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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 Aug 04. 2022

어린이는 지금 당장 행복해야 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방구뽕씨

 어린이는 지금 당장 놀아야 합니다.

나중엔 늦습니다.

대학에 간 후, 취업을 한 후, 결혼을 한 후에는 너무 늦습니다.

(중략)

불안이 가득한 삶 속에서 행복으로 가는 유일한 길을 찾기에는 너무 늦습니다.


하나. 어린이는 지금 당장 놀아야 한다

둘. 어린이는 지금 당장 건강해야 한다

셋. 어린이는 지금 당장 행복해야 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9화 방구뽕씨의 말 중에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17세가  아이를 포함,  가족이 함께 보고 있다. 9화에서 방구뽕 씨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리는 모두  말에 너무 동감하면서 9화를 함께 보았다.


나는 아이를 공동육아로 함께 키웠다. 무려 아이 4살부터 13살때까지 꼬박 10년 동안 공동육아를 했다.

아이를 낳기 전에 육아관, 교육관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었다.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 키워야 하나, 고민하던 중 만난 시가 훅 들어왔다.



미래에서 온 내 아이 안에는 이미

그 모든 씨앗들이 심겨져 있을 것이기에


내가 부모로서 해줄 것은 단 세 가지였다


첫째는 내 아이가 자연의 대지를 딛고

동물들과 마음껏 뛰놀고 맘껏 잠자고 맘껏 해보며

그 속에서 고유한 자기 개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자유로운 공기 속에 놓아두는 일이다


둘째는 '안 되는 건 안 된다'를 새겨주는 일이다

살생을 해서는 안 되고

약자를 괴롭혀서는 안 되고

물자를 낭비해서는 안 되고

거짓에 침묵동조해서는 안 된다

안 되는 건 안 된다!는 것을

뼛속 깊이 새겨주는 일이다


셋째는 평생 가는 좋은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자기 앞가림은 자기 스스로 해나가는 습관과

채식 위주로 뭐든 잘 먹고 많이 걷는 몸생활과

늘 정돈된 몸가짐으로 예의를 지키는 습관과

아름다움을 가려보고 감동할 줄 아는 능력과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홀로 고요히 머무는 습관과

우애와 환대로 많이 웃는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그러니 내 아이를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유일한 것은

내가 먼저 잘 사는 것, 내 삶을 똑바로 사는 것이었다

유일한 자신의 삶조차 자기답게 살아가지 못한 자가

미래에서 온 아이의 삶을 함부로 손대려 하는 건

결코 해서는 안 된 월권행위이기에


나는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자 안달하기보다

먼저 한 사람의 좋은 벗이 되고

닮고 싶은 인생의 선배가 되고

행여 내가 후진 존재가 되지 않도록

아이에게 끊임없이 배워가는 것이었다


<부모로서 해 줄 단 세 가지>, 박노해 시 중에서



아이를 '자유로운 공기 속에 놓아'두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공동육아를 선택했다. 공동육아에서는 아이를 '프로그램' 안에 가두지 않았다. 영유아 때는 오전 나들이  - 점심 식사 - 낮잠 - 간식 - 자유놀이. 이렇게 아주 단순한 일과를 따라 살았다. 퇴근 후 데리러 가면 아이는 대체로 더 놀다 가겠다고 했다. 아이가 지금까지 기억하는 어린이집에서의 에피소드는 자유놀이 시간에 놀던 기억들이다.


초등학교 때 공동육아방과후에서는 학교를 마치면 '숙제 - 놀이 - 간식 - 활동 - 자유놀이'로 이어지는 일과를 보냈다. 월요일은 도서관 나들이, 화요일은 전래놀이, 수요일은 먼나들이, 목요일은 손끝활동, 금요일은 풍물. 이 정도로 활동이 있었지만 풍물 정도를 제외하고는 무척 자유로웠다. 예를 들어 겨울방학 손끝활동 시간에 무엇을 할 지를 정하는 것은 아이들이었다. 겨울방학 직전 '터전'(아이들이 하교 후 생활하던 곳을 '터전'이라고 불렀다)에 가면 칠판에 아이들이 직접 적은 다양한 활동 제안이 적혀 있었다. 그 중 많이 나온 의견들을 따르기도 하고 각자가 서로 다른 활동을 하기도 했다. 어떤 아이는 겨울 목도리를 뜨고 어떤 아이는 인형을 떴다. 색깔도 실도 직접 골랐고 몇 개를 뜨던 각자 알아서 했다. 어떤 아이는 손도 빠르고 손 활동을 좋아해 온 가족 목도리를 다 뜨기도 했다. 그런데 정반대로 뜨지 않는 아이도 있었다. 왜냐하면 이 곳에는 무언가를 하지 않을 자유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자유의 핵심은 이거 아닐까? '하지 않을 자유' 말이다! 

겨울방학 초입에는 모두가 함께 하는 잔치(=해보내기 잔치. 아이들이 보낸 1년을 갈무리하는 잔치이다)가 있었는데 여기에서는 하고 싶은 공연에 각자가 또는 자기들끼리 조를 짜서 참여하였다. 아이는 또래 친구들이 모두 춤을 좋아해 댄스 공연을 준비하자고 할 때 10세 전후까지는 함께 하였다. 그런데 고학년에 들어오면서는 본인은 춤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그 이후부터는 졸업할 때까지 절대 참여하지 않았다. ㅎㅎㅎ 모두가 춤추는 시간에 춤추는 아이들 영상을 찍어주기도 하고 음악을 틀고 끄고 하기도 했으며 혼자 책을 보기도 하고 혼자 뒹굴기도 했단다. 엄마로서, 혼자 있는 아이를 보는 것, 혼자 무언가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늘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봐도 못 본 척, 잔소리하지 않고 걱정하는 말 하지 않고 참았다. 사리 몇 개는 생겼을 것이다. 

저학년 때는 퇴근하고 직접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왔는데 하원하기 위해 아이를 데리러 가면 언제나 더 놀고 가겠다고 했다. ㅎㅎㅎ 언제나 신나게 자유롭게 놀고 있었다. 아이는 이 과정을 통해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좋아하지 않는지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았다. 아이는 책읽기 중 특히 만화책 읽기를 좋아하고 공기놀이와 사방치기를 좋아했다. 놀이터 놀이는 아주 좋아했으며 맛있는 간식 먹기를 좋아했다. 아이는 춤과 노래 는 지금도 좋아하지 않는다. ㅎㅎㅎ

집에서도 아이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기 위해 나름 애썼다. 가족의 나들이나 휴가 일정 등을 결정할 때 아이의 의견도 듣는 가족회의 자리를 가진 후 결정했다. 메뉴를 정할 때도 그랬고 선물을 고르게 할 때도 그랬다. 매일 아침 입을 옷을 고르는 것도 아이였다.


내가 '안 된다'고 강조한 건 남이 싫다고 하면 그건 진짜 싫은 거라는 거니까 하지 말라는 거. 어떤 이유든 폭력이나 괴롭힘은 안 되는 거라는 거, 딱 하나였던 거 같다. 나의 신체, 나의 감정이 나의 것이라면 남의 신체, 남의 감정은 남의 것이라는 거.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싫은 건 싫다고 말해도 된다는 것. 아이는 나에게 참 거절을 잘 한다고 말하는데 아이도 그렇다. 아이는 사실 엄마만큼 목소리가 큰 편은 아니다. 목소리를 높이는 법이 없지만 아이도 싫은 건 싫다고 거절할 줄 안다. 남이 싫다고 하면 쿨하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정말 폭력은 행하지도 당하지도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생 가는 좋은 습관. 아후, 이건 너무 어려운 미션. 이쯤 와서는 '그래, 나나 잘 살아 보자.'는 결론이었다. 아이에게 뭘 가르치려고 할 게 아니라 나나 잘 살자는 것.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려다가도 '음, 그 나이 때 나보다는 낫다.'면서 접을 때가 많다. ㅎㅎㅎ 아이의 방이 무척 지저분해서 잔소리가 나오려고 할 때가 있는데 돌이켜 보면 나는 더했다. 아버지가 내 방문을 열고는 "아이고, 피난민 수용소가 따로 없네." 하셨다. 그러니 대체로는 잔소릴 할 수가 없다.(전혀 잔소릴 안 한다는 뜻은 아님 ㅎㅎㅎ)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 건 지금의 행복이었다. 지금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

공동육아하면서 괜찮아(별명)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문화인류학과 교수님이시라 대학생들과 함께 필드워크 나갈 때가 많다 하시며 에피소드를 하나 들려주셨다. 필드워크 나가 숙소에 들어가 저녁 식사 준비를 함께 하기 위해 한 학생이 양파를 씻어 왔는데 비누로 씻어 왔다는 거였다. 아. 충격. 아마도 '넌 공부만 해라, 나머지는 엄마, 아빠가 알아서 해 주마.' 하고 키운 게 아니었을까 싶었다. 또 대학에 와서 부모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방황하는 대학생들이 그렇게 많다고도 했다. 대학만 가면 다 될 줄 알았는데 대학 오니 또 취업 전쟁터니까.


난 이 얘기를 들으며 행복을 유예하지 않기로 했다. 출세나 성공을 위해 현재를 유예하는 건 너무 흔한 일이다. 현재의 시간을 미래를 준비하면서 다 보내게 하지는 말자고 생각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다니면서 한글을 배우고 숫자를 배우는 건 학교 갈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일 거다. 초등학교에 가서 영어 공부를 시작하는 건 3학년 때 배우게 될 영어를 미리 예습하게 하려는 걸 거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중학생이 되기 위해 선행 학습을 하고 중학생이 되면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 선행 학습을 한다. 고등학교에 가면 대학에 가기 위해 '나 죽었다' 생각하고 또 3년을 보낸다. 전엔 대학엘 가면 거의 끝났던 것도 같은데 요즘은 대학엘 가도 취업을 위해 또 현재를 유예하고 미래를 준비한다. 이렇게 하면 정말 끝이 없겠지.


이런 생각으로 키우다 보니 본의 아니게, 아이는 한글을 다 떼지 못하고 학교에 갔다. (자세한 사연은 링크에. https://brunch.co.kr/@arachi15/2) 나는 아이의 때를 기다렸다. 그냥 두어도 나름의 살 길을 찾더라. 초등학교에 가서는 학교 숙제 정도는 공동육아방과후에서 하고 왔다. 그 외 학습 역시 아이가 알아서 하도록 두었다. 나는 선택지만 제공했다. "내일 시험을 보지? 공부를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어. 하겠다면 도와줄 수 있고 하지 않겠다면 놀면 돼. 공부도 조금만 하고 놀기도 조금만 할 수도 있고." 받아쓰기 연습을 하겠다고 하면 불러 주었고 한 번 하겠다고 하면 한 번 만 하고 놀았다. 안 하겠다고 하면 하지 않았다. 문제집을 사 달라고 하면 사 주었고 질문을 하면 받아 주었지만 내가 먼저 공부를 하자고 책상에 앉히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아이는 학교에서 본 생애 첫 수학 시험에서 뒷면을 풀지 않고 울면서 집에 왔다. ㅎㅎㅎ (자세한 사연은 링크에. https://brunch.co.kr/@arachi15/41) 아이는 3학년 즈음인가, 이제 시험을 잘 보고 싶다며 문제집을 사 달라고 했다. ㅎㅎㅎ 그러나 문제집은 대체로 앞쪽 몇 장밖에 풀지 않았었다. 뭐. 역시 난 그대로 두었다. 올해는 몇 장을 풀었네? 하고 알려 주기는 했다. 5학년 즈음 아이는 자기도 영어 공부를 좀 해 보고 싶다고 했다. 자기가 영어를 너무 못 하는 것 같다면서. ㅎㅎㅎ 아이는 EBS를 선택해 혼자 공부하는 시기를 살짝(?) 보냈다. 나는 그 선택을 존중했다. 이렇게 자란 아이는 중학교 때까지 학습을 위한 학원에 한 번도 다니지 않았다.


아이는 놀고 놀고 또 놀면서 자랐다. 아이가 중학교 2학년 때, 어느 날 내가 책상 위에 둔 자료를 보게 되었는데 그 자료는 영국 내셔널 트러스트가 선정한 '아이가 12살이 되기 전에 해봐야 할 50가지'라는 목록이었다.


혼자 열심히 동그라미를 그려 보더니 "엄마! 나 5개 빼고 다 해 봤어!" 라고 자랑스럽게 외쳤다. 그래, 엄마도 자랑스럽다. ㅎㅎㅎ


내가 다음 단계의 학습을 위한 사교육을 시키지 않았던 건, '나나 잘 살자' 생각하는 건 아래의 말들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고 실천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어떻게 클 지는 나도 모르겠다. 공부 잘 하는 아이가 될 지는 자신이 없고 잘 모르겠다. 나는 어떤 결과물을 뽑아내려고 아이를 키우는 건 아니니까. ㅋ 그래도 아이가 자기 색깔대로 자기 뜻대로 자기의 길을 걸어갈 것이라고 믿는다. 시킨 게 없고 아이를 따라가는 입장이어서 아이를 믿을 수밖에 없다. ㅋ)



그러므로 교육은 삶의 과정 그 자체이며 앞으로의 삶을 위한 준비가 아니다.
(존 듀이)


어른 말을 잘 듣는 아이는 없다. 하지만
어른이 하는 대로 따라하지 않는 아이도 없다.
(제임스 볼드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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