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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상담사 Uni Jan 23. 2023

원하는 꿈을 10,000번 쓴다는 것은

 엄마 경력 13년이 되어 갈 때쯤 나의 삶도 재정비하고 싶었다. 누구의 아내, 엄마로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내 이름 석자를 다시 찾고 싶었다. 하지만, 초등학생인 두 딸은 아직도 내 손이 많이 필요했고, 전력을 다하지 못한 경력 쪽에서도 이렇다 할 명함을 내밀기에 부족함만 보였다. 현실과 반대의 이상이 커질수록 절실함도 커지는 법이다. 나의 관심은 꿈을 이루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자기 계발에 관심 있는 온라인 카페에도 가입하고,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의 단톡방에도 기웃대며 방법을 찾아 헤맬 때 100번씩 100일을 쓰라는 말을 들었다. <돈의 속성> 책의 저자이기도 한 김승호 회장님이 이 방법으로 자기도 성공했다면서 원하는 꿈을 적으면 된다는 것이다.

 예전의 이상적인 나라면 귓등으로 흘려 들었을 말들인데, 현실을 생각해야 하는 나에겐 이 마저도 잡아야 하는 지푸라기였다. 현실적으로 가능하든 하지 않든, 뭐라도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사실, 얼마나 힘든지 모를 때 시작할 수 있다. 엄마가 된다는 것이 이렇게 오랜 시간 극한 직업의 상태로 가야 함을 알면 선택하지 못했을 정도로, 100번씩 100일을 쓴다는 것이 감도 잡히지 않으니 쓰기로 했다.

 노트의 한 면을  등분으로 나누어 접고, 내가 원하는 문장을 적기 시작했다.

'나는 한 달에 600만 원을 번다.'

 600이라는 액수는 남편과 다툼이 생기면 늘 나오는 말 덕분에 떠올랐다. 육아가 그렇게 힘들고 싫으면 나가서 일을 하라고 늘 남편은 싸움 끝에 말했다. 대신 자기보다 더 벌어오라고. 그래야 맞는 거 아니냐면서 나의 말문과 뒷골을 다 막히게 만든 이 말에 한이 맺혀 600이라는 숫자를 넘고 말리라 다짐했다. 남편도 가장으로서의 부담이 컸다 보니 그랬겠지만, 내가 원했던 것은 육아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닌데도 이 숫자 한 마디에 나의 존재감은 훅 꺼지는 듯했다.

 그 덕분에 하루에 100번씩 이 말을 적었다. 쓰면 쓸수록 열이 오를 때도 있고, 볼펜을 쥔 손이 빨개져도 끝까지 버텨낼 수 있었다. 복수, 분노라는 감정으론 설명할 수 없는, 나의 존재감을 보여주고자 하는 힘이었다.

 

 100일을 꼬박 쓰지는 못했다. 100번을 쓰면 30분은 한 자리에 앉아서 써내야 했기에 빼먹는 날도 있었다. 그럼에도 쓰는 날로 100일은 채우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1월 1일부터 쓰기 시작한 노트는 2권을 채우고, 5월의 어느 날 마침표를 찍었다. 이것도 뭐라고 해냈다는 뿌듯함에 가보로 간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중고등학교 때 깜지는 열심히 썼던 것 같은데, 그 이후로 이리 열정을 발휘한 것도 드문 일이었다. 신기한 건, 이 노트를 쓰고 나니, 꼭 600만 원을 벌어야 하나 하는 생각으로 오히려 꿈의 열정은 줄어들었다. 이 꿈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상관없었다. 이뤄지면 좋겠지만, 안 되더라도 나의 존재감은 확인한 셈이다. 마음먹으면 해내는 사람이니까.

 이 노트를 쓴 후부터 수입은 계속 올라갔다. 돈에 둔감한 사람이라 매달 일일이 꼼꼼하게 변화를 체크하지는 않았지만, 돈을 벌겠다는 마음 덕분인지 상담, 강의 등의 수입이 쌓였다. 그 후로 3년 동안도 목표치에 다다르지 못했지만, 100번씩 100일 총 만 번을 괜히 썼다는 후회는 들지 않았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속담에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말을 만 번 이상 반복하면 당신은 그런 사람이 된다."는 말이 있다. 말과 생각에는 에너지가 있고, 씨앗이 뿌리내리고, 열매를 맺게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나도 만 번을 쓰고, 되뇌면서 나 자신이 원하는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어주는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다. 당장에 되지 않더라도 조급해하지 않고, 적당한 때를 기다릴 수 있었다.


 그저 내게 강의 의뢰가 오고, 상담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꽉 채워갔다. 온라인 시국에 준비되어 있었던 터라 줌으로 온라인 강의, 상담, 워크숍을 에너지가 닿는 대로 병행했다. 어떤 날은 오전 10시부터 하루 강의 3개, 온라인 상담까지 밤 11시에 마친 날들도 있었다. 노트의 마침표를 찍었던 날부터 만 3년이 지난 시점부터 수입은 급등을 하더니... 월 천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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