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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 May 11. 2022

아빠와 문화센터 다니면 생기는 일

부부 공동육아

아이는 30개월부터 공동육아어린이집에 다녔다. 마루치(아빠 별명)는 아이와 문화센터 다녀보는 것이 버킷 리스트 중 하나라고 했다. 때는 아이 약 25개월. 어린이집 가기 전에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마루치는 문화센터에서 등록하고 왔다. 제목도 너무 세련된 “뮤직가튼”과 “오감발달놀이”.


엄마인 나는 아침 일찍 출근하는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남편 마루치는 오후 출근 스케줄이라 오전 문화센터 다니기엔 최적이었다. 그는 아이와 함께 아침을 먹고 천천히 준비해 문화센터로 간다. 당시 아빠와 함께 문화센터에 오는 케이스는 우리집 부녀가 유일했던 모양이다.


- 자, 아이를 태우시고 엄마들은 썰매를 끌어 주세요! 


하다가 마루치와 눈이 마주치면 급 당황하는 문화센터 선생님.

 

- (황급히) 네네, 아빠도 끌어 주세요! 


- 자, 엄마들은 노래를 해 주시고요, 아가들이 따라할 수 있도록 이렇게 율동을...


하다가, 또 마루치와  눈이 마주치면,


- 네, 아빠도 노래해 주세요! 


마루치는 괜찮은데, 문화센터 선생님이 자꾸 아빠도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가 눈 마주칠 때마다 아차, 하며 당황하신 모양이다. ㅎㅎ 아빠와 문화센터를 다니면 생기는 일. 문화센터 선생님을 당황시킨다. ㅋㅋㅋ 그러나 문화센터 선생님도, 그리고 문화센터의 다른 양육자들도 자각할 필요가 있다. 문화센터에 아빠와 올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너무 쉽게 양육자로 엄마만 호명할 것이 아니라 아빠도 호명해야 한다는 걸 말이다.

 

마루치는 알록달록한 꽃무늬 기저귀가방을 들고 다녔다. 육아에 진심인 아빠를 격려하는 차원에서 기저귀가방을 점잖은(?) 걸로 바꿔 줄까, 물었었다.


- 어차피 남들한테야 남자가 아이 데리고 문화센터 다니는 거 자체가 낯설겠지, 가방이 문제겠어?


아빠와 문화센터를 다니면 생기는 일. 아빠가 꽃무늬 가방도 들고 다닐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암튼 마루치는 꽃무늬 기저귀가방을 들고 신나게 아이와 문화센터를 다녔다.


아이와 문화센터에서 놀고 나면 문화센터 앞의 식당에서 아이와 종종 점심을 먹은 모양이었다. 꽃무늬 기저귀가방을 들고 딸아이를 데리고 식당에 들어가 어린 딸과 아빠가 함께 밥을 먹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달랑 밥 하나 시켜 아이와 둘이 먹는데도 식당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그렇게 잘해 주더란다. 찌게 하나 시켜 먹었을 뿐인데 종종 계란후라이를 공짜로 얻어 먹었다고. 나는 아이와 둘이 식당에 가서 공짜 계란후라이를 얻어 먹은 적이 없는데 아빠와 아이의 조합은 왜 계란후라이를 막 주고 싶을까. 엄마가 없거나 엄마의 보살핌을 못 받는 아이인 것으로 생각해 안타까워 보였을까? 아이 데리고 온 아빠가 자상하고 기특해 보였을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궁금하다. 아빠와 문화센터를 다니면 생기는 일이 또 있다! 공짜 계란후라이가 생긴다!


마루치는 급기야 문화센터에서 동네 아이 엄마와 아이들과도 사귀게 되었다. 같이 오감발달놀이 다니는 친구 중에 위층 사는 아이가 있다나? 그해 눈이 오는 겨울, 위층 아이 둘과 하늘이가 같이 놀이터에서 눈놀이하는 사진을 보내 오기도 했다. 동네 애들 이름을 줄줄 꿰면서 A는 위층 첫째, B는 위층 둘째, C는 오감발달놀이에서 만난 오빠,,, 사진으로 소개해 주기도 했다. 가끔 위층, 아래층 아이와 엄마들을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나보다도 친근하게 익숙하게 인사하는 모습이 낯설기도 했지만 보기 좋기만 했다. 아빠와 문화센터를 다니면 생기는 일. 아빠도 동네 아이 엄마를 사귈 수 있다!


한편, 이런 일도 있었다.

하늘이가 놀이터에서 만나는 아이 중 D가 있었다. 하늘이가 “예뻐!” 하면서 따라가 기습적으로 뽀뽀를 하려는 것을 마루치가 더 기습적으로 순발력을 발휘해 철벽을 쳐(?) 막아 주었다고 한다.

그 날 밤, 마루치는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했다.


- 쟤가 큰일나겠어. 남자애를 따라가서 뽀뽀를 하려고 막 들이대더라고… 내가 막았지만…

- 푸핫. 그랬어? 뭐라고 얘기하면서 막았어?

- “하늘아, 엄마 아빠한테 뽀뽀하는 건 괜찮은데 친구들한테는 '뽀뽀해도 돼?' 물어보고 하는 거야.” 했지.


우와!!!!!! 이 날은 나의 육아일기에 아빠가 이제 갓 두 돌이 지난 아이에게 성교육을 시작한 날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나는 진심으로 가르친(?) 보람이 있다고 느꼈다. 이건 바로 내가 연애 시절에 종종 마루치에게 했던 대사였기 때문이다.


- 여자도 마찬가지지만, 난 여자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손 잡고 뽀뽀하고 멋대로 하는 남자, 하나도 멋지지 않아. 그러니 나에게 스킨십을 하고 싶으면 물어보고 동의를 구했으면 좋겠어. 


아빠와 문화센터를 다니면 생기는 일. 딸이 좋아하는 친구를 질투하게 된다. ㅎㅎㅎ 하지만 마루치는 처음엔 나 같은 여자가 처음이라, 낭만이라고는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던 바로 그것 - 스킨십을 할 때는 상대방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 - 을 절실하게 느꼈을 것이다. 아빠와 문화센터도 다니고 놀이터도 다니니 좋은 일이 참 많았다. 아빠가 아이 성교육도 할 수 있다는 건 한 번도 상상조차 해 보지 않았던 소득이었다. ㅎㅎ



무엇보다도 좋은 건 아이가 아빠의 돌봄을 점점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어떤가 하면,,,, 아이가 사춘기를 지나간 지금도, 아이와 아빠는 조잘조잘 시시콜콜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좀 더 크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때에 따라 소원해지는 시기가 올 수도 있겠지만 어릴 때 함께 보낸 시간들은 아이 정서와 마음 어딘가에 새겨져 있을 거라 믿는다. 그리고 아이에게는, 완벽하게 척하면 척 욕구를 채워 줄 수 있는 엄마만의 돌봄보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고 때론 좀 울더라도 부모 둘 다와 관계를 맺고 돌봄을 받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고 믿는다. 아이가 엄마만 찾고 눈물을 보일 때, 마음이 약해지려고 할 때마다 속으로 되뇌었던 말이 있다. "조금 울어도 아빠다, 아빠다, 아빠다... 아이에게는 아빠도 필요한 거야."




※ 표지 사진 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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