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그대로 2

시간이 멈췄다

by 아라온

걷는다. 학교에서 집까지 오가던 길을 따라간다. 재개발 열풍이 이곳에는 아직 몰아치지 않았다. 검붉은 벽돌의 3층 주택들이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다. 덕분에 골목도 살았다. 머릿속 그려지던 그 길을 마주한다. 완벽한 기억 여행이다.


"XXX, 바보!"

2층 속셈 학원 창밖으로 C가 소리친다. 올려다보며 눈을 흘기지만 입에서는 웃음이 새어 나온다. C도 씩 웃는다. C가 말한 '바보'가 정말 '바보'가 아니었던 것을 성숙했던 나는 그때 이미 알고 있었다.


시장을 거쳐 집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동네마다 중대형 마트가 들어선 지금과 달리 그때는 동네마다 시장이 있었다. 엄마는 그 날 저녁 먹을 것은 그 날 샀다. 덕분에 매일 같이 시장에 갔다. 엄마와 동생과 함께 시장에 가는 게 좋았다. 미로 같은 시장 골목을 돌며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가끔은 엄마가 떡볶이와 어묵을 사준다는 것이었다.


6학년 때 즈음 시장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과일, 생선, 정육, 채소 등등을 모두 한 곳에서 살 수 있는 마트가 시장 초입에 들어선 것이다. 상인들이 좋아했을 리 없다. 초입에 생긴 마트에서 모두 장을 보고 시장으로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마트로 인해 시장 상인들이 정말 타격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그때 그 마트도, 시장도 모두 살아있다. 시장은 천장만 새로 생겼을 뿐 원래 가지고 있던 길은 그대로다. 덕분에 헤매지 않고 출구를 찾는다. 놀랍게도 ㅅ슈퍼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100원, 200원이 생기면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러 부리나케 달려갔던 곳이다. 간판을 새로 달고 '슈퍼'라는 이름을 버리고 '할인마트'라는 이름을 새로 달았다. 이름을 바꾸고 그 자리를 지켜 준 슈퍼가 반갑다.


슈퍼를 끼고 오른쪽 골목으로 쭉 걸어 올라간다. 그 시절의 미용실과 세탁소가 그 자리에 있다. 세탁소 맞은편에 전에 없던 10층 남짓한 아파트 한 동이 들어서 있다. 좁은 골목에 들어선 아파트가 조금은 생뚱맞다. 슈퍼에서 집까지 이어진 골목이 생각보다 짧다. 살던 집에 점점 가까워진다.


ㅅ빌라가 보인다. 지하 1층, 지상 3층의 건물이다. 당시에는 신축빌라로 주변 집들보다는 높은 건물이었다. 그곳 302호에 살았다. 거실 겸 방이었던 곳에서 창문을 열고 밖을 보면 ㅅ슈퍼까지 이어진 길이 시원하게 한눈에 들어왔다. 옥상은 우리 가족에게 마당이었다. 주말이면 근처에 사는 이모네 식구들과 함께 고기를 구워 먹었다. 또래였던 이종사촌들과는 공기놀이를 하거나 '007 빵', '제로' 같은 시답지 않은 게임을 질리지도 않고 했다. 뭐가 그리 재미났는지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고 매주 보지 않으면 너무도 서운했다. 그런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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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어린이도 담배를 살 수 있었다. 아빠는 500원을 주고 '솔'담배를 사 오라고 시켰다. 어릴 때는 잠깐이라도 나가는 게 좋았거나 아니면 심부름이 재미있었나 보다. 군말 없이 재깍 뛰어나가 담배를 사들고 왔으니 말이다. 5학년 때 즈음부터 심부름하는 게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밖이 무섭다'는 방패를 사용하기도 했다. 자연스레 집안의 모든 심부름은 동생 차지가 되었다.


아빠의 '솔'담배를 주로 사던 동네의 조그마한 슈퍼는 문을 닫았다. 시장 끝에 있는 것도 아닌 주택가 깊숙이 자리한 슈퍼가 20년을 버티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그 슈퍼 옆에 친구 J가 살았다. 회색 벽돌로 지어진 J의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빌라가 들어섰다.


빌라를 허물고 다시 J의 집을 세운다. 비가 오던 어느 날이다. 그 친구의 집에서 같은 책상에 앉아 숙제를 한다. 마당으로 떨어지는 비를 볼 수 있는 그 친구의 낡은 집이 그 날은 좀 부러웠던 것 같다.


이모의 신혼집은 J의 옆 옆집이었다. 그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3층 다세대 주택에 살았다. 이모는 그곳에서 아들 둘을 낳았다. 우리 가족보다 먼저 그 동네에 살았고 우리 가족보다 나중에 그 동네를 떠났다.


말발굽 모양의 골목을 돌아 나온다. 주일이면 아침과 오후에 두 번씩 다니던 ㅅ교회가 보인다.


친구 ㅅ이 운다. 당혹스럽다. 왜 우는지 모르겠다. ㅅ이 울면서 말한다.

"너랑 같이 교회에 가고 싶어"

그렇다고 울 것까지야 생각을 하면서도 거절할 수가 없다. ㅅ은 전학 와 처음 사귄 친구였기 때문이다. 일요일 아침에 TV를 포기하고 친구를 따라나선다.


그렇게 친구 따라 다니게 된 ㅅ교회를 그 친구가 이사를 간 후에도 계속 다녔다. 그 동네를 떠날 때까지 쭉.



신기하고 이상하리만치 이 동네는 그대로다. 대부분의 건물이 고목처럼 동네를 지키고 있다. 마치 드라마 '응답하라 19XX'의 세트장처럼 추억을 선물하기 위해 남겨둔 것만 같다. 골목을 거닐며 낡은 건물에서 세월의 때를 거두었다. 머릿속 장면들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여기저기에서 어린 내가 보였고 더 어린 동생이 보였고 친구들이 보였고 지금의 내 나이 즈음이었을 엄마와 아빠가 보였다. 더욱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어 졌다. 그때의 모든 것을 생생하게. 그래서 욕심이겠지만 20년 후 즈음에 다시 와도 이 동네가 그대로였으면 좋겠다.


'ㅅ동 재개발 계획을 즉각 시행하라'

현수막이 펄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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