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abella Jul 15. 2024

240623

일기예보는 어딜 가나 믿을 수 없어

사흘 간의 비 소식이 있었다. 심지어 일요일과 화요일엔 천둥까지 동반한 센비가 온다나?

그 말을 믿고 철썩같이 마트에 가서 낑낑거리며 한보따리 장을 봐 온 불쌍한 여인을 보라.

예보가 무색하게도 오늘 낮에 잠을 깨자 하늘이 맑았다. 창문을 열자 아스팔트가 젖었던 흔적만 있고 비는 간 데 없었다. 어쩐지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쌓였던 피로가 누적됐는지 오후 한 시가 다 되어서야 눈을 떴는데, 이상하게도 배는 고프지 않았다. 그래도 때를 맞춰 먹지 않으면 식사 패턴이 무너지기에 어제 사왔던 컵라면을 들고 터덜터덜 방 밖으로 물을 끓이기 위해 나갔다. 오늘도 어김없이 레일라가 반겼다. Ciao, Leila! 인사하자 배시시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고는 파르디스가 있는 곳으로 쪼르르 달려가버렸다. 나는 부엌에서 포트에 물을 끓이고 있었는데, 레일라가 파르디스에게 아라랑 놀아도 되냐고 묻는 목소리가 들렸다. 파르디스는 그럼, 가서 아라한테 같이 놀자고 물어봐. 하고 답했다. 나에게 직접 물어보기에는 아직 쑥스럽고 낯설었던 모양이지. 곧이어 레일라가 쪼르르 다가와서 물었다. 

"Do you wanna play with me?"(나랑 놀래?)

"그럼, 하지만 나 밥을 먹어야 하니까 밥 다 먹고 같이 놀자. 알겠지?" 

레일라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어디론가 뛰어갔다. 나는 라면 그릇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 통화하기로 약속했던 조랭이떡 멤버들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베이비 이슈! 아기가 나와 놀고싶어해서 통화는 이따 들어감.' 약간의 으쓱함이 가미된 메세지이기도 했다. 우리 집엔 애기 있다, 따위의. (하지만 조랭이떡 멤버들 대부분은 고양이 오우너여서 여기에 질투를 느끼진 않았으리라.) 라면을 대충 먹고 나와서 포크를 설거지하고 있자 레일라가 다시 다가와 물었다. 이제 나랑 놀아줄 거야? 방해가 될까봐 쫓아다니진 않았지만 어지간히 놀고 싶었던 모양이다. 다 먹길 기다린 듯 쫓아온 걸 보니.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한참 놀아주었다. 놀다 보니 레일라가 어디선가 예쁜 보라색 드레스와 검은 메리제인 구두를 들고와서 자랑했다. 파르디스 말로는 낮에 집 근처에 있는 겨울왕국 뮤지컬을 보러 간다고 했다. 잔뜩 들뜬 레일라에게 공주님같다고 칭찬을 퍼부었고, 곧 파르디스가 잔뜩 신난 레일라와 뮤지컬이 뭔지도 모를 것 같은 나이의 로저를 들쳐안고 뮤지컬을 보러 외출했다. 집에는 나만 남았기에, 오늘은 침대 위에서 하루 종일 조랭이떡 멤버들과 통화를 나눴다.

그러다 문득 비도 안 오는 김에 잠시 집 근처의 케밥 가게에 가보고 싶었다. 보통 유럽에서 케밥 가게라고 하면 굉장히 패스트푸드점같은 이미지가 있다. 패스트푸드? 내지는 길거리 음식? 하지만 집 근처의 케밥 가게에 방문해보니 서브웨이 뺨치는 청결한 오픈 키친이 나를 반겼고, 맛도 좋아서 이사가기 전까지 몇 번은 더 들를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밤이 되자 오늘도 이탈리아 시간으로 살고 있는 친구들과 함께 최근 개봉한 호주 공포영화 '악마와의 토크쇼'를 즐겼다. 처음 시놉시스를 보고서는 완전히 코미디 영화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생각보다 참신하고 잘 만든 웰메이드 영화였다.

내일은 원래 토스카나 와이너리+피렌체 근교 소도시 투어가 예정되어있는 날이었는데 비가 예정되어있어 마르코에게 부탁해 날짜를 바꿔달라고 여행사 측에 연락을 넣었다. 메일이나 따로 확인 메세지가 오지 않았는데 바뀐 요청대로 수요일에 가도 될지 걱정이 된다. 그래도 뭐, 스칼렛 오하라가 말했듯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내일은 키트 쟐로 작성, 그리고 아르바이트처에 송부할 CV작성을 마무리해야겠다. Forza 외노자 지망생! 결코 다시 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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