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은 사랑을 싣고
퇴근길 아빠 손에 들린 시원한 수박 한 통.
금색 모래알과 푸른 바다 빛깔의 포장을 한 훌륭한 이름을 가진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 상자.
그리고 여름휴가. 강원도의 뜨거운 해수욕장과 시원한 계곡. 아빠가 운전하는 봉고차를 타고 오가며 불었던 옥수수 하모니카까지.
매년 여름이면 떠오르는 추억이다. 그래서 나는 무의식 중에도 강원도를 좋아하는가 보다. 맞벌이로 가게를 운영하시던 부모님이 유일하게 가게 문을 닫는 여름 성수기 2박 3일. 길어야 3박 4일. 어린 시절 나는 이 시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우리 가족 물놀이도 하고 모래사장에서 모래찜질도 하고 따스한 기억이 나서 지금도 여름이면 휴가 기간이 되면 그 기억에 미소 짓게 된다.
부모님은 맞벌이로 미안한 마음을 2박 3일 찐하게 사랑 표현하셨던 것 같다. 그 추억이 따스하게 느껴지는 걸 보면 부모님의 사랑 표현은 성공이다. 어느 날은 해수욕장에 텐트를 치고 아빠가 불어준 튜브를 타고 둥둥 떠다닌 기억이 나고 어느 날은 차가운 계곡 물에 돌을 쌓아서 계곡 냉장고에 수박을 담가 두고 신나게 물놀이를 했다. 물놀이를 마치고 계곡에 발 담그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시원하고 달콤한 수박을 먹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굳이 더운데 텐트를 치고 놀았던 게 행복했다니, 지금 생각하면 아이러니 하지만 그땐 마냥 좋았다. 내겐 유일한 가족여행이 ‘여름휴가’였으니까.
지금도 7월 말부터 8월 초에는 극성수기로 바다가 북적북적해지는 여름휴가가 있는 대한민국에 감사하다. 그때도 직장인들이 휴가를 가니까 손님이 없겠거니 하고 우리 부모님도 휴가를 떠났을 것이다. 다 몰려든 고속도로에 몇 시간씩 서 있기도 하고 붉은 해를 그대로 받아 미지근한 해수욕장에 사람반, 튜브반 서로가 서로를 밀고 다니는 상황에서도 휴가라고 그곳에서 아우성이었으니 참 신기하다. 더운 여름 모래알도 익어서 발바닥이 뜨거운데 그 모래사장에서 비치볼을 주고받았던 기억도 난다. 그렇게 한참을 놀고 홍당무처럼 익은 얼굴에 네 식구 쪼르르 누워서 감자팩을 붙이곤 시원한 선풍기 바람에 의지해서 텔레비전을 보며 마무리했던 여름휴가가 떠오른다.
휴가 준비부터 집에 와서 뒷정리까지 … 생각해보니 아빠랑 엄마도 일 년 중 유일한 휴가인데 제대로 쉬지 못하셨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우리 남매를 위한 부모님 마음이겠지? 부모가 되어야 부모님 마음 좀 헤아린다더니 네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난 지금 그때의 부모님 마음이 좀 헤아려진다. 나도 지금 그때의 부모님처럼 아이들과 여름 캠핑을 하며 지내고 있다. 캠핑을 하면 피곤한 것도 사실이지만 나에게 어린 시절 추억이 소중하게 자리 잡았듯 아이들과 추억을 쌓을 수 있어서 좋다.
첫 캠핑은 작년 여름에 시작했다. 불쾌지수가 상당한 여름에 시작했던 첫 캠핑으로 ‘우리가 과연 캠핑을 계속할 수 있을까?’ 했지만 아이들이 평소에 보던 전기밥솥을 떠나 코펠에 밥을 지으며 돌멩이 하나 올려놓고 장금이 놀이도 하고 (애니메이션 장금이의 꿈의 한 장면을 따라 했다) 자연관찰책에 나올법한 여러 모양의 나뭇잎, 조약돌 그리고 올챙이도 보고 물고기도 보고 물놀이를 하며 더위 속 찰나의 시원함도 누릴 수 있는 여름 캠핑을 2년째 누리고 있다. 어릴 적 부모님과 하던 더위 속 아이러니한 캠핑을 우리 아이들과 하고 있다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그 시절 우리 부모님이 힘들어도 나의 즐거움에 기쁘셨듯이 나 역시 감성은커녕, 생존 캠핑으로 땀 샤워하는 날이 많지만 아이들과 자연에서 즐겁고 일상에서는 맛볼 수 없는 여름의 캠핑이라면 언제든 텐트를 들쳐 멜 것이다.
두 달 전, 강원도로 캠핑을 다녀오면서도 내가 강원도들 막연하게 좋아하는 이유는 여름휴가의 추억 때문이구나! 느끼게 되었다. 바다가 가까운 지역에 살면서도 유난하게도 강원도 바다를 좋아하는 이유는 향수가 가득하기 때문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이 일들이 내 안에 기분 좋은 감정을 전달하고 있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계절의 캠핑이 다 다르지만, 우리 가족은 여름 캠핑을 좋아한다. 물놀이를 할 수 있는 큰 장점과 더불어 여름의 나뭇잎은 초록 잎이 생기가 넘치게 싱그럽다. 그뿐인가, 사마귀도 만나고 거미, 벌 심지어 뱀도 만난다. 일상에서 만나기 어려운 곤충들과 인사도 한다. 여름의 캠핑장의 모습은 우리 부부는 텐트 치기에 바쁘고 (사실 짝꿍이 거의 다 한다. 나는 거들뿐) 아이들은 해먹에 누워서 빛나는 초록 잎의 여름 나뭇잎 사이로 까꿍 해님을 만난다. 어느 날은 그 모습이 너무 예쁘다며 내 사진첩에 인증샷을 어머어마하게 남겨 두었다. 텐트를 다 치곤 의자 6개에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놀 계획을 세우고 먹을 계획을 읊는다. 시원한 음료 한잔씩을 마시며 눈앞에 흐르는 계곡 물소리를 bgm 삼고 우리는 집에서와 다른 여유로운 대화를 나눈다.
잠시 쉬었으면 이제는 누릴 시간. 계곡물이 차디찬데도 여름이라는 단어 하나로 다 이해가 될 만큼 계곡물에 입수하는 게 필수코스인 시원한 여름날 계곡은 꿀이다. 마스크 자국을 두고 얼굴이 탄다고 해도 포기할 수 없을 만큼 누리고 싶은 시원함이다. 계곡의 시원함을 만끽하고 나와서 뜨거운 컵라면을 호로록 먹으며 몸을 녹이는 아이러니한 행동을 또 하곤 하지만 말이다.
두 달 전의 캠핑이 올여름의 마지막 캠핑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코로나가 종식되는 그날에는 친정식구들과 함께 3대가 함께하는 캠핑을 가고 싶다. 또 다른 여름의 추억이 내게 저장될 것 같다.
유난하게도 더운 올여름.
캠핑도 물놀이도 하기 어려운 올여름.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그래도 이 여름이 힘든 기억으로만 남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