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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는 어떤 곳이었나요?

아이에게 물었다

by 아라

- 하늘아, 엄마가 이번에 강의를 듣고 왔는데 고등학생들한테 설문 조사한 내용을 보여주시더라고. 너는 어떤지 한 번 봐봐.

- 뭔데?


핸드폰 사진을 찾아 아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 고등학교는 어떤 곳이었나요? 1번. 함께 하는 광장이었다. 2번. 거래하는 시장이었다. 3번. 사활을 건 전장이었다.

- 엄마, 질문이 너무 극단적이다.


가벼운 듯하나 내심 진지하게 질문을 던졌던 엄마는 웃음이 터졌다.


- 풋. 그렇네. 좀 극단적인가?

- 엄마 나한테는... 그래도 1번이었어.


뒷말은 감추었다. 긴장이 풀리며 살짝 눈물이 날 것도 같은 기분이었다. ‘다행이다.’




작년 겨울인가.

어느 일요일, 아이가 친구들과 모여서 할 게 있다며, 주말 하루 집을 비워 줘도 되는지 물어온 적이 있었다. “여긴 엄마, 아빠 집이지만,,,“ 되도 않는 유세를 부리며 ”허락해 줄게.“ 했다. 흔쾌히 허락하고 부부는 산에 가기로 했다. 오랜만에 산에 올랐다가 내려와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영화를 보러 갔다. ‘아이 덕분에 운동도 하고 영화도 보니까 좋구만.’


영화가 끝나고 집으로 가려는데 아이에게 톡이 왔다.

- 엄마, 아빠, 아직 안 끝났는데 좀 더 있다 들어올 수 있어? 괜찮아?


우리는 알았다고 하고는 낄낄댔다. ‘우리 집인데 들어가질 못하네.’

이번엔 차를 마시러 갔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9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더 이상 할 게 없었다.


- 하늘아, 엄마, 아빠 더 이상 할 것도 없고 씻고 쉬어야 또 내일 출근할 수 있고 하니까 이제 그만 집으로 갈게.


집으로 돌아가니 집에는 엄청난 양의 다종다양한 빵과 쿠키들이 쌓여 있었고 아이들은 포장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할 일’이 있다고 했던 것은 쿠키를 만드는 것이었다. 1년 동안 가르쳐 주신 선생님들께 드릴 거라며 포장을 하고 스티커를 붙이고 있었다. 레시피 대로 했는데 중간에 한 번 태웠다고 했던가, 한 번 실패해서 시간이 늦어졌다고 했다.

요즘 세상에 선생님들께 드릴 선물로 하루 종일 쿠키를 만드는 아이들이 있나, 잠시 생각했다.

이 아이들의 학교 생활에 선생님에 대한 믿음, 친구들과의 즐거운 추억이 있음에 감사했다.


- 이야, 선생님들 기뻐하시겠다!




최근 《경쟁교육은 야만이다》를 쓴 김누리 교수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강의 중 “고등학교는 어떤 곳이었나?”라는 제목으로 KDI(한국개발연구원)에서 한국, 중국, 일본, 미국 - 4개국 대학생들 1000명에게 설문 조사한 결과를 보여주었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답변은 예상대로였다.

- 사활을 건 전장, 80.8%.


미국과 중국은 40-42%의 아이들이 ‘전장’이라고 답변했다. 놀랐던 대목은 오히려 일본이었다. ‘사활을 건 전장’이라고 답한 대학생이 13.8%밖에 안 되고 ‘함께 하는 광장’이라고 답변한 학생들이 75.7%나 된다고?


놀라는 우리들에게 김누리 교수가 말씀을 이어갔다.


- 우리나라 사람들, 대체로 일본을 제일 우습게 생각하는데 의외죠? 우리나라에 이런 식의 근대 교육을 처음 심어 놓은 자들이 그들인데 의외죠?


김누리 교수도 이 부분이 의아하여 일본 학생, 일본 출신 학자들 만날 때마다 물어보셨단다. 일본 교육이 변화하기 시작한 지 몇 년 되었다고 한다. 일본은 교육의 방향을 유럽으로 둔 것 같다고. 학교가 많이 바뀌고 있다고 하며 이렇게 말했다는 거다.


- 한국 학생들은 친구들과 compete(경쟁)하지만 일본 학생들은 자기 꿈을 persue(추구)해요. 친구들끼리는 서로 응원해요.


한 줄의 문장에 이상적인 교육을 담고 있었다.


김누리 교수의 마지막 말씀이 마음에 남는다.


- 이런 얘기가 다 허공에 메아리친다는 걸 제가 알아요. 그래서 늘 어려운 마음으로 강의하러 나옵니다.

- 그렇지만 여기 계신 분들 중 한두 분이라도 마음을 바꿀 수 있다면 그걸로 됐습니다.


한국의 교육이 이렇게 바뀌기를 진심으로 희망하지만 아무 힘도 없는 나에게는 참으로 무겁다.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글 한 줄 남겨 놓으려고 한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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