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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a Mar 07. 2020

사랑받고 있어요

사람 만나는 걸 싫어하는 사회성 없는 사람이지만, 바깥공기와 걷기를 좋아하는 나는 외출을 좋아한다. 할 일이 없어도 괜히 동네를 기웃거리고, 도서관에서 다 읽지도 못할 책을 한가득 빌려오고, 맛있는 반찬집/빵집 찾기를 보물 찾기처럼 즐긴다. 이런 나에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집콕 생활은 말 그대로 창살 없는 감옥이 되었다.


우울한 날의 연속이었다. 어제는 왠지 더 우울했다. 망가진 일상 때문에 억울했고, 앞으로의 미래가 걱정되었고, 밖에 나가지 못해 답답했다. 집콕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먹을 것으로 풀어서 인지 집콕 스트레스 자체 때문인지 속이 계속 안 좋았다. 집에만 있어 운동량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아 마스크를 끼고 동네를 열심히 돌아 매일 걸음수 만보를 채우고, 핸드폰 앱에서 무료로 제공해주는 홈트레이닝을 격일로 했다. (4일밖에 안 하기는 했지만) 우울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남편에게 외출을 할 수 없어 답답하다고 하니, 자기 일정을 취소하고 같이 놀러 가자고 했다.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니기 힘들지만 집에만 계속 있어서 생긴 마음의 병이었으니, 집을 나가야 했다. 고민 끝에 찾은 곳은 남산. 대학생일 때 을지로입구역 근처에서 인턴을 잠깐 했었는데, 점심 때면 남산쪽에서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곤 했었다. 회사 자체에 대한 좋은 기억은 없지만 (오늘 깨달은 것: 나는 조직에 속해서 일을 재밌게 한 기억이 없는 것 같다) 이런 소소한 것들이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그 당시 좋아했던 '목멱산방'이라는 음식점을 가기로 했다. 음식점이 남산공원 내부의 예쁜 한옥집에 있었던 걸로 기억하고 찾은 것이었는데, 도로변에 있는 벽돌 건물로 옮겨져 있는 걸 보고 조금 실망했다. 주차할 공간이 없어 나만 브레이크 타임인지 물어보려고 내렸다 (오는 길에 미리 전화를 해서 물어보려 했지만, 전화는 받지 않으셨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2시반쯤으로  홈페이지에 브레이크 타임이라고 적혀있는 3시가 거의 다되었었지만, 가게직원분은 친절하게 식사가 가능하다고 말씀해주셨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주차장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몇 분 뒤, 남편은 마스크 때문에 숨이 찼는지 헉헉대며 식당에 도착했다. 점심이라고 하기에는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인지, 코로나 때문인지 식당에 우리만 있었다.


정갈한 '목멱산방' 비빔밥. 비빔밥을 즐겨먹지 않는 남편도 좋아했다. '목멱'은 남산의 옛이름 이라고 한다.


깔끔한 한식을 먹고 나니 더부룩했던 속이 한결 편해졌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명동성당 지하상가에 있는 르빵이라는 베이커리에 가보기로 했다. 이 근처에 참 많이 왔었는데, 지하는 처음 들어와 본 것 같다. 아기자기하게 예쁜 지하상가였다. 르빵의 대표 빵인 밤식빵과 맘모스빵은 다 팔리고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크로와상, 식빵, 꽈배기 2개와 팥빵을 구매했다.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을 약간 헤매었지만, 헤매는 시간까지도 행복했다. 바깥공기를 남편과 함께 마시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한껏 들떴던 시간. 아쉬워하는 나를 보고 남편은 남산공원에도 잠깐 들렀다 가자고 했다. 나의 만보 트래커는 만 오천보를 넘어가고 있었고 다리가 조금 아팠지만 남산공원을 포기할 수 없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남산공원도 텅 비어있었다. 사람이 없는 산책로에서 잠깐 마스크를 벗고 상쾌한 공기를 왕창 들이마셨다. 답답했던 머릿속이 깨끗해지는 느낌이었다. 금요일 오후였음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막히지 않았다. 르빵에서 사 온 빵을 집에 와서 먹어보니 특별한 맛은 없었지만, 그곳에 다녀왔던 기억을 떠올리며 즐겁게 먹었다. 힐링할 수 있는 짧은 나들이였다. 무엇보다 남편이 나를 무척 많이 사랑하고 위한다는 걸 또 한 번 느낄 수 있는 예쁜 시간이었기에, 큰 힘이 되었던 시간.


텅 비어있었던 남산 산책로.

                 

코로나 사태가 어서 진정되어서 엄마 집에도 자주 가고, 번역 학원 수업도 가고, 마스크 없이 산책하고, 봉사활동도 시작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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