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08
제주도에 살 때 전원주택의 꿈을 꾸었다. 바다를 마주하는 집을 짓는 건 사진 찍기는 좋으나 맛은 없는 식당과 마찬가지이다. 해풍에 날아드는 모래와 소금기가 집을 안팎으로 괴롭히기 때문이다. 하여 제주의 또 다른 매력인 산으로 집터를 구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안쪽으로 가면 위험하다. 왜냐하면 한라산은 꽤 높은 산이고 제주도도 겨울에는 춥기 때문에 조금만 올라가도 눈 속에 파묻혀서 겨울 내내 장보기도 못하는 날이 꽤 될 것이다. 또한 너무 외진 곳은 피했다. 가격이 싸다고 숲 속에 집을 지으면 늦은 밤이 되면 집에 찾아가기도 어렵다. 택시도 잘 안 오는 곳에 버스가 있을 리가 없다.
이런 까다로운 조건을 거쳐 회천 쪽 조그마한 마을로 터를 정했다. 50가구 정도가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땅은 마을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한쪽으로 대나무가 조금 있는 것으로 보아 예전에는 집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제주도는 집에 대나무를 심는 것이 풍습이어서 길을 가다가 생뚱맞게 작은 대나무 숲이 나오면 대부분은 예전에 집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값을 지불하고 땅이 내 것이 되었다. 등기부등본을 보니 나보다 앞선 소유자들을 알 수 있었다. 그중에 가장 눈에 띄는 건 첫 번째 소유자였다. 문서를 보면 땅의 소유권이 어떻게 이동하는지가 보이는데 첫 번째 소유자가 가족으로 보이는 두 번째 소유자로 넘기는 과정에 특이한 게 있었다. 바로 '행방불명'. 시기를 보니 해방 직후였다. 해방 직후 제주에서 행방불명된 중산간지역의 남자. 역사의 상처는 이런 사사로운 순간에도 남아 있었다. 제주를 떠나기 전에 4.3 평화공원을 방문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