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즐거워 비명을 지르다"
마르파에서 따또파니의 고도차는 약 1500미터. 칼리칸다키 협곡 위를 따라 내려가는 긴 하산길이다. 걸어서 내려간다면 세월아 네월아~ 하며 도가니를 붙잡고 2,3일 동안 터덜터덜 내려가겠지만, 자전거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야말로 ‘내리 쏘듯’ 가야 한다. 초반의 한 시간 정도를 제외하고는 계속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이다. 길의 폭은 지프 두 대가 지나갈 정도. 길의 오른쪽은 돌이 까슬하게 튀어나와 있어 부딪히면 대가리 깨질 수 있는 절벽, 왼쪽은 삐끗하면 풍덩! 칼리칸다키 협곡으로 입수하게 되는 천 길 낭떠러지. 게다가 모래로 인한 위험천만한 슬립과 자갈로 인한 불규칙 바운스를, 결국에는 '즐겨야' 하는 코스.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전거로 이 길을 따라 내려오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탓인지, 우리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갈 때는 졸고 있던 동네 똥개들조차 컹컹대며 따라붙었다. 너무 신이 나서 이대로라면 눈이 멀어버릴 것 같다는 생뚱맞은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지금도 그 길과 풍광, 먼지와 속도를 생각하면 엉덩이가 후끈거린다.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 자전거포 주인장은 리얼 마운틴 바이크라고 내준 신문사 경품 수준의 자전거. 그래도 자전거를 타고 내려온다는 흥분감에 혀로 타이어라도 닦을 수 있을 정도로 사랑스러웠던... 그러나, 펑크 한 두 번쯤은 각오하고 빌린 놈이다. 아니, 프레임이 부러지지만 않아도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는데, 펑크는 물론이고, 잔고장 한 번 없었다. 이 구간의 트레킹을 계획하고 있다면 자전거를 타길 권한다. 눈물 나게 재미있다.
아침에, 엉덩이가 뻑쩍지끈했다. 자전거 여행을 하면 언제나 가장 힘든 날은 두 번째 날이다. 첫째 날엔 자기 전까지도 고통이 찾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어라!? 이번에는 괜찮을 것 같은데?’라는 희망도 품게 만든다. 그러나, 다음 날 일어나서 안장에 앉으면 여지없다. 궁딩이 뼈가 타들어가는 듯한 느낌. 또 당했네..라는 깨우침과 함께 씨파! 한 번 욕하고 적응할 때까지 페달질을 하는 수밖에 없다.
오늘도 자비란 없다. 엉덩이 양쪽에 작은 악마가 자리 잡고 꼬챙이로 얄밉게 찌르는 것 같다. 너무 아파 마르파 마을 어귀를 벗어날 때까지 엉덩이를 안장에 붙이지 못하고 엉거주춤하게 탔다. 나뿐만 아니라 재민이, 씨버도 마찬가지. 각자 느끼는 고통의 부위와 정도는 달랐겠지만, 고통을 호소하는 표정과 자세는 비슷했다. 몇 미터 가기도 전에 서로가 자전거 타는 모습을 보며 낄낄댔다. 씨버는 하나도 안 아프다며 태연히 타는 듯했으나 역시나 엉덩이 쪽에 문제가 있는지 자세도 이상하고 가끔 입술이 일그러지기도 했다. 엉거주춤한 자세와 일그러진 표정을 보면 분명 궁딩이가 아프다는 건데, 아프다는 내색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포터로써의 자의식이 발동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간 많이 친해져서 격의 없이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씨버의 이런 모습을 보면 프로답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포터와 손님 간의 어쩔 수 없는 거리감도 느껴진다.
여러 마을을 거쳐 따또파니까지 가는 게 오늘의 목표. 도보로는 2,3일은 잡아야 할 만큼 긴데, 대부분 내리막길이라 자전거로는 하루 만에 갈 수 있다. 사실, 조금 더 설렁설렁 간다면 하루 더 여유 있게 탈 수도 있었지만, 대여 비용이 만만치 않아 하루 만에 가는 걸로 결정했다. 이왕 이리된 거, ‘스릴’만큼은 끝내주게 즐기리라 다짐하면서 출발! 우리가 가는 칸다가르키 협곡은 내려가는 쪽의 왼편에는 안나푸르나가 오른편에는 다울라기리 산군이 펼쳐져 있지만…핸들을 손에 꽉 쥐고 앞만 보고 내달리느냐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았다. 자칫 한눈이라도 팔다가 삐끗하면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을 것 같았다. 그래도, 다울라기리 쪽은 최대한 쳐다보려 노력하며 자전거를 탔다.
온통 눈으로 뒤덮인 산. 2주 전 카트만두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이름도 못 들어본 산이었다. 여행사에서 잡지를 보는데 잡지 커버에 흰 눈으로 뒤덮인 육중한 봉우리 사진이 보였다. 그 거대함과 신비함에 빠져 여행사 직원한테 물어보니 다울라기리란다. 최소한 혀를 세 번은 굴려야 발음이 되는 달콤한 이름까지 더해 다울라기리에 반해버렸고, 무조건 히말라야 산에 대한 로망의 대상은 이 놈으로 정해버렸다. 안나푸르나 라운드 도중에도 고레파니 전망대에서 다울라기리를 감상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씨버 말로는 모든 사면이 눈으로 덮여있는 유일한 고봉이란다.
영문 애칭으론 All white coverd mountain!
달콤한 케잌을 연상케한다. 반면에 안나푸르나는 이름이나 그 생김새가 차갑게 식은 시퍼런 사체를 연상시킨다. 아니, 근데 내가 지금 안나푸르나의 가호를 받으며 내달려도 시원찮을 판에 이런 악담이라니.. 하지만, 이미지가 그렇게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사실 안나푸르나도 좋다. 뭔들?! 가끔 인생이 말리거나 밀려나갈 때면 히말라야 14좌를 중얼거린다. 에베레스트 K2 로체 안나푸르나 마나슬루 초오유 마칼루 칸첸중가 시샤팡마 다울라기리 브로드피크 가셔브롬 1 가셔브롬 2 낭가파르밧… 옴마니밧메훔으로 비장함을 더한다. 이 주문의 비장함이 내 삶의 비참함을 잠시 덮을 수는 있다.
▲ 마르파에서 묵었던 게스트하우스. 파라다이스라 불릴만했다. 잠자리, 식사 모든 것이 대만족. 다울라기리, 안나푸르나, 투쿠체 등의 여러 산의 영험한 정기를 받은 마을에 위치해 있는 것만으로도 파라다이스. 다만, 그곳에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나 같은 뜨내기에게만 해당되는 말.
▲ 종아리 터지도록 밟는거야!!
▲ 점심을 먹은 식당. 이때까지만 해도 오르막이어서 패딩 입은 나는 땀에 쩔어 있었다.
▲▼ 본격적인 내리막길을 시작된다. '약 빨고' 타듯 한 번에 내달렸더니 사진이 없다.
출발한 지 한두 시간 정도 몇몇 마을을 지나가자 본격적인 급경사의 내리막길이 시작되었다.
김훈은 자신의 책 ‘자전거 여행’에서 자전거로 미천골을 내달릴때의 심경을 밝히면서, 몸이 너무 신나 비명을 지른다고 썼다. 안나푸르나 협곡의 내리막길을 따라 달려보니 그것에 관한 더 이상의 표현은 없을 듯하다. 아니, 확실히 없다. 내 몸도 정확히 그러했으니까. 비명을 지르고 나니 눈물이 살짝 났다. 더 이상 오늘의 다운힐에 대해서는 쓸 말이 없다. 기억을 더듬을수록 몸이 비웃기 때문이다. 그러하니..
어서 안장에 오르고 페달을 밟아라!
순식간에 내려와 따또파니에 도착했다. 멍했다. 오늘, 번쩍이는 쾌감이 온몸을 강타했다. 쾌감이 지나간 자리에는 노곤함이 밀려들었다.
▲ 따또파니에서 바라본 뒷산. 저 위 어딘가에 우리가 지나온 길이 있을 것이다.
▲ 삭막한 무스탕 지역에서 사방팔방 꽃이 피어나는 따뜻한 곳으로 하루 만에 이동한 것이다. 두 바퀴와 몸뚱아리 하나로.
롯지에 짐을 푼 뒤 닭 한 마리 바베큐를 저녁으로 주문하고 느긋하게 온천을 즐겼다. 따또파니는 온천으로 유명한 마을. 그래 봤자 자그마한 노천탕 두 개가 전부다. 탕에는 나와 재민, 씨버외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커플과 동네 아저씨 한 분이 전부. 트레킹 최성수기인 10월에는 트레커들의 때로 반죽된 우동탕이 된다는데 지금은 여유로워 수질도 온도도 너무 좋다. 전세 내고 즐기는 셈이다. 할무니가 거동이 불편한 할부지 등을 천천히 밀어드린다. 왠지 등짝 한 번 치면서 “이 웬쑤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끝까지 다정하게 정성스레 씻겨주시고는 부축해서 나가셨다. 노부부의 이런 모습을 보며 불현듯 끝도 없는 칠흑 같은 우주에서 0.1초간 떴다 사라지는 작은 빛이 연상되었는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저녁을 먹고 우리 셋이 섰다를 했다. 초반은 시버의 초깡패 모드. 씨버는 섰다는 처음이라 족보를 적어주고 그걸 보면서 게임하라고 했는데 끗발이 잘 서는지 족족 다 따갔다. 안되겠다 싶어 뻥카 좀 섞고 심리전을 피며 좀 흔들어주니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금새 오링. 오링난 씨버는 자러가고 재민이와 끝까지 남아 혈투를 벌였는데 결국 재민이도 오링. 두 명 모두 개털되고 내 주머니만 빠방! 몸이 즐거운 날은 뭘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