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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 May 02. 2022

한글 못 떼고 학교에 간 아이가 살아남는 방법

- 학원 대신 공동육아 2

아이가 한글을 미처 다 떼지 못하고 학교에 입학했다.


아이의 한글 읽기 상태가 어땠느냐 하면, 받침이 없는 글자들은 곧잘 읽었는데 받침이 있으면 헤맸다. 책을 읽어 보라고 하면 “아기 돼지 삼형제가 살았습니다.”를 “아.기.돼.지. 뭐야?” “삼.” “그다음은 뭐야?” “형.” “제.가. 살.았.습.니.다.” 이렇게 읽었다. 이렇게 겨우겨우 한 줄을 읽은 후 “지금 무슨 내용 읽었어?” 물어보면 “나도 몰라?” 아이는 당당하고 의연하고 해맑았다.


사실 아이는 한글을 못 읽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 전혀 없어 보였다.

아이는 공동육아어린이집을 다녔고 공동육아어린이집은 인지 교육을 시키지 않는다. 한글 교육도 따로 하지 않는다. 엄마로서의 마음은 양 갈래였다. 한편으로는 ‘그게 뭐? 한글 좀 늦게 떼면 어때?’ 생각도 했고 한편으로는 ‘학교 입학하면 적응을 못 해 힘들려나?’ 걱정도 됐다.

마음이 양쪽을 오가는 동안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려고 노력을 해 보긴 했다. 여느 집들처럼 식탁 옆 벽에 한글 포스터 한 장을 붙여 놓았고 《기적의 한글학습》도 한 권 샀다. 정말 구.입.만 했다. 난 그걸 억지로든 구슬려서든 시킬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아이가 며칠 후면 8세가 되는 어느 날, 아이에게 물었다.

“너는 한글 못 읽어도 안 답답해?”

“어. 안 답답해. OO한테 물어보면 다 읽어 줘.”  

아이는 해맑게 대답했다.

정말  답답해 보였다. ‘그래,  좋겠다.’ 헛웃음이 나오는데 아이가 자랑스럽게 덧붙였다.


근데 엄마,
시계는, 친구들이  나한테 물어 .


7세를 마칠 즈음, 공동육아어린이집에 같은 연령 아이는 서너 명만 남아 있었다.

남아 있는 아이들 중 한 아이는 인지 능력이 빨라 한글을 줄줄 읽을 수 있었다. 아이가 글자를 몰라 물어보면 친절하게 잘 읽어주는 모양이었다. 또 한 아이는 ‘태릉인’이었다. 운동 능력이 월등히 뛰어나, 6세 즈음부터 줄넘기를 뒤로도 넘을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다른 아이들은 줄넘기를 앞으로도 못 넘었다.

알고 보니 하늘이는 숫자 인식이 빠른 것 같았다. 차를 타고 외출할 때면 카시트에 앉아 숫자 100까지 세는 게 취미인 줄만 알았는데 어느 새 시계도 볼 수 있게 된 모양이었다.


공동육아어린이집 교사들은 아이들 각자가 잘 하는 것을 발견하는 눈이 있었고 그것을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을 해 주셨던 게 틀림없다. 교사들이 글 읽는 아이만을 칭찬했다면 다른 아이들은 열등감을 가지게 됐을 수도 있고 위축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아이는 열등감도 위축감도 없어 보였다. 친구는 글을 잘 읽고 또 다른 친구는 줄넘기를 잘 하고 나는 시계를 잘 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도 선생님을 보고 배웠는지 각자가 가진 고유성을 보고 있었다. 아이는 비교하는 마음이 없었다. 한글 모른다고 위축되지도 않았고 시계 볼 수 있다고 잘난 척하지도 않았다.


한글 못 읽는 아이를 그대로 학교에 보내야 하는 엄마의 불안감을 완벽하게 숨기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는 엄마의 불안을 못 느낀 모양이었다. 아이 옆에 함께 있어 주었던 선생님, 그리고 다른 아마(공동육아에서 쓰는 아빠엄마의 줄임말)들, 부모 외의 좋은 어른들 덕분이었으리라 생각한다. 10년쯤 지난 지금 생각해도 참 고마운 일이었다.


아이는 한글을 읽지 못하고 학교에 갔고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엄마인 나도 주눅 들지 않기로 했다. 초등학교 입학 후 1학년 담임 선생님과의 첫 상담 때, 아이에게 아직 글도 숫자도 가르치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학교에서 하나씩 배워갔으면 좋겠다고, 배우는 즐거움을 알아갔으면 한다고 부탁드렸다. 다행히 선생님은 학교에 와서 즐겁게 배우는 아이가 적음을 안타까워하시며 잘 가르쳐 보겠다고 해 주셨다. 퇴임을 앞둔 신경질적인 선생님이시라는 소문에, 귀찮거나 노여워할 수도 있겠다, 각오를 했었는데, 다 나의 선입견에 불과했다. 게다가 아이는 학교에서 처음으로 배우는 한글과 숫자를 진심으로 재미있어 했다. 그제야 억지로 가르치지 않길 잘 했다는 안도가 찾아왔다.


아이가 학교 입학하고 두 달쯤 지났을까? 공동육아초등방과후를 함께 하는 아마(아빠엄마)들에게서 새로운 사실을 전해 듣게 되었다. 아침에 학교에 가면 독서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읭? 독서 시간이 있다구?’ 한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아이가 어떻게 책을 읽고 있을까 궁금했다. 집에 와 아이에게 물었다.

“학교에 독서 시간 있다며? 책 읽기가 어려울 텐데 어떻게 책 읽고 있어?”

아이가 역시나 의연하게 답했다.


응, 엄마, 난 책 읽는 척 하면서 그림만 봐.


“그런 방법이 있었어?” 나는 아이에게 엄지척을 날려 주었다. 자기 나름대로의 방법을 이미 터득하고 대처하고 있었다. 몇 달 후 아이는 한층 진일보한 소식도 전해 주었다.

“엄마, 교실에 책장이 두 개 있거든. 근데 창가 쪽에 있는 책은 글씨가 조금 밖에 없어.”


아무 것도 모르는 줄만 알았던 8살 아이도 자기만의 방법을 스스로 찾아가는구나. 세상 살면서 초등학교에 한글 모르고 입학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훨씬 더 많을 거다. 세상 살면서 어려움이 없으리라 바랄 수는 없다. 걱정하려면 한도 끝도 없다. 걱정한다고 아이가 덜 어려운 것 같지도 않다. 나는 아이에 대한 걱정을 조금씩 내려놓게 되었던 것 같다. 걱정은 '믿지 못함'의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냥 지켜 보고 믿어 주는 것 말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싶다. 심지어 지켜보고 믿어주는 일도 생각보다 쉽지 않다. ㅎㅎ 아이가 청소년이 된 지금, 나는 아이가 도움을 요청하기도 전에 먼저 도움을 주겠다고 나서지는 않는다. 상대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도움을 빙자한 조언과 해결책을 제시하면 꼰대라던데. 아이에게 '우리집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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