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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상담사 Uni Jan 11. 2021

딸이 용기를 깨웠다

 토요일 오후, 두 딸은 아빠에게 혼이 났다. 함께 집에 있는 시간들이 길어지니, 사소한 일들로도 마음속에 불만이 쌓이고, 버티고 버티다 활화산처럼 터지는 그런 날이 있다. 부모로서 그러고 싶지 않은데, 어느 가정이나 겪는 일이려니 싶어도, 양쪽 모두에게 지나고 나면 씁쓸함이 남는다. 오늘은 온라인 학습을 하겠다고 했는데, 제대로 해 놓지 않았던 것이 발단이었다.

 이제 11살이 된 둘째 딸은 얼마 전에도 아빠에게 혼이 났었다. 그때 아빠가 할 말이 있냐고 묻는데도 아무 말을 못 하고 고개만 저었었다. 부부간에도 자식을 혼낼 때 쉬이 끼어들 수 없다. 나 역시도 미친 사람처럼 아이들을 잡을 때도 있다. 이럴 때 남편이 중재하면, 내 화는 더 커질 게 뻔하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볼 때, 가슴은 아프지만, 우선은 끝나기를 기다린다. 그 시간이 끝나고, 아이와 대화를 나눴다.


"아까 아빠가 할 말이 있냐고 물었을 때, 마음이 어땠어?"


"억울했지~ 아빠도 실수할 때 있었는데, 나한테만 그러니까. 말하면 또 혼날 것 같으니까 무서워서 말을 못 하겠었어."


"그치, 그때는 누구라도 말하기 어려워.."


 아이의 억울한 마음이 이해가 갔다. 화내고 있는 사람한테, 그것도 어른한테 이야기하라고 해서 말해봤자 본전은커녕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니 말이다.


 억울해도, 말을 못 하겠다고 했던 둘째가 오늘은 좀 달랐다. 주눅 들어 있지 않았고,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는 듯했다. 아빠의 말에도 별로 기죽지 않는 것 같더니, 갑자기 이 말을 했다.


"아빠, 아빠가 이 말을 하면서 바라는 게 어떤 거야?"


 두려움 없이 아빠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묻고 있는 이 순간이라니. 아.. 이런 말을 생각했다니.. 그 뒤에 이어지는 말들에서도 자기 이야기를 조금씩 해 내었다. 아빠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자기도 온라인 학습을 하려고 했으며, 먼저 시작하고 있었음을 표현했다. 그렇다고 아빠의 화가 확 줄어든 건 아니지만, 아이는 이전들과는 다른 반응을 했고, 혼이 났던 시간도 확연히 줄었다.

 이번에도 상황 종료 후에 아이에게 제일 먼저 물었다. 아까 아빠에게 말했던 상황을 알려주어 자신의 행동을 기억하도록 함이었다.


 "아까 아빠한테 말할 때 어땠어? 엄마 깜짝 놀랐어. 전에는 무서웠다고 했는데, 오늘은 어떻게 말했어?"


 "용기 냈어. 오늘도 무서웠는데, 말해 보려고 노력했어. 말하니까 괜찮더라고."


 "와, 멋있다. 우리 딸~~ 아빠 기분 상하지 않으면서도 너의 마음을 표현하다니, 짱이다."


 화가 나는 상황을 피하고, 화내는 사람에게 말하려면 멘붕이 오는 나에 비해 얼마나 용기 있는 행동이었는지, 아이의 표정에서 읽었다. 한 고개를 넘었다. 아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에게 굴하거나 억압당하지 않고, 상황을 바로 인식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한번이 터닝포인트가 된다. 이 한번을 내기까지 내내 두려움과 싸워야 하고, 숱한 고민들로 무겁지만, 지르고 나면, 입에서 터져 나오기만 하면 다음은 쉽다.  


  봉오리가 터지고 활짝 핀 꽃처럼, 딸의 용기에 꼭 끌어안아 주었다. 남편에게도 마음이 풀어지는 대로 이 이야기를 전해야겠다. 아이의 성장을 나누어야겠다.

'엄마가 이런 역사적인 순간을 볼 수 있게 해 주다니, 고마워!!!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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