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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 Mar 04. 2022

입학식 날 생긴 일

학원 대신 공동육아 1

아이 낳기 전부터 이름을 지어 두었다. 

지어 부르고 싶은 여러 가지 이름을 지었고 한·알·못(한자를 알지 못하는) 부부는 부모님들께 한자 선택을 의뢰했다. 

아이의 성에 대해서는 아이 낳기 전에 부부가 합의해 두었다. 부모 성을 모두 붙이기로 했다. 성 두 글자에 이름 두 글자가 될 거다.  


우리 부부는 아이를 조금은 다르게 키우고 싶었다. 한 2프로 정도? ㅎㅎㅎ 

다르게 키우는 데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 요소 중 하나는 성평등에 관한 거였다. 가능하면 집에서라도 성별로 인한 불편함이나 편견이 없이 컸으면 했다. 집에서든 학교에서든 사회에서든 성별로 인해 불편함과 어려움을 경험하게 된다면 그게 불평등이라는 것 정도는 알았으면 했다. 아이를 낳고 2-3일 병원에서 회복한 후 집으로 왔고, 함께 집으로 온 남편은 동사무소에 출생신고를 하러 갔다. 한참 만에 집으로 돌아온 남편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아니, 호주제도 폐지되고 이혼해도 아이 성 자유롭게 쓴다더니, 이건 아니더라고! 부모 성은 등록이 안 된다는 거야!”

아빠 성도 쓸 수 있고 엄마 성도 쓸 수 있는데 부모 성은 안 된다는 거였다. 우리는 성 두 글자에 이름 두 글자로 등록하고 싶었는데 동사무소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원래 두 글자인 ‘선우’, ‘제갈’은 등록할 수 있지만 두 성을 합한 성은 안 된다는 거였다. 남편은 왜 안 되냐고 호주제 폐지의 취지를 설명하며 공무원과 싸웠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들 무엇하리. 우리에겐 법을 바꿀 힘이 없는 걸. 

 

결국 우리가 등록하고 싶은 이름은 ‘OO OO’(성 두 글자에 이름 두 글자)였는데 결국 나라에 등록된 아이의 이름은 ‘O OOO’(성 한 글자에 이름 세 글자)이 되고 말았다.


어느덧 아이가 8세가 되어 학교 입학식 날. 

강당에 들어가 아이의 반이 배정된 위치로 찾아갔다. 담임선생님이 반가운 얼굴로 다가오셨고 아이 목에 이름표를 걸어 주셨다. 


“아, 내가 OO OO이 누군지 제일 궁금했어!” 


반가운 얼굴로 반갑게 건넨 인사에 나는 얼굴이 굳었다. ‘아, 우리가 실수한 걸까?’

선생님은 아이의 이름을 보고 금방 부모 성을 딴 이름이라는 걸 아신 것 같았다. 그래, 그랬으면 정말 궁금하셨을 거다. 다시 생각하면 이상할 게 하나 없는데 나는 철렁했다. 

유난한 부모로 생각하는 거 아닐까 살짝 겁먹었다. 유아기에는 공동육아를 했고 이 곳에서는 아무도 부모 성을 땄다는 걸 문제 삼지도 않았을뿐더러, 특별히 주목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주목받으리라는 건 한 번도 생각을 안 해 봤다. 이게 아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확신이 없었다. 

아이의 때를 존중하지 않고 시키는 인지 교육이 싫어 공동육아를 선택했고 그 선택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는 나름 ‘신념파’였는데, 아이가 한글을 떼지 못한 채 학교를 간 것도 갑자기 걱정되기 시작했다. 갑자기 뭉게뭉게 걱정이 번져갔다. 이 모든 게 갑자기 ‘부모 성’을 딴 이름을 가진 아이로 주목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려가 무색하게 아무런 사건도 없이 무사히 초등학교 1학년을 마쳤다. 


“하늘아, 어른이 되면 성도 이름도 바꿀 수 있어. 엄마, 아빠 성을 딴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꿔도 돼. 엄마, 아빠가 지어준 이름도 네 마음대로 바꿀 수 있어.” 

“나는 네 글자 내 이름 좋은데?” 


아이는 10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는 한 번도 이름에 대한 불만을 말한 적이 없다. 도리어 엄마, 아빠 성을 딴 이름이라 더 좋다고도 얘기한다. 가끔 이름에 대해 부모 성인지 묻는 선생님이나 어른들이 있는 모양인데 큰 부담을 느끼지는 않는 것 같다. 

나는 아이 이름에 대한 과도한 관심이나 불편한 압박을 종종 경험한다. 엄마 성도 붙인 거냐고 묻는 정도는 괜찮다. 그렇다고 하면 되니까. ‘왜 엄마 성을 붙였냐’고 질문하는 것도 괜찮다. 아이의 뿌리가 아빠 뿐 아니라 엄마이기도 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라고 간결하게 대답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문제가 생긴다면서 따지는 분들이 있다. 특히 부모 성을 모두 붙여 가다 보면 다음 세대에는 성이 네 글자가 되고 그 다음 세대에는 성이 여덟 글자가 되고, 더 내려가면 성이 너무 긴 거 아니냐며 따져 묻는 사람은 정말 황당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해 보지 않았다. 온 세상 부모가 '모두' 부모 성을 붙여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부모 성을 붙이는 제도를 만들자는 ‘제도화’를 주장한 적도 없다. 다만, 우리의 선택으로 부모성도 마음대로 따서 붙일 수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 정도는 했다. 그러나 다른 이에게 너도, 네 아이도, 부모 성을 따 붙여야 한다고 생각한 적도 말한 적도 없다. 그런데 대체 이걸 왜 나한테 묻는지 모르겠다. 

나는, 우리 부부는 그냥 우리가 원하는 걸 했을 뿐이다. 아빠 성만 붙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우리 부부가 서로 일깨우고 아이에게도 얘기해 주고 싶었을 뿐이다. 우리가 성을 따고 이름을 붙였다고 아이가 이걸 평생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왜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할까? 


나는 단지 내 아이가 부모 성을 딴 이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가는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을 뿐이다. 

아이가 원치 않는 관심을 받는 장면을 목격한 1학년 입학식 이후 종종 생각한다. 우리가 아이에게 좋으라고 한 결정이 전부 아이에게 좋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가끔 걱정되는 것은 그것이다. 우리가 너무 호기를 부렸나? 내 이름이나 부모 성을 따서 바꿀 걸.  


나중에 커서 아이가 본인이 원하는 하나의 성으로 바꿀 수도 있다. 이후의 선택은 아이에게 달렸다. 지금은 부모의 성을 딴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 아이는 분명 나와는 다른 어떤 경험을 이미 했고 앞으로도 하게 될 것이다. 당연히 아빠의 성을 따는 것만이 당연하다는 생각과 다른 경험을 통해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한 번 해 볼 수 있을 거다. 나는 그거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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