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바람이 불어와

변화와 흔들림

by 정아라

어린이부터 어른들까지 모두가 좋아하는 아이스 브레이킹 활동이 있다.

'큰 바람이 불어와'


이 활동은 모든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동그랗게 둘러 앉으면 시작된다.

이 활동을 위해서는 참여자 수보다 의자의 수가 하나 적어야 한다.

이 활동은 자리를 계속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먼저 진행자가 마법사가 되어 '큰바람'을 일으킨다.

여기서 '큰바람'이란 해당되는 많은 사람들이 일어나 다른 자리에 가서 앉을 수 있는 그런 '바람'이다. 모두 함께 "큰 바람이 불어와!"를 외치면 원의 가운데 있는 진행자는 "신발을 신은 사람에게로!" 등을 외친다. 그러면 모든 참여자가 신발을 신었을 것이기 때문에 모두가 일어나 다른 자리로 이동해야 한다.


그런데 의자가 1개 모자라기 때문에 자리 이동의 와중에 마지막 한 사람, 즉 자리에 미처 앉지 못한 한 사람이 남게 된다. 이 사람은 새로운 '큰 바람'을 일으키는 마법사가 되어 자신이 일으키고 싶은 '바람'을 일으키면 된다.


이때 금지되는 것은 단 한 사람에 대한 저격의 성격을 지닌 '바람'이다.

참여자들 중 빨간 줄무늬 양말을 신은 사람이 단 한 명 뿐인데 "빨간 줄무늬 양말을 신은 사람에게로"라는 바람을 일으키면 빨간 줄무늬 양말 신은 사람이 자리를 바꾸기 위해 일어나야 하고 이 자리에 '바람'을 일으킨 마법사가 앉고 나면 '빨간 줄무늬 양말'이 으면서 자동으로 마법사가 된다. 마법사 되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괜찮지만 청소년들의 교실에서는 '저격'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진행자는 참여자들에게, 마법사 역할을 할 때는 소수가 일어나 자리를 옮기는 '작은바람'보다는 다수가 일어나 자리를 옮길 수 있는 '큰바람'을 일으켜 달라고 부탁한다.


남녀노소 모두 '큰바람이 불어와'를 좋아한다.




진행자인 나도 이 활동을 매우 좋아한다.

그저 간단한 놀이나 아이스 브레이킹 활동일 수도 있지만,

이 활동을 진행하면서 내가 발견하게 된 이 활동의 의미와 상징을 좋아한다.


이 활동은 '변화'를 상징한다. 변화가 일으키는 '바람' 또는 바람이 일으키는 '변화'를 상징한다.


이 활동에서는 많은 것들이 계속 바뀐다. 계속 변화한다.

첫째, '큰 바람'을 일으키는 주체가 계속 바뀐다.

'바람'을 일으키는 마법사, '바람'을 일으키는 주체가 계속해서 다른 사람으로 바뀐다.


주체가 계속 바뀌는 것은 관계 안에 많은 역동을 일으킬 수 있다. 작은 한 사람이 일으킨 작은 바람, 작은 변화는 그 자리 주변에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그렇게 작은 변화와 작은 바람이 계속 일어난다면 모임, 단체, 조직은 발전할 수 있는 계기와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다.


내가 소속되었던 공동육아협동조합, 그리고 내가 소속된 단체의 회원 조직인 공동육아협동조합들은 매년(또는 격년이 될 수도 있다) 새로운 대표를 뽑는다. 한 사람이 고정적으로 장기간 고정된 역할을 맡지 않는다. 이런 조직은 기본적으로 건강할 수밖에 없다. 변화는 작은 혼란을 불러올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그 작은 혼란을 해결하고자 할 것이고 그런 노력들은 한 발 나아가게 만든다. 어떤 역할을 경험한 구성원, 일정한 기여를 하는 구성원들이 늘어나기 때문에 나아갈 수밖에 없다.


아동돌봄공동체나 육아공동체를 지원하는 중간지원조직의 역할을 맡아 오랫동안 서울시, 경기도를 동분서주하며 다니면서 봤던 최고의 공동체는 이런 곳이었다. 큰 규모의 공동체는 아니었지만 매해 공동체의 대표를 제비 뽑기로 뽑는다고 했다. ㅎㅎㅎㅎㅎ 모두가 상당한 역량을 갖고 있어야만 가능한 형태다. 누가 해도 잘할 수 있다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만 가능한 형태다. 최고!


둘째, 이 활동은 '고정된' 내 자리가 없다. '내 자리'가 계속 바뀐다.

이러한 자리바꿈은 사람들에게 다른 자리에 서 보게 한다.

드라마 송곳의 명대사가 있다.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우리는 흔하게 다른 사람 입장이 되어 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바꿀 수 없기에 살면서 생긴 생각도 바뀌기 어렵다. 자기 자리에서 생각하는 일정한 ‘편협함’이나 ‘편견’을 뛰어넘기 어렵다.


게다가 나는 머릿 속 생각을 바꾸는 것이 자신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고 믿지는 않는다. 그 시작점이 될 수는 있겠지만. 몸으로 행한 것만이 진짜 자신의 것이 될 수 있고 그만큼만이 자기 자신일 뿐이다. 행동한 만큼, 실천한 만큼만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긴 말이 필요 없다.

그냥 진짜로 자리를 바꿔 보면 상대방의 입장은 저절로 알게 되고 이해된다.

'내 자리'를 바꾼다는 것, '내 자리'가 바뀐다는 것을 그런 의미이다.


서는 곳이 달라지면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

다른 풍경을 볼 수 있으면 관점이 바뀌고 사람이 바뀔 수 있다.


셋째, 마찬가지로 이 활동에서는 '옆 사람'이 계속 바뀐다.

이 활동을 아이스 브레이킹 활동으로 즐기는 이유 중 하나는 옆 사람이 계속 바뀌기 때문이다. 바뀔 때마다 옆 사람과 인사를 나눌 수 있어 좋다.


옆 사람이 계속 바뀐다는 것은 계속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뜻이다. 한 사람을 기준으로 할 때 관계가 넓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을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출발점이다.


그래서일까?

문득 떠오르는 건 내가 정말 복받은 사람이었다는 것. 늘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을 했다는 것은 정말 복받은 일이다. ㅎㅎㅎ

내 세계를 조금씩이라도 넓혀가게 해 준 것은 이렇게 만난 새로운 분들이었다고 믿는다!


넷째, 이 활동은 수평적 관계 형성, 수평적 (학습) 공동체 형성의 출발점이 된다.

진행자는 맨 처음 활동의 방법을 안내하고 나면 참여자로 돌아간다. 그리하여 이 활동에서는 모두가 수평적으로 만나 함께 몸으로 공부하는 학습공동체 형성의 시작이다.


혹시 그렇게 자꾸 바뀌는 공동체나 조직은 너무 혼란하지 않은지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한 사람이 고정적으로 장기간 어떤 역할을 하는 모임이나 단체, 조직으로 '고인 물'이 되고 '썩은 물'이 이 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고인 물'과 '변화로 혼란한 공동체' 중 하나를 택하라면 후자다.


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그 바늘 끝을 떨고 있다.

여윈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그 지남철은

자기에게 지니워진 사명을 완수하려는 의사를

잊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며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서 좋다.

만일 그 바늘 끝이 불안스러워 보이는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이미 지남철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1)



주1> 신영복, 《담론》, 2016, 돌베개.




글에 들러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새로운 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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