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라봄 Jun 19. 2021

내 눈물에는 이유가 있다

나는 울보다


어릴 적부터 나는 잘 울었다. 기뻐도 속상해도 눈물이 났다. 사실 울보가 과거형은 아니다. 서른일곱, 지금도 난 울보다. 뻑하면 운다. 울고 싶어서 운다기보단 그렇게 눈물이 난다. 중학교 때 코 옆에 큰 점이 있어서 오서방(봉숭아학당 맹구 친구)처럼 보이던 게 어찌나 싫던지. 다행히도? 안경을 쓰기에 점이 가려지도록 짙은 색의 뿔테 안경만 쓰곤 했다. 지금은 그 점을 빼서 없지만, 점을 빼러 갔을 당시에 피부과 의사 선생님께서 눈 밑에 점도 빼자고 하셨다. 그건 눈물점이라고 빼야 한다고. 근데 뭐 난 그런 것도 믿지 않을뿐더러 눈 밑은 점을 빼면 엄청 아플 것 같다는 생각에 겁이 나서 안 뺐다. 그때 눈물점을 안 빼서 내가 울보라는 게 아니라, 울보라는 글을 쓰는데 그때 일이 떠올랐다.


슬의생(슬기로운 의사생활), 유퀴즈(온 더 블럭), 유튜브를 보다가도 울컥. 진짜 많이 울곤 한다. 행복은 강도보다 빈도라는데, 나에게 울음은 강도보다 빈도다. 그루들이랑 같이 유퀴즈를 보다가도 분위기가 싸하면 일제히 나를 보며 "엄마 울어?" 하곤 묻는다. 그러면 뭐 나는 97% 울고 있다. 나머지 3%는 눈물이 차오르는데 애들이 물어봐서 눈물이 흐르지 않는 정도? 가끔 지금 내가 우울증인가? 싶을 때도 있는 게 사실이다. 기뻐도 눈물. 슬퍼도 눈물. 희로애락을 눈물로 표현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나 할까!


오늘도 짝꿍이랑 축구 경기를 보다가 아나운서가 해설을 잘하신다 이야기를 나누었다. 짝꿍은 저 아나운서는 참 말을 잘하신다면서 한 일화를 말해 주었다. 한 번은 손흥민 선수가 골을 넣었을 때, 아나운서가 한 말이 "골을 넣은 이 선수의 국적은 대한민국입니다"라며 적재적소에 말을 잘하신다고 칭찬 일색이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또 눈물이 차 올랐다. 의아하게 보던 짝꿍은 어느 포인트가 눈물이냐며 물었고 나는 "대한민국"이라고 말해줬다. 지금이야, 손흥민 선수, 박지성 선수 말하면 다 알지만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유럽 선수들에 비해서 다소 왜소한 체구에 나라마저 생소한 대한민국 소속이라면 무시당하는 일이 더 많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 자리에 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싶어서 나도 모르게 울컥하며 눈물이 차 올랐다. (누가 보면 내가 축구 광팬쯤 되는 줄 알겠지만 룰도 잘 모른다. 또 누가 보면 손흥민 선수와 박지성 선수와 인연이라도 있는 줄 알겠지만 1도 없다. 내겐 인연 좀 있었으면 좋겠는 유명한 분들이고 응원하는 분들이다.)


그 노력이 가히 얼마만큼인지 감히 알지는 못하나 정말 축구라는 한 가지에 제대로 빠졌기에 지금의 자리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분들의 노력으로 대한민국이 좀 더 널리 알려진 것도 국민으로 감사하다.


울컥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저들이 축구라면  '나는 뭐에 빠져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며칠 전, 아이들이랑 소울 동화책을 읽다가 앞표지의 빈칸을 보곤 혼자 한참을 생각했던 터라 이런 생각이 들었나 보다.



이 세상에서 '이야기'를 가장 좋아하는 '아라봄'의 책입니다.




나는 '이야기'를 좋아하고 관심이 많다. 세상에 단 한 명도 똑같은 사람이 없고 똑같은 이야기가 없다. 같은 소재라도 누가 쓰느냐에 따라서 이야기는 달라진다. '피아노'라는 단어를 가지고 어떤 이는 기쁨을 어떤 이는 좌절을 표현할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어릴 때부터 감정이입을 잘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인가 친구들은 나에게 고민을 많이 털어놓았다. 그리고 따뜻한 마음이 전해져서 고맙다고 나에게 말하곤 했다. 특별하게 내가 해결책을 제시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생각해보면 그저 공감해 준 것뿐이다. 억지로 그 상황에 나를 가져간 게 아니라 마음으로 듣다 보니 나는 그 상황에 가 있었고 고민을 털어놓는 친구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같이 웃고 울 수 있었다.


어릴 땐 눈물이 많은 게 싫었던 적도 있었다. 스마일,  긍정의 힘, 웃는 게 최고 같았고 밝게만 보이고 싶었다. 울면 괜히 나약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우울증 같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눈물이 부정적인 슬픔의 감정만은 아니라는 것을. 영화 '인사이드 아웃'처럼 기쁨, 화남, 까칠함, 소심함 등 모든 감정은 나를 표현하는 통로라고.


내 눈물은 더 이상 나약해 보이는 것도 우울한 사람도 아니다. 가끔 어이가 없을 때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터뜨리는 것처럼 나는 그저 나도 모르게 기쁠 때는 기뻐서 울고 대견스러우면 대견스러워서 울고 속상하고 슬프고 화나면 또 그래서 운다. 그냥 이게 자연스러운 나다.


사실 나는 이번 주도 빈도 높게 울었다. 책 읽다가 울컥. 유퀴즈 보다가 주르륵. 슬의생 보다가 오열했다. 이런 나도 인정하고 사랑하는 나는 울보다.

작가의 이전글 내 인생의 봄날을 살아보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