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상담사 Uni Jul 12. 2021

사춘기 아이의 눈빛이 변했다. "000" 덕분에

 중 2 첫째의 사춘기는 초등학교 5학년 때였어요. 생글생글 웃던 아이와 등교하기 전, 시한폭탄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긴장감에 하루하루를 보냈어요. 상담사여도 첫째와의 실전 경험에서 해법을 찾기까지 1년 넘게 고생을 했답니다. 돌고 돌아 찾은 해답의 끝은 제가 초연의 경지에 등극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아이가 갑자기 머리가 마음에 안 든다며, 책이 없어졌다며, 학교 안 간다며 난리가 나도 절대 흥분하지 않고, 얼른 평정심을 찾아야 해요. 저도 같이 흥분해서 아이와 대치해봤자 둘 다 너덜너덜해지거나, 저만 또 땅을 치고 후회할 일 만듭니다. 

 초연하기 위해 참 무던히도 애썼는데요. 아이가 화를 내고 폭발할 기미가 보이면, 방을 나온다거나 부엌으로 와서 얼른 제 할 일을 했어요. 아이가 이미 발산을 크게 하고 있고, 저의 게이지도 끝을 향해 치닫고 있다면, 베란다로 가서 문을 닫고 아이 욕도 하고, 이어폰을 껴서 음악을 크게 들었어요. 아이가 화나게 할 때 듣는 음악 플레이 리스트를 만들어야 해요.


 몇 년 지나니,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추억으로 잊혀 갈 때쯤, 기쁨이도 사춘기가 시작되었어요. 예전보다 긴장감이 덜하고, 한 번 겪어봤어서 그런지 여유가 있네요. 그래도 아이가 차가운 눈빛을 날려대고, 순화해서 "엄마나 잘하지"라는 식의 상상하지도 못했던 말들이 꽂히면 감정 주체가 안 돼요. 아침에 좋은 기분으로 일어났다가도 한 가지에서 수가 틀리면 집을 나설 때까지도 찬바람이 쌩쌩쌩입니다. 


 어찌 된 일인지, 몇 달은 아이도 이리저리 혼란한 모습이 상승곡선을 타더니 얼마 전부터 하향 곡선이에요. 오히려 원격과 등교의 혼란 속에 힘들어하던 아이가 중심을 잡아가요. 원격 수업 후에도 숙제하려면 마칠 때쯤 돼서 겨우 힘을 냈었는데, 요즘은 수업 끝나면 숙제 먼저 한다며 밥도 늦게 먹겠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지각 등을 별로 개의치 않았는데, 이제는 늦지 않게 가야 한다며 자기가 먼저 시간을 챙겨서 후다닥 움직이고, 신경을 쓴답니다.

 

 너무도 당연한 슬기로운 학교생활이겠지만, 저도 코로나가 온 작년부터 아이를 신경을 많이 못 써 줬어요. 제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저 챙기기도 정신이 없었고, 한동안 우울이 심해서 아이를 챙기지 못했어요. 더 챙겨줘야 하는 아이인데 말이죠. 그러다 보니, 아이도 사춘기까지 오면서 일상이 흔들리고 불안정했답니다. 사춘기 덕분에 제가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되었죠. 


'사춘기, 지금이 아이에게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데, 여기서도 챙겨주지 못하면 안 돼. 지금까지 할 수 있는 힘낸 거 알아. 이젠 최선을 다 해 보자.'


 그때부터 시간이 될 때마다 초등학교 4학년 아이와도 등굣길을 함께 했어요. 아이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최대한 가져보고, 기쁜 추억 만들려고 했답니다. 다시 초연의 여왕에 등극하기 위해 이번에는 "고마워"를 썼어요. 의도적으로 한 건 아니었는데, 예전부터도 아이에게 했던 말인데 신경 써서 마음을 전했어요. 저를 화나게 할 때는 그런 때였을 뿐이고, 아이가 잘했거나, 조금이라도 성장한 모습이 보였을 때는 무조건 "딸, 고마워~~"예요. 설거지를 맘에 안 들게 했을 때도 "딸, 애썼네, 고마워", 딸이 어항의 금붕어들 먹이를 챙겨 줄 때도 "딸, 고마워~", 반려견 산책을 시켜서 했을 때도 "딸, 수고했어, 고마워." 말해 줘요.


 그랬더니, 아이의 입에서도 "엄마, 고마워"가 나와요. 밥을 먹을 때마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었습니다."를 말하고, 우유를 건네주면 "엄마, 고마워.", 간식을 사다 주면 "엄마, 고마워", 핸드폰 배터리 없어서 제 것 빌려 주면 "엄마, 고마워~", 아이가 좋아하는 프리파라 한다고 대학로까지 같이 가주면 "엄마, 힘든데 나를 위해서 함께 가줘서 고마워" 해요.

 아이의 입에서 "고마워"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저는 심쿵합니다. 별 일도 아닌데 제가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같고, 아이의 마음이 예뻐서 미소 짓게 돼요. 아이도 그런 마음이었을까요? 제가 고맙다고 할 때마다 아이의 단단히 굴려진 차가운 눈덩이가 녹는 기분이었을까요? 쨍쨍한 햇살이 자신을 따듯하게 비춰주는 것 같았을까요? 아이의 요즘 달라진 일상이 아무리 생각해도 "고마워"라는 말인 것만 같아요. 제가 딸을 위하며 생각하고 노력한 행동들 중, 가장 쉽고도 강력했던 방법이 "고마워", 이 세 글자였습니다. 


 저희 아이만 그런 걸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많은 부모님들께서 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아이의 작은 행동에도 귀히 여기는 마음으로 "아들, 고마워~", "딸, 고마워~~"하면서 튼튼한 징검다리를 놓아보세요. 아이와 부모님 사이에 멀어졌던 간격 속에 징검다리를 놓아서 이어질 수 있도록요. 

 고맙다는 말은 상대에게 나의 존재로서 인정받는 강력한 찬사예요. 억지로 하면 효과 없죠. 아이의 행동에서 고마운 부분에 먼저 조명을 비추고 찾아보세요. 스킵했던 장면들이 눈에 들어올 거예요. 그 순간을 이제 놓치지 마세요. 아이가 내 옆에서 숨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지요.


 "고마워, 여기 함께 있어줘서, 나를 부모로 사랑해 줘서"


 

 

매거진의 이전글 딸이 용기를 깨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