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인 미녀와 마주치다"
▲ 마르파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찍은 길의 모습. 세상의 모든 길은, 언제나 좋다. 집은? 글쎄... 언제 어디서건 길 위에 서 있기만 하면 자신감과 즐거움이 돋아난다.
까르베니에서의 밤은 무섭도록 달콤했다. 더 이상 목디스크가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경추 5번과 6번 사이에서 묵직하게 전해져 오는 통증의 해부학적 고찰 따위를 하며 걸을 필요가 없었다. 신나고 설레는 일이 천지에 널린 이 곳에서, 지속적인 목 주변의 통증은 일제강점기의 순사처럼 야비했고 고압적이었다. 그런데, 묵티나뜨부터 차차 완화된 통증은 까그베니, 마르파를 거치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몸상태가 좋아지니 트레킹 이후 여행 일정에 대해서도 조금씩 생각해 볼 여유가 생겼다. 최소 6개월은 작정하고 나왔기에 어디든 갈 수 있다. 어쩌면 청춘이라고 불릴 수 있는 시기의 마지막 배낭여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청춘이라는 생각만 하면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라, 아무 데나 주먹질을 하고 싶은 분노조절장애가 생겨난다. 나만 그런 건 아니지…? 지나간 청춘과 흘러간 세월에 대한 조바심이 처음 찾아온 순간부터 머리 깎고 득도하지 않는 한 그 조바심을 떨쳐 낼 수 없다. 지금 내 상태가 그렇다. 내 청춘의 마지막 배낭여행. 절박한 심정으로 온몸으로 모든 것을 만끽하며 다녔는데…
얍실하게도 여행을 다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청춘을 3년 더 연장하기로 나 자신과 합의했다.
좀솜을 거쳐 마르파까지 가기로 했다. 좀솜은 비행장이 있을 정도로 이 지역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시버는 정확히 똑같은 말을 두 번 했다. 마낭에서, 그리고 좀솜에서.
“여기엔 없는 게 없지!!”
좀솜과 마낭의 규모는 서장훈과 김병만만큼 차이 났지만, 둘 다 씨버 말이 맞기는 했다. 마낭은 토롱라패스를 넘어가기 위해 필요한 물품 중에 없는 게 없었고, 좀솜은 이 곳에 뿌리박고 살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춰져 있었다.
좀솜으로 향하면서 최상의 야크 치즈를 맛본다는 기대감으로 설레었다. 며칠 새 재민이만큼 야크 치즈 구워 먹는 재미에 푹 빠져버렸다. 마르파는 사과로 유명한 마을이다. 사과뿐만 아니라 사과로 만든 술 종류도 훌륭하다고 한다. 치즈와 사과주로 진탕 놀아삐자~~ 아침부터 흥이 넘쳐난다.
▲ 좀솜 가는 길의 풍경. 평탄하고 심심하다.
까끄베니에서 좀솜까지의 길은 오르막도 내리막도 거의 없는 평탄한 길이었다. 갈리칸다키 협곡을 따라 절렁절렁 산책하듯이 내려가다 보면 좀솜이 나왔다. 길이 편안한 데다 오전에는 바람도 없어 여유롭게 한담을 나누며 걸었다. 더불어 많이 웃었다. 그렇게 좀솜에 도착하여 시골 양반 서울 구경하듯 두리번거리면서 좀솜의 번화가를 쏘다녔는데, 넋이 나갈 만큼 아름다운 여인이 우리 앞으로 지나갔다.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야크 치즈 외에는 도무지 흥분하지 않던 재민이도 탄식을 내질렀다.
“형! 지금 지나가는 여자 봤어요? 진짜 말도 안 되게 이쁘지 않아요?”
“어.어..하악..”
잠시 턱이 빠졌다. 다수의 어린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으로 보아 선생님으로 추정되는 그 여인은 전형적인 인도 미인… 을 초월한 초현실적인 미인이었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절세미인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는 말을 얼핏 들은 적이 있는데 신기하게도 정말 한숨이 나왔다. 이후의 어떤 인도영화를 봐도, 세계 어느 곳을 다녀봐도 이 정도로 충격적인 미인은 만나보지 못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함께 그 여인을 봤던 씨버의 반응은 그저 무덤덤했다는 것. 애써 우리의 의견에 동의는 했지만, 그다지 이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순간, 징쯔이와 한국인 자매가 떠올랐다. 씨버에게 '예쁜 얼굴은 찡그려도 예쁘다'란 명언을 하게 만든 그녀들. 씨버, 너란 녀석의 취향이란 대체…
아무도 배가 고프지 않아 좀솜에 있는 카페에서 간단히 차와 빵으로 점심을 때우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노닥거리고 있었는데, 지나오면서 봤던 벽에 붙어있던 찌라시가 머릿속에 번뜩 스치고 지나갔다. 자전거 렌트 광고였다. 애당초 자전거를 타겠다는 계획이나 생각이 없어 대충 훑어만 보고 지나쳤는데, (사실은 전무후무한 미녀를 본 충격으로 멍해서!!), 갑자기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부터 따또파니까지는 내리막길, 그것도 아주 긴 내리막길이라고 한다. 나귀처럼 혓바닥 쭈욱 내밀고 너털너털 내려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몸이 간지럽고 지루해지려고 한다. 그런데, 자전거라면 얘기가 달라질 것이다. 천 길 낭떠러지 협곡을 낀 아찔한 내리막길을 자전거로 내달린다면? 그야말로 1초도 방심할 수 없는 긴장감으로 온몸의 기와 끼가 요동칠 것이다. 히말라야 다운힐 프로젝트!
“씨버! 자전거로 내려간 적 있어?”
“네버!”
와우! 안나푸르나 라운드만 벌써 10번째인 씨버가 아직 한 번도 시도 못한 자전거 트레킹! 씨버가 안 해봤다니 더욱 신이 났다.
“재민! 씨버! go?”
“고고!!”
재빠르게 행동에 나섰다. 다행히 렌트샵이 문을 열었다. 흥정을 시작하는데, 오 마이 갓! 이틀 빌리는데 한 사람당 10만 원이 넘었다. 렌트샵 주인은 어떤 타협도 흥정도 없다는 근엄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흥정에 소질이 없는 나는 가격의 압박으로 딸꾹질이 났다. 게다가 씨버는 자신의 비용을 내가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무척 부담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 기회를 잡는데 10만 원은 크지 않았다. 나중에 나이키 신고 싶을 때 나이스 신으면 될 일이었다. 1초도 망설이지 않고 흥정을 시작했다. 다행히 조금 깍는 걸로 합의를 보고 3대를 빌렸다. 내가 망설였다면 씨버의 마음이 편치 않았을 텐데, 망설임 없이 추진한 것은 두 번 생각해봐도 잘한 일이었다. 자전거는 쇼바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그야말로 신문사 경품 수준의 자전거였지만, 두 바퀴가 온전히 달려있는 것만으로도 감격했다. 손가락으로 바큇살을 집어 살짝 튕겨보았다. 단단하니, 히말라야의 적토마라 불릴만했다. 큰 배낭은 모두 주인에게 맡기고 작은 배낭을 빌려 간단한 짐만 꾸려 넣은 채 출발!
▲ 좀솜-포카라 간 비행기 노선이 있었다. 비행기가 이륙하는 장면은 언제나 마음을 들뜨게 한다. 자동차는 사라져도 비행기만큼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 한 숨 짓게 만드는 미녀를 만난 좀솜의 번화가
▲ 야들아~ 싸우지 마라!
▲ 전쟁은 해법이 아니란다!
자전거로 좀솜 시내를 휘휘 둘러보았다. 안장에 앉은 채로 집들, 상점들, 사람들, 사람들의 웃음과 화냄을 봤다. 걸을 때와는 다르게 이 모든 모습들이 휙휙 빠르게 눈 앞에 지나갔다. 좀솜에 대한 짧은 광고를 본 듯했다. 걸을 때와 느낌이 확 달랐다.
본격적으로 마르파로 향하기 전에 진짜배기 야크 치즈가 있는 가게로 갔다. 치즈와 빵, 음료수 등을 파는 가게였는데 치즈가 숭덩숭덩 큼직하게 썰려있었다. 색깔도 전에 먹던 노오란 치즈와는 달리 허여멀건해서 왠지 믿음이 갔다. 한 입 떼서 먹어보는데 이전의 치즈와 차이는 느끼질 못했다. 미세한 맛을 느끼지 못하는 뚱뚱한 혀를 탓하며 씨버만 믿고 2kg를 사서 재민이와 나눴다. 치즈를 받아들고 씐난 재민이. 재민이가 구워 줄 치즈를 떠올리며 침 흘리는 나. 나는 파블재민이의 개다!
좀솜을 벗어나 본격적인 자전거 트레킹을 시작했다. 걸을 때와 자전거를 탈 때 쓰는 근육은 분명 다르다. 허벅지 안의 싱싱한 근육을 자극하여 페달을 밟기 시작한다. 야호~굴러간다, 히히! 당연함과 단순함이 주는 감동에 온 몸을 떨며 본격적으로 바퀴를 굴려대는데, 한 시간도 채 못되어…OTL. 미친듯한 바람이 불어왔다. 자전거 탈 때 바람은 두 종류다. 순풍과 역풍. 둘 중 하나일진대 자전거만 타면, 뭔 일만 할라치면 어김없이 불어오는 것은 역풍. 게다가 씨버말과는 다르게 계속되는 오르막. 이미 입안은 모래먼지가 가득이다. 역풍은 더 거세진다. 심한 오르막에 들어서도 자비는 없다. 어찌할 셈이냐?
단연코!! 끌바, 끌바(자전거를 끌고 걷는 것)만은 아니 된다. 네버 에버! 자빠질 때 자빠지더라도 안장에서 내리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 번 끌바 하면 계속 끌바 하게 된다. 힘차게, 어글리하게, 3인의 자전거 댄싱이 시작되었다. 엉덩이를 들고 좌우로 뒤틀고 실룩거리며 페달을 밟았고 기어이 오르막에 올랐다. 5400미터의 토롱라에 올라도 정복이라는 생각은 전혀 안 들었지만, 오늘 자전거로 고개 하나를 오른 후에는 정복했다는 쾌감이 솟구쳤다. 단 한 번의 끌바 없이 마르파에 도착했다.
마르파에 도착하니 궁둥이가 묵직한 게 아파오려고 한다. 아마 내일 아침, 우리 3명 모두 안장에 처음 앉을 때 비명을 지를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웃음이 터졌다.
마르파는 사과의 고장. 짐을 풀고 애플파이와 애플 브랜디로 사과축제를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맛있지는 않았다. 조리법의 문제인지 확인하기 위해 사과를 하나 와그작 베어 물었는데 첫맛이 그저 그렇다. 재민이는 맛있다고 호들갑. 확실히 내가 과일에 관해서는 무척 까다롭고 맛에 대한 기준점도 높다. 엄마 때문이다. 엄마 말은 죽어라 안 듣긴 하는데 남의 집에 갈 때 과일을 사 가려면 무조건 최고의 것으로 사가라는 말씀은 가슴에 새기고 실천하며 산다. 울 엄마 말씀,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 마르파는 깜찍하고 정갈한 마을로 다울라기리 트레킹으로 빠지는 길목에 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사과가 익어가는 마을, 다울라기리를 꿈꿀 수 있는 마을.
▲ 콧물 질질 흘리면서도 똥폼 잡는 모양을 보니 장차 크게 될 놈일세!
저녁을 먹고 나니 온 몸이 슴슴하게 떨려오는 게 감기 기운이 도는 것 같았다. 조금 걱정되었지만, 실리가르카에서 훨씬 더 심한 증세도 거뜬히 이겨냈는데 이 정도쯤이야…
게다가 난 아프다고 창백해진다는지 헤쓱해진다는지 해서 모성애를 자극하고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외모와 아우라를 지닌 사람이 아니다. 나 같은 인간은 아프면 그냥 솎아내고 떨궈내고 버려진다. 그래서, 절대 아프면 안 된다. 이를 악물고 건강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여행지에서는 짐승처럼 건강하다. 몸 안에 스며드는 추위를 이기기 위해 식당에 남아 있는 서양인 트레커들과 차를 마시며 떠들다가 몇몇은 자러 들어가고 남은 사람들과 함께 카드를 쳤다. 재민이도 카드놀이에 꼈는데, 어제와는 달리 기세를 잃기 시작했고, 결국 다음날 따또파니에서 나에게 뽕빨리고 말았다. 호구 맞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