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ND 12 ; 하이캠프에서 묵티나뜨까지

"옴마니밧메훔"

by 블랙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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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굴은 부을대로 부어있고 콧물은 찔찔. 동네 바보형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우리 셋 다 멋있었다. 토롱라, 동네 바보형도 멋있어지는 곳.



토롱라 정상은 안나푸르나 라운드에서 가장 높은 5416미터에 위치한다. 수없이 많은 멋진 곳들을 거쳐가도 결국 이 곳이 안나푸르나 라운드의 하이라이트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가장 높고 가장 고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트레킹의 절정이라지만 막상 정상에는 특별한 것은 없다. 색색의 룽다 (오색 깃발)가 묶여 있는 표지판 하나와 비싼 레몬차를 파는 찻집 하나가 전부다. 또한 "어워썸"하고 "인크레더블"한 (오면서 지겹게 들은 서양 트레커들의 감탄어) 설산들은 보이지 않고 주변엔 달랑 쭈그리 같은 토롱피크(6000미터)가 전부다. 또한 정상가는 길임에도 흔한 밧줄 코스 하나 없는 완만한 경사와 평탄한 길이 얼핏 시시해 보이기도 한다. 트레커를 위한 길이기에 앞서 이 곳 사람들의 일상을 위한 길이기 때문에 안전하고 편안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5000미터를 넘어갔다는 만족과 흥분을 충족시키기에는 다소 싱거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괜히 하이라이트가 아니다. 올라가 보면 알게 될 것이다. 토롱라 정상에 서면 벅차오르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 그래서 괜히 그동안 수고한 등산화를 툭툭 털어보기도 하고 터져 나오는 소녀감성을 제어하기 위해 원투 쨉을 슉슉 날리기도 하는 곳이다. 싱거운 주변 풍경과 단순한 길임에도 막상 오르면 감성과 감동이 터져버린다. 왜...?




새벽 일찍 일어나 짐을 쌌다. 오후가 되면 앞으로 나갈 수 없을 정도의 바람이 맞을 수 있기 때문에 일찍 출발해야 한다. 밥을 먹고 준비하는데 일행 중 용석씨가 나와 전송을 해준다. 간밤에 아팠던 우수를 위해 하루 더 하이캠프에서 쉬기로 결정했다고 말하는 용석씨. 토롱라를 넘게 된다면 버스를 타고 포카라로 내려가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재민이와 나는 어퍼무스탕 지역을 돌아보기로 했기 때문에 앞으로 이들과는 못 만날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고 굳이 이 추운 새벽에 깨서 인사를 하러 나오는 용석씨가 고마워 굳게 손을 잡았다.



누군가 전송까지 해주니 마치 에베레스트 산의 캠프 4에서 정상을 공략하기 위해 떠나는 느낌이 든다. 힘차게 출발! 롯지 뒤편으로 이어진 비탈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새벽. 헤드램프에 의지해 바닥을 확인하며 걸었다. 하이캠프에 묵었던 이십여 명의 트레커들도 거의 같은 시간에 출발했는데 사람 수만큼 켜져 있는 램프 불빛의 행렬이 든든하게 느껴졌다. 그런데…백 걸음이나 걸었나.. 무시무시한 바람이 불어닥치기 시작했다. 숨쉴틈도 없이 내 볼따귀를 후려치는데 정상이고 뭐고 다 때려치고 다시 롯지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새벽 브리핑에서 씨버가 추위와 바람에 대해 겁을 주기는 했다. 근데, 씨버야. 새벽에는 바람 별로 안 분다면서? 응, 케니야. 별로 안 부는 거 맞잖아..별로 안 부는 게 이 정도라면 오후바람은 어떨지..ㅎㄷㄷ



존나게 추웠다. 칼바람 싸대귀 몇 대 맞으니 현실 파악이 제대로 되기 시작했다. 무서운 곳일세.. 나만 추운 게 아니었다. 함께 출발한 트레커들 모두 바람이 썅~하고 불어올 때마다 걸음을 멈추고 비명을 질러댔다. 너무 추워 눈물이 났다. 추워서 눈물이 날 수도 있다는 걸 처음으로 몸소 체험한 날이었을 것이다. 눈물은 그렇다쳐도 손가락이 잘려나갈 것 같고 몸이 굳어 허리가 제대로 펴지지 않았다. 이렇게 구부정한 자세로 3시간은 걸어야 토롱라 정상인데 도저히 못할 짓이란 생각이 들었다. 멘탈이 슬슬 무너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에이 씨발! 그래 걷자, 대충.



대충대충 앞선 트레커들만 따라 걷다 보니 해가 떴다. 콧구녕까지 얼어버렸는데 햇볕을 받으니 마음이나마 다소 진정이 되었다. 그치만 이 곳에선 태양 따위가 추위와 바람을 어찌할 수가 없다. 몸이 꽁꽁 얼었고 호흡도 잘 안 되니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졌다. 늘 나보다 뒤처졌던 재민이가 오늘은 나보다 훨씬 앞서 걸었다. 북극곰 지방 두께를 가진 내가 추위에 굴복당하고 만 것이다.


"얌마 너 왜 일케 뚱뚱해?" 평소에 사람들이 이렇게 물으면 늘 한결같이 대답했다. "모르는 소리 마소! 빙하기가 찾아와도 이 살과 지방이 날 지켜줄거요!" 이러면서 내 살을 불리며 살아왔는데..



내가 틀렸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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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롱라 정상까지 갈 때 찍은 유일한 사진. 추위에 손이 굽어버렸다. 내내 흐르던 콧물도 닦는 걸 중단하고 그냥 방치해버렸는데 사진 따위를 찍을 여유는 없었다... 앞에 보이는 쭈글탱 봉우리가 토롱피크다.



이런저런 생각이 지나갔지만 생각조차 얼어붙어 그저 땅만 보고 걸었다. 한참을 걷다가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는데 씨버와 재민이가 저 멀리 함께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숨을 고르며 잠시 쉬고 있을 때의 구부정한 자세가 아니라 장승처럼 우뚝 서 있는 자세로. 게다가 두 놈이 활짝 웃고 있었다. 추위에 입이 돌아가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진짜 웃고 있었다. 정상이다! 정상에 온 것이다. 추위도 어느 정도 가신 상태였지만 눈물 한 방울이 똑 떨어진다. 아이 씨..죽는 줄 알았다..


"씨버야! 눈은 왜 안 오는 거야?"


이제는 살았다 싶어 다시 까불어보는데 씨버가 손을 내민다. 어라? 악수를 하잔다. 야 씨버..이건 넘나 쑥스럽잖아. 멋쩍게 씨버 손을 잡고 몇 번 흔들었다. 그간의 고마움이 전해졌기를 바라면서. 숨을 고르고 추위에 반쯤 감긴 눈을 떠 주위를 돌아보니 작은 찻집이 보였다. 찻집을 '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덥혀지는 느낌이 들었다. 찻집에 들어가기 전, 토롱라에 오르면 누구나 행하는 구태의연한 의식인 점프인증샷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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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집에 들어가 난롯불을 쬐며 레몬차를 한 잔 마셨다. 굽었던 손가락이 펴지고 얼어붙었던 내장이 따뜻해지자 비로소 눈물-콧물로 범벅된 얼굴을 훔칠 여유를 찾았다. 레몬차 가격은 다른 곳의 서너 배는 족히 넘는 수준. 딱히 아깝지는 않았다. 설령 3배가 아니라 30배가 되어도 '리즈너블'이라 할 정도로 그 약효가 탁월했으니까. 레몬차를 다 마시자 "더워 죽겠구만, 아주 답답혀" 입을 털며 밖으로 나왔다.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왔다. 이 바람을 타고 묵티나뜨로 가자! 불교와 힌두교의 성지로 불리는 묵티나뜨가 오늘의 도착지였다. 토롱라 정상과는 고도차가 1700미터로 가파른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가야 한다. 올라왔던 길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데 경이로웠다. 아무리 높은 고개라지만 고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렇게 다른 풍경이라니! 내려가면서 보이는 풍경의 오른쪽 지역은 무스탕 지역이다. 사실 무스탕 지역에 대해서는 쥐뿔도 몰랐다. 그저 이름이 간지나고 (탕!으로 끝나잖아 ㅋ) 티벳과 네팔의 경계지역이라는 위치가 신비감을 더해주었을 뿐. 씨버에 의하면 최근에 와서야 발굴되고 개방된 곳으로 아직 신비와 미지의 땅이라고 했다.



이꼴 저꼴 보기 싫어 행방불명되고 싶다면 무스탕 지역으로 가리라! 무스탕 지역에 대해 처음 듣고 생각난 말과 상상은 이것이었다. 매혹적인 행방불명의 땅. 도피와 안식의 공존, 달콤한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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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조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씨 때문인지 나무가 거의 없는 돌산이 대부분이다. 그 돌산 위에 희끗희끗 보이는 만년설이 황량함을 더해준다. 황량한만큼 신비감을 더해주는 곳이 무스탕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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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 길은 무척 가팔랐다. 올라올 때는 짐승같이 힘을 냈던 재민이의 페이스가 뚝 떨어진다. 내리막길의 특성상 물집 잡힌 발로 걷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반면 추위에서 해방된 나는 소리 지르면서 뛰어내려왔다. 양손에 든 스틱을 사용하여 미끄러운 자갈과 흙길을 미끄러지듯이 내려왔는데 마치 스키를 타는 듯한 리듬감에 속도를 제어할 수도, 제어하고 싶지도 않았다. 방향을 바꿀 때마다 등산화가 땅에 밀리면서 먼지를 일으켰는데, 그때마다 발바닥에 부드러운 마찰열이 전해졌다. 스키를 타듯 미끄러운 자길길을 빠르게 내려가다 보니 몇 번씩 넘어질 뻔했지만 다행히 크게 넘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에라! 확 넘어져서 데굴데굴 구르다 무릎도 홀라당 까지고 온 몸에 멍도 들고 싶은 열망도 드는 그야말로 흥분에 '취한' 하산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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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갈과 모래로 이루어진 길이었는데 사진에 나온 길보다 경사가 급한 구간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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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들은 우리와 반대 방향으로 토롱라를 넘었다. 반대방향으로 넘기가 훨씬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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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돌아 본 토롱라피크. 쭈그리 같다고 악담해서... 미안하다아~~~!!



토롱라를 넘으면 풍경뿐만 아니라 사는 사람들의 외양과 성향도 확연하게 바뀐다. 토롱라 전은 마낭게, 토롱라 후는 따깔리 사람들의 마을로 나뉘었는데 거의 민족 구분이라 할 정도로 달랐다. 소박하고 꾸밈없는 마낭게 사람들에 비해 따깔리 사람들은 싹싹하고 이재에도 밝았다. 수많은 민족과 종족으로 이루어진 네팔에서 따깔리족의 음식을 최고로 꼽는다는데, 높은 음식수준도 수준겠거니와 무엇보다 그들의 뛰어난 사업수단 때문에 이런 인식이 퍼지게 된 것 같았다. 따깔리족의 뛰어난 사업 감각은 며칠만 지내봐도 바로 알 수 있었는데, 그들은 트레커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가는 곳곳마다 없는 게 없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 일단 묵티나뜨부터 묵었던 롯지들은 호텔이라고 불러 마땅했다. 호텔 식당에선 까르보나라 스파게티를 주문하면 '진짜' 까르보나라 스파게티가 나왔고 잘 말린 두툼한 이불보가 깔린 '진짜' 침대가 있었다. 쿰쿰한 냄새나는 침낭 따위는 이제 꺼낼 필요도 없었다. 씨버도 따깔리 사람들의 사업능력은 최고!라며 엄지척을 했다.



마을에 도착해서 우선 루카와 가니시를 찾았다. 함께 저녁이라도 먹으려고 했는데 이미 어딘가로 마실 나간 모양이었다. 저녁을 먹고 숙소 앞에서 잠깐 만나 이야기를 나눴는데 아쉽게도 이제부터는 일정이 달라 남은 여정을 함께 하지 못할 것 같았다. 포카라로 최대한 빨리 이동해 네팔 남부 쪽을 돌아본다는 루카. 특히 남부에 있는 치트완 국립공원에 대한 기대감이 큰지 그곳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는다. 순간, 망설였다. 루카를 따라 여행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루카 생각은 어떤지 알 수 없었다.


“루카! 거긴 호랑이가 드글드글해. 혹 마주치면 팔 하나를 내주더라도 목숨은 건져” 같은 하나마나한 소리를 하며 루카와 미지근한 이별을 했다. 이후 페이스북을 통해 몇 번 안부를 묻다가 그 조차도 끊겼다. 연락이 끊긴데 대한 아쉬움은 없지만, 가끔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만나면 루카 생각이 나고 그립기도 하다.



롯지 식당에 앉아 내 랩탑으로 재민이와 미드 '브레이킹 베드'를 감상했다. 이때, 식당 구석에 있는 카세트 스피커에서는 ‘옴마니밧메훔’이라는 노래가 나왔다. 곡명이 ‘옴마니밧메훔’ 일 수밖에 없는 것이 ‘옴마니밧메훔’이 노래 가사의 전부였다. 일정한 박자와 음정으로 ‘옴마니밧메훔’만 무한 반복되었는데, 오토리버스 기능이 있는 카세트라 한쪽 면의 테이프가 끝나면 자동으로 다른 쪽 면의 테이프가 돌아가게 되어 노래가 끝나지 않았다. 스피커 볼륨도 최대로 했는지 스님들이 바로 내 앞에서 목탁을 두들기며 노래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도저히 랩탑 스피커가 이겨내지 못해 아예 음소거를 하고 미드를 봤다. 옴마니밧메훔을 계속 들으며 미드를 보니 미드 속 긴장되는 상황과 갈등도 다 허망해 보이고 지나간 트레킹의 장면들만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직접 체험한 것이 아니라 그저 미치도록 아름다운 꿈을 꿨다는 생각이 들 정도록 '옴마니밧메훔'의 음색과 가사는 몽롱했다.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꿈만 꾸며 살다가 꿈이 없는 영원한 잠 속으로 스르륵 빠져들어야 하는데, 그저 즐거움반 두려움반속에서 무지몽매하게 살아가다가 허망하게 인생을 마치게 되겠지. 너나 나나. 옴마니밧메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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