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아라 Jun 21. 2022

아이의 생애 첫 시험

어쩌다 초등까지 공동육아

퇴근해 아이를 공동육아방과후로 데리러 가니 선생님이 슬쩍 불러 귀띔을 해 주신다. 오늘 처음으로 학교에서 수학 단원평가(?)를 보았는데 터전(공동육아에서는 아이들의 학교를 마친 후 생활하는 곳을 '터전'이라고 부른다)에 와서 아이가 울었단다. 뒷면을 못 풀었다나? 집에 와 함께 저녁을 먹으며 아이에게 살짝 물어본다.


- 하늘아, 학교 끝나고 터전 와서 울었어?

- 응. 울었어. 오늘 수학 단원평가를 봤는데… 근데 엄마, 시험지에는 뒷면도 있는 거였어?

- 응?

- 내가 시험지에 뒷면이 있는 줄 모르고 앞면만 풀고 냈어. 그래서 속상해서 울었어.


아이는 이미 다 털어 버렸는지 해맑은 얼굴로 시험지에 뒷면도 있냐고 묻고는 맛나게 밥을 먹는다. ㅎㅎㅎ 아이에게 처음이라 모를 수도 있다고, 괜찮다고 안아주었다. 아이는 다음에는 뒷면도 잘 보겠다고 다짐을 한다. 몇 주 후 아이는 또 집에 와 질문을 했다.


- 엄마! <보기>가 뭐야? <보기>가 뭔지 몰라서 어려웠어.


아이는 학교에 처음 가서 생애 첫 시험들을 치르면서 시험지에 뒷면이 있다는 것도 배우고 '보기'에서 고르는 것이 무엇인지도 배우고 있다. 그러더니 며칠 뒤에 갑자기 또 물어본다.


- 엄마! 엄마도 나 빵점 맞으면 빵 사 줄 수 있어?


이게 뭔 소리지, 했다. 얘기인 즉슨, 친구 중 한 명이 수학 단원평가에서 빵점을 맞았는데 그 아이 아빠가, 빵점 맞는 게 백점 맞는 것보다 어렵다며, 초등학교 1학년 때가 아니면 언제 빵점을 맞아 보겠나며, 좋은 경험 했다 하시며 빵을 한 아름 사 주셨단다. 나도 아이에게 빵 공약을 걸었다.


- 하늘아, 엄마는 니가 몇 점을 받든 빵 사 줄게. 빵은 빵 먹고 싶을 때 먹는 거지, 학교 점수가 몇 점일 때만 먹을 수 있는 건 아니야.


나는 아이의 학교 점수나 성적을 가지고 어떤 보상도 체벌도 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학교 점수나 성적은 엄마인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 내가 가르친 것에 대한 보상도 아니다(사실 내가 뭘 가르친 것도 없지만). 오로지 아이의 현재 학습 상태를 보여주는 지표일 뿐이고 아이가 노력한 것에 대한 결과일 뿐이다. 아이가 시험을 잘 보고 와서 기뻐하면 아이에게 기쁜 일이 생겼으니 함께 기뻐해 줄 것이다. 아이가 시험을 잘 못 보고 와서 속상해 하면 아이에게 속상한 일이 생겼으니 함께 속상해하고 격려와 위로를 건넬 것이다.


몇 년이 지나 아이가 5학년인 어느 날이었다. 왠지 아이가 약간 격앙되어 보였다.


- 엄마! 내 말 좀 들어 봐! 이게 말이 돼?

- 무슨 일 있어?

- 친구가 이번 시험을 잘 못 봤거든. 근데 엄마한테 혼났대! 이게 말이 돼? 친구가 시험을 잘 못 보면 누가 제일 속상하겠어? 당연히 친구가 제일 속상하지. 근데 왜 엄마가 혼내는 거야? 위로는 못해 줄 망정...

- ㅎㅎㅎㅎㅎ


나는 시험 성적을 이유로 아이를 혼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러니 아이는 시험 성적을 이유로 엄마에게 혼났다는 상황 자체가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이 아이가 어떻게 커 나갈지 나는 참으로 궁금하다. 사실 언제쯤 이 멋진 엄마의 실체를 알아줄 것인지 진짜 궁금하다. ㅎㅎㅎㅎㅎ 저 자화자찬 좀 해도 될까요? ㅎㅎㅎ


사실 온 세상이 시험과 성적에 연연하며 돌아간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심지어 아이 아빠는 입시와 관련된 직종에서 일하고 있다. 종종 왜 애를 여태 학원도 안 보내냐는 얘기도 많이 든는다고 한다. 그래도 우리는 아이가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가기를 바란다. 꼭 공부를 잘할 거라고 믿는다는 뜻은 아니다. 공부를 잘 하든 못 하든 자신에게 솔직했으면 좋겠고 스스로 선택하는 경험을 했으면 좋겠고 그런 경험이 쌓여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스스로 알아가는 과정을 밟기를 바란다. 잘 하든 못 하든 자기가 원할 때 자기 방식으로 공부든 뭐든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좋은 성적을 가져 오면 뭘 해 주겠다는 미끼를 던져 아이를 움직이고 싶지는 않았다.


혹시나 세상에서 너무 뒤쳐지지는 않을까, 자신이 원하는 길로 못 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나 불안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나는 그런 시기를 공동육아초등방과후를 함께 하는 부모들과 함께 견뎠다.

 우리 아이 말고 다른 아이들에게도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다.

한 번은 한 아이가 단원 평가에서 빵점을 맞았는데 그 이유가 이런 거였다. '큰 수'를 배우는 단원이었는데 문제가 딱 하나였던 모양이다. "다음 큰 수를 읽어 보시오." 그 아래 10개의 문제가 쭈욱 나와 있었단다. 1번. 54321. 아이는 다른 아이들에게 혹여 들릴까 봐 시험지에 두 손을 곱게 모아 수를 작은 소리로 읽었다. '오만사천삼백이십일'. 그리고 시험지에 답안을 적지는 않았다. 문제 그대로 큰 수를 '읽었다.'

우리는 모두 그 이야기를 듣고 빵 터졌다. 그리고 모두 한 목소리로 외쳤다. "선생님이 잘못 하셨네!!!"

아니, 읽으라고 해서 읽었는데 틀렸다고 하면 어쩌냔 말이다. 쓰게 하려면 "다음 큰 수를 읽어 답안지에 쓰시오."라고 했어야지. 나는 이 날 다른 부모들에게 우리 아이가 시험지에 뒷면도 있었냐며 운 이야기를 해 주었다. 다들 큰 위로를 받는 듯했다.


나는 아이에게 시험지에 뒷면이 있다는 것도 몰랐냐고 닥달하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으니 괜찮다 하고 아이를 안아주었을 뿐이다. 우리는 아무도 읽으라고 한다고 진짜 읽으면 어떡하냐고 말하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들은 다음에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다. (다른 실수는 여전히 많이 한다. ㅋㅋㅋ)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실수도 하고 어려움도 겪고 울기도 하며 하나하나 배우고 스스로 깨쳐 나가는 순간을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며 함께 견뎠다.


아이가 1학년에 입학한 며칠 후 재미있는 일이 있다고 뛰어와 얘기해 준 건 공동육아방과후 선생님의 실수담이었다.


- 엄마, 글쎄 OO이는 초등학교 1학년 때 교실에서 오줌도 싸신 적이 있대. 선생님한테 화장실 갔다 온다고 얘기를 못 해서. 히히히. 너무 웃기지?


아이들은 그 얘기를 두고두고 했다. 나는 OO 선생님께 너무 고마웠다. 아이들은 어른들도 실수하며 컸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아이는 내가 실수할 때도 아주 즐거워하는데 그건 내 실수를 비웃는 게 아닌 것 같다. 어른도 실수할 수 있다는 걸 보고 위로를 얻는 게 아닐까 싶다. 아이에게 잘해야 돼, 완벽해야 돼, 대신에 틀려도 괜찮아, 실수해도 괜찮아, 를 먼저 말해주었는데 아이가 어떻게 클 지는 나도 모르겠다. ㅎㅎㅎ 우리는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 내려고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표준의 몸이 아니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