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그대로 1

풍경이 살아있다

by 아라온

노량진 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탄다. 밖으로 나가야만 했던 노량진 역 환승이 실내 이동으로 가능해졌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간다. 실내에서 실외로 나온다. 동인천행 급행열차를 타는 플랫폼에 선다. 여행을 떠나기 전의 설렘이 벌써부터 밀려온다. 변하지 않은 노량진 1호선 역사가 스무 살 즈음을 생각나게 한다. 급행열차를 타고 통학하던 새내기 시절이 떠오르는 것이다. 학교에 지각을 할까 봐, 집에 가는 막차를 놓칠까 봐 오르내리던 계단에 나와 친구들이 있다.


"동인천행 급행열차가 들어옵니다."

대낮의 급행열차는 한산하다. 그때라면 잽싸게 뛰어올랐을 열차에 느긋하게 올라 햇살이 따뜻하게 쏟아지는 쪽 의자에 앉는다. 지상을 달리는 1호선은 밖을 볼 수 있어 좋다. 한때는 꽤 익숙했던 풍경을 바라보다 잠이 든다. 기억 열차를 타고 시간을 거꾸로 달리는 것만 같다.


다음 역은 ㄷ역이라는 방송에 눈을 뜬다. 곧 ㄷ역에 도착한다니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유년시절의 기억이 가장 많은 곳이다. 국민학생이 중학생이 될 때까지 4년 정도를 그곳에서 자랐다. 친구와 어울려 놀기 좋아하는 즈음의 나이를 그곳에서 보낸 것이다. 마침내 ㄷ역이다. 열차의 문이 열리고 기억 여행은 시작된다.



ㄷ역사는 새 단장을 했다. 이름과 위치를 빼면 예전과 같은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세월이 많이 지났지..'생각하며 역사를 빠져나오다 그만 숨이 멈칫한다. 다니던 학원이 그대로 있다. 역사를 나오면 바로 보이는 그 외국어 학원이 이름도 바뀌지 않고 그대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순간 ㄷ역사 주변이 25년 전으로 돌아간다. 옴파로스와 카운트다운이 있고 롯데리아와 한솥이 보인다.


학원에 가기 전 롯데리아에서 친구들과 1900원짜리 데리버거 세트를 먹으며 수다를 떨던 기억이, 한솥에서 990원짜리 콩나물 비빔밥을 먹던 기억이 낡은 건물에 겹친다. 외국어 학원의 '미즈 조' 선생님도 생각난다. 아담한 키에 가는 컬의 긴 파마머리를 하고 금테 안경을 쓴 그녀는 미국 유학파였다. 영어와 미국 문화를 재미나게 가르쳐 내 영어실력의 근간을 형성해 준 고마운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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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주변을 빠져나와 국민학교로 간다. 언덕길이다. 개나리가 폈을 때 그 길을 함께 걷던 친구, ㄱ이 불쑥 떠올라 가는 길이 지루하지 않다. 오른편에 목욕탕이 보인다. 그때의 그 목욕탕이 있다. 같은 반 친구였던 ㅇ네가 하던 목욕탕이었다. 아직도 그 친구네가 하고 있을까 모르겠지만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마냥 반갑기만 하다.


골목이 좁아졌다. 그때는 꽤 넓다고 생각했던 동네의 골목이 좁디좁다. 노점이 늘어섰고 마을버스가 다녀서인지도 모르겠다. 북적한 골목을 가로질러 학교로 간다. 학교는 비탈길의 가운데에 있다. 올라가는 쪽에서 보면 그래서 학교는 높은 곳에 있는 듯하다. 비탈길 오른편에 늘어섰던 문구점과 분식점은 많이 사라졌다. 한두 개가 남아 겨우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마침내 학교다.


스탠드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운동회를 할 때면 전교생이 반별로 앉아 있던 곳, 하교 후에는 친구들과 앉아 이야기를 하던 곳, 가끔은 노는 중학교 언니들이 찾아와 겁을 주던 곳이다. 사진을 찍자 경비 아저씨가 다가온다. 어떻게 오셨냐고 묻는다. 지금이라면 그 시절 노는 언니들은 학교에 들어오지 못했을 것이다.


졸업생임을 밝히고 이 자리에서 운동장 사진만 찍겠다고 말한다. 4층 건물이 5층이 되고 정글짐과 구름다리가 있던 자리에는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다. 변한 것은 그것뿐이다. 운동장은 여전히 운동장이다. 그곳에서 뛰놀던 기억이 흐른다. 점심시간에 고무줄을 하고, 체육시간에 오리걸음을 하다 넘어지고, 운동회 연습을 하고, 좋아하던 친구가 축구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내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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