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과 텃밭
-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은 혼자 못 가지듯이 서로 서로서로 나누어 먹습니다."
- 잘 먹겠습니다!
아이가 다녔던 공동육아어린이집에서 맨 처음 배워 온 한 줄 짜리 노래다.
한 줄 짜리 노래를 목청껏 부르고 노래의 끝에 "잘 먹겠습니다"라고 외친다.
"잘 먹겠습니다"라고 외칠 때 종종 "농부아저씨, 잘 먹겠습니다!" 하기도 하고
맛단지(아이가 다닌 공동육아어린이집에서는 조리 선생님을 '맛단지'라고 불렀다) 선생님의 별명을 부르며 "꿀단지(실명 노출을 하지 않으려고 임의로 붙였음) 잘 먹겠습니다!"
밥은 하늘이다.
하늘은 혼자 가질 수 없다.
밥은 나누어 먹는 것이다.
맞다. 밥은 하늘이다. 머리로만 안다.
쌀 한 톨 얻으려면 농부가 얼마나 정성껏 농사를 지어야 하는지 말로만 알았지, 실은 나는 잘 모른다. 마트에 가면 손쉽게 살 수 있어 쌀이 생산되기까지의 과정을 모른다.
아이들은 작은 손으로 텃밭 농사를 직접 짓는다. 대부분의 공동육아어린이집 앞마당에는 작든 크든 텃밭이 있다. (공동육아어린이집이 대체로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인 이유는 첫째는 아이들이 매일 마당에서 놀 수 있게 하려는 목적이고 둘째는 매일의 생활 속에서 텃밭 활동을 할 수 있게 하려는 목적이다.)
공동육아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시금치와 배추 농사 짓는 것을 일 년 내내 지켜보게 되었다.
일단 씨앗을 사서 아이들과 함께 살펴 본다. 시금치 씨앗과 배추 씨앗이 동글동글하게 생겼다는 것, 씨앗도 식물마다 모양이 천차만별로 다르다는 것을 아이와 함께 공동육아어린이집에서 배웠다.
씨앗을 몇 알씩 일정한 거리로 심는다. 이 때 적정거리를 확보하지 않으면 나중에 식물이 자라면서 하나를 뽑아야 하는 일이 생긴다. 식물도 사람도 개체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가 필요한가.
씨앗을 심고 나면 아이들은 매일 텃밭을 들여다본다. "물 줬는데 왜 싹이 안 나지?", "싹은 언제쯤 나는 거야?" 조잘조잘 이야기하면서 매일 싹이 트기를 기다린다.
그러다가 드디어 싹이 트면 아이들은 장난감 사 줬을 때보다 훨씬 더 기뻐한다. 뛸 듯이 기뻐한다. 이 작은 녀석들을 커다랗게 키워 보리라 다짐한다. 가끔은 싹이 난 것을 기뻐하며 각자 스케치북을 가지고 나와서 그림을 그려 두기도 한다. 선생님들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지나가듯 던졌을 뿐이다. "얘들아, 오늘 싹이 나서 너무 기분이 좋으니까 이 귀여운 아이를 한 번 그려 볼 사람?“ 아이들은 너도 나도 신이 나서 스케치북을 가지러 뛰어 들어간다. 안 그리는 아이도 있다. 원하는 아이는 그린다. 이렇게 자연스럽다고? ㅎㅎㅎ (집에서 부모의 교육적 의도가 잔뜩 들어간 제안에 아이들은 결코 이렇게 반응하지 않는다.)
공동육아에서는 교육 과정을 하나씩 분리해 진행하지 않는다. 미술 시간에는 그림을 그리고 과학 시간에는 씨앗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이 생활하는 과정 안에 스며들어 있다. 텃밭을 하려고 씨앗을 관찰하고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는 것은 말하자면 과학 교육에 속한다. 심지어 직접 몸으로 해 보는 살아 있는 교육 과정이다. 내가 물 주고 키운 씨앗이 드디어 싹을 틔웠음을 기뻐하며 그림으로 기록하는 것이 미술 교육이다. 내가 틔운 싹을 하트 뿅뽕 나오는 사랑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그리는 그림이 어느 날 갑자기 선생님이 가져다 놓은 꽃병 그리는 것보다 기쁜 과정이 되리라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이렇게 교육과정이 통합되어 있다. 한국에서 정상적(?)인 공교육을 받으며 자란 나는, 내가 12년 교실에 갇혀 배운 교육 과정보다 이 꼬마들이 살면서 배우는 공동육아 교육이 훨씬 더 수준높은 교육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싹이 튼 날, 아이를 데리러 터전(공동육아에서는 어린이집, 방과후 등 아이들의 생활 공간을 '터전'이라고 부른다)에 갔을 때 나를 보자마자 외쳤다. "엄마! 오늘 싹이 났어!" 아이의 흥분과 기쁨이 나에게도 느껴졌다.
이제부터는 지난한 과정의 시작이다. 아이들은 매일 물을 주고 잡초를 뽑느다. 매일 들여다 보면서 작은 새싹이 매일매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지켜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배추 벌레가 등장했다. 선생님과 아이들은 배추를 걱정하며 회의를 열었다고 한다. "울타리(울타리는 교사의 별명이다)! 우리 배추 벌레가 다 파 먹으면 어떻게 해?"라는 누군가의 질문으로 시작된 회의겠지. "그러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이들이 여러 의견을 내었을 거다. 그리고 결국 배추벌레를 함께 잡아서 다른 곳으로 보내주기로 하겠지. 아이들은 배추벌레를 하나 하나 살짝 잡아서 다른 곳으로 보내 주었다고 한다. (공동육아에서는 동물, 식물을 함부로 죽이면 안 되다고 아이들에게 천천히 알려준다.) 가끔, ‘나도 어릴 때 이런 어린경험을 했다면 지금쯤 어떤 어른이 되어 있을까’ 생각한 적이 있는데 배추벌레에서 장벽을 만난다. '윽, 이건 안 되겠다.' ㅎㅎㅎ
그러던 어느 날, 어린이집 카페에 아이들이 배추를 뽑아 들고 자랑스러워 하는 사진이 게시되었다.
이제 마지막 순서가 남았다. 다 자란 배추를 뽑고 씻고 아이들이 직접 김치를 담그는 거다. 뽑고 씻고 절이고. 연령에 따라 일부 아이들은 직접 무딘 칼로 연한 야채를 썰어보기도 한다. 요즘 어른들도 모두 절임배추를 사서 김장하는데 아이들은 이 과정을 생으로 경험한다.
아침부터 선생님들이 바쁘셨을 거다. 아이들 모여 서로 역할을 나누고 누구는 배추를 뽑고 누구는 수돗가로 부엌으로 배추를 나르고, 또 누군가는 수돗가에서 배추를 씻고. 이 번거로운 과정을 굳이 굳이 한다.
부엌과 거실에 아이들이 모이면 맛단지 선생님이 소금을 뿌리는 방법을 알려 주신다. 그리고 소금을 왜 뿌리는지, 소금을 뿌리면 어떻게 되는지 하나하나 알려 주신다. 과학을 좋아했던 나는, 이걸 몸으로 체득한 아이는 삼투압을 모를 수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장갑을 끼고 맛단지가 만들어준 맛있는 배추속을 배추에 직접 묻히고 바른다. 하얗게 남는 곳이 없도록 꼼꼼하게 배추속을 바른다. 속을 잔뜩 넣는 것이 아니고 바르듯 묻히는 것이 무엇인지 선생님들이 보여주면 따라해 본다.
사실 선생님들끼리 하면 금방 하실 거다. 텃밭 배추 얼마나 된다고. 선생님들끼리 하면 어린이집 거실이 난장판이 되지도 않을 거다. 그래도 아이들과 함께 이 모든 과정을 하나하나 밟아간다.
아이는 어린이집에 간 뒤로 김치를 씻어 먹지 않았다. 터전 김치가 집 김치보다 맛있다고 했다.
내 손으로 애정으로 키워 직접 만든 김치. 왜 맛있지 않겠는가. 김치가 맛있어서 맛있다는데 인정. ㅎㅎ
아이를 중심에 두고 보면 부모는 그 아이를 둘러싼 하나의 환경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환경이다. 부모는 부족함이 많은 한 사람일 뿐이다. 내 그릇 안에, 내 치마폭에 아이를 가두어서는 안 된다. 아이가 좀 더 큰 세상과 우주를 만나기를 원해서 그럴 수 있는 환경에 두고 싶어 공동육아를 선택했었다.
어느 새 스무살이 된 아이. 아이가 어떤 세상을 만났을까, 실은 잘 모른다. 너무 궁금하다.
쌀 한 톨의 무게를 조금은 알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나도 아이와 함께 공동육아어린이집에서 쌀 한 톨의 무게를 조금 배웠다.
쌀 한 톨의 무게
- 홍순관
쌀 한 톨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무게를 잰다
바람과 천둥과 비와 햇살과
외로운 별 빛도 그 안에 스몄네
농부의 새벽도 그 안에 숨었네
나락 한 알 속에 우주가 들었네
버려진 쌀 한 톨 우주의 무게를
쌀 한 톨의 무게를 재어본다
세상의 노래가 그 안에 울리네
쌀 한 톨의 무게는 생명의 무게
쌀 한 톨의 무게는 평화의 무게
쌀 한 톨의 무게는 농부의 무게
쌀 한 톨의 무게는 세월의 무게
쌀 한 톨의 무게는 우주의 무게
https://www.youtube.com/watch?v=UVL2VTkZTVU
※ 커버 이미지: 이철수 판화, 1987, <밥은 하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