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만남>의 시간

by 정아라

24년 12월 31일.

인생의 커다란 하나의 순환을 마쳤다.


25년 1월 1일.

아이가 스무 살이 되었다.


24년 12월 31일에서 25년 1월 1일로 나아가는 시간. 아이는 처음으로 부모가 아닌 친구들과 한 해의 마지막을 보내고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을 맞이했다.

첫 번째 사로잡힌 감정은 홀가분함이 아니라 서운함이었다.


아, 이제 곧 떠나가겠구나. 흔쾌히 보내주어야 한다.


마음을 다잡는다.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기 위해 세상으로 걸어 나가는 아이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부모는 되지 않을 것이다.


요 며칠 냉장고에 15년째 붙어 있는 박노해의 시를 계속 다시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니 내 아이를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유일한 것은

내가 먼저 잘 사는 것, 내 삶을 똑바로 사는 것이었다

유일한 자신의 삶조차 자기답게 살아가지 못한 자가

미래에서 온 아이의 삶을 함부로 손대려 하는 건

결코 해서는 안 될 월권행위이기에


나는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자 안달하기보다

먼저 한 사람의 좋은 벗이 되고

닮고 싶은 인생의 선배가 되고

행여 내가 후진 존재가 되지 않도록

아이에게 끊임없이 배워가는 것이었다


- 박노해, 〈부모로서 해 줄 단 세 가지〉 중에서


그럼에도 마음이 복잡하고 혼란했다. 상실감과 목표를 잃은 느낌. 내가 정말 이렇게 살아 왔나. 무언가 후회가 남는 기분. 엄마인 나는 아직 더 많이 성장해야 하는데 그만 아이가 떠나갈 때가 되어 버린 기분.


그러던 중 운명처럼 지담님이 발견되었고(!) <엄마의 유산>을 읽게 되었다. 텍스트 중독자라 늘 영상보다 글을 많이 읽는다. 논문 준비 중이라 매일 글을 읽는다. 그런데 그렇게 읽는 수많은 글 중에 이렇게 가슴을 뛰게 한 글이 있었던가.


'이런 글은 처음이다. 여기는 가야 한다!'


일정이 있는 날이라 무리임을 뻔히 알면서도 무언가에 홀린 듯 만남의 시간을 신청했다.

그렇게 합류한 자리, 지담님에게서 거대한 에너지를 느꼈다. 말과 삶을, 글과 삶을 일치시키고자 하는 분의 아름다운 영혼이 보이는 것 같아 감동을 받았다. 글의 팬이었는데 진짜 팬이 되어 버렸다.


'아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다.'


곧 마음에 박히는 지담님의 질문들을 마주했다.


“그렇게 바쁘게 달려간 길의 끝에 무엇이 있나요?”
"해야 할 이유가 많은가요?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많은가요?”


하지 말아야 할 이유보다 해야 할 이유가 많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깨어 있는가. 나는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인가.

수많은 질문들이 다가왔고 머릿 속이 더 복잡해지는 듯했다.

하지만 생각 속에서만, 머리 속으로만 해답을 찾지는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하면 된다. 쓰면 된다. 그렇게 살고자 하면 된다.


내가 명심할 말이 하나 더 있다.

“감정이 격할 때 하는 결심, 그 감정 사라지고 나면 잊힌다오.”(주1)


※ 주1>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박우수 옮김, 2010, 《햄릿》, 열린책들, 110쪽.

※ 커버 이미지 출처: 김주원 글, 정근아 그림, 2024, 《엄마의 유산》, 건율원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