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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 Jul 07. 2023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애가 듣는다

공동육아 함께 하는 아이들의 상당수가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고 초등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오래되고 작은 아파트 단지에 여러 가구들이 살고 있다. 하루는 한 엄마가 아이에게는 얘기하지 않고 혼자 휴가 내어 하루를 즐기고 난 다음 날.


OO, 어제 휴가셨어요? 차가 계속 같은 자리에 서 있던데요?


"헉! 우리 아들한테도 얘기 안 하고 휴가 내고 몰래 혼자 놀았는데! OO한테 들켰네. 이거 원, 뭔 공동육아가 이렇게 비밀이 없어? 투덜투덜~ 비밀 지켜야 된다, OO."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언젠가는 공동육아 터전(아이들이 하루를 살아가는 곳이라는 의미로 '터전'이라고 부른다)에서 이런 일도 있었다.

(많은 아이들이 한 학교에 다니고 있어 보통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은 선생님을 만난다. 모든 아이들이 모일 때까지 기다릴 겸 학교 놀이터에서 실컷 놀고 오는 날이 많다. 이렇게 실컷 놀고 온 날은 터전에 도착하면 양치하고 손 씻고 숙제를 먼저 한다.) 하교 후 공동육아방과후에 도착한 아이들. 옹기종기 모여 숙제를 하는데 한 아이가 말한다.


- 휴... 큰일 났어... 우리 엄마, 아빠 아무래도 이혼할 것 같아. 어떡하지? 난 싫은데...
- 왜? 무슨 일 있었어?
- 어젯밤에 막 싸우셨어. 근데 싸우다가 아빠가 발로 문을 뻥 찼어. BBB


야, 그 정도 싸움은 아무 것도 아니야! 우리 집은 어땠는지 알아?


"우리 집은 blah-blah-blah~"

"우리 엄마 아빠는 BBB~"

"우리 집은 BBB~"


아이들이 갑자기 엄마, 아빠가 싸운 얘기를 마치 무용담처럼 늘어놓기 시작했다. 많은 아이들이 자신이 목격한 점점 더 쎈(?) 부부 싸움 얘기를 늘어놓으며 숙제는 안 하고 긴 대화를 이어갔다고 한다. (ㅋㅋㅋ 애들이 막 MSG를 쳐 가면서 얘기가 점점 더 커졌겠지? ㅎㅎ) 공동육아 선생님은 아무래도 숙제보다 이 이야기가 훨씬 중요한 이야기 같아 아이들의 대화를 말리지 않으셨다고 했다.


우리는 이 얘기를 아마(공동육아에서 엄마 아빠를 줄여 부르는 말)들과 교사가 만나 아이들의 한 달 간의 터전 생활과 가정 생활을 공유하는 방모임 자리에서 교사를 통해 전해 들었다. 얘기를 듣는 우리 아마들은 왠지 모르게 점점 작아져 갔다고 한다. ㅎㅎㅎ 우리는 모두 너무 부끄러우면서도 빵 터졌다.


선생님은 터전에 오자마자 고민을 털어놓았던 아이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안심하고 안도한 것 같다고 했다. 집집마다 다들 싸우기도 하고 화해하기도 하고 그렇게 산다는 걸 아이들도 조금은 이해하지 않았을까 하셨다. 너희들도 싸우기도 하고 화해하기도 하는 것처럼 어른들도 그렇다고 알려 주셨다고 한다.

(많은 대화들이 있었는데 글의 주제를 벗어나 적지 않음. 이혼이 나쁜 거라고 생각해서 쓰는 글 아님 주의)


이 날의 방모임이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두 가지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첫째, 아, 공동육아방과후, 정말 좋구나. 아이들이 어디 가서 이런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나누다가 자기 부모의 실체(?)를 알게 되고 또 어느 집에서나 그렇게 산다는 걸 알게 될까. 여기는 어쩌면 아이들이 이런 대화를 안전하게 나눌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어릴 때 우리 부모의 싸움을 목격하고 혹시 이혼하시면 어쩌나, 걱정했던 기억이 있다. 심지어 우리의 솔직한 부모님께서는 대놓고 물어보기도 하셨다. "너는 엄마, 아빠 이혼하면 누구 따라가서 살 거야?" 질문만 기억나고 대답은 기억이 안 나는데 심지어 나는 아무도 안 따라가고 내가 동생 데리고 여기서 살 거라고 했다는데 ㅎㅎㅎ 아무튼. 그랬던 나도 뭐, 나름 잘 자랐고 애들은 더 잘 자라겠다. ㅎㅎㅎ

둘째,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 부부싸움을 앞으로는 우아하게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여기는 비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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