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 동안 기침이 지속되었다.

암환자가 되기까지 1

by 영원


봄이 참 좋았다. 꽃이 피면 마음이 피어났다. 어떤 날은 흩날리는 벚꽃잎 따라 마음도 흩날렸고 어떤 날은 마음이 풍선처럼 퐁퐁 날기도 했다. 그렇게 분홍빛이던 나의 봄은 언젠가부터 미세먼지로 뒤덮였다. 퐁퐁 날던 마음은 바람 빠진 풍선이 되어 한없이 가라앉기만 하던 2016년 봄. 2년째 중3 담임을 맡게 되었다. 봄이면 설레던 마음은 지고, 봄을 알리는 비염인지 감기인지가 스멀스멀 시작되었다. 나이 앞 자리가 바뀌면서부터는 늘 그랬다. 개학과 동시에 말을 많이 하니 목이 극도로 아프다가 콧물이 많아지고, 더 심해지면 몸살까지 거의 매년 빠짐없이 이 단계를 거쳤다. (아직 안 걸려서 모르겠지만 코로나 증상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늘 골골하지만 사주를 보면 벽에 그림을 그릴 때까지 오래 살 팔자라니, 골골 백 세라며 친구들과 가벼이 깔깔거렸다.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더 특별할 것은 없고 그저 목이 아프고 콧물이 나서 꾸준히 이비인후과를 다녔다. 감기가 하도 낫지를 않아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며 약을 지나치게 꼼꼼하게 챙겨 먹은 어느 날 탈이 나고야 말았다. 약 부작용인지 독한 콧물약 과다 복용 때문인지 빈 속에 약을 먹었다가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온몸에 힘이 빠져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조퇴를 하고 싶었지만 학부모님과의 진로 상담이 예정되어 있던 날이었다. 비몽사몽 간에 상담을 마치고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리운전을 불러 퇴근을 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은 다른 내과를 찾아 갔는데 접수처의 간호사가 날 보더니 벌떡 일어섰다.

-선생님!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원래 사람 얼굴은 잘 기억하지는 못하는 편인데 그즈음 몸상태 때문에 더더욱 누구인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저 어제 상담한 k 엄마.

-아, 제가 어제 사실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죄송해요. 상담을 어떻게 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어쩐지 상태가 안 좋아 보이시더라고요.

음. 상태가 안 좋아 보였나 보다. 설마 학부모님께 헛소리를 해댄 건 아니겠지. 잘못 왔다. 어머님은 엄청난 친절함으로 환자로 간 딸의 담임을 응대했지만 나는 또 병원을 옮겼다. (교사와 학부모님의 관계는 이런 것이다. 서로에게 호의적이지만 편하지는 않은 관계. 예전에도 트레이닝 센터 탈의실에서 학부모님을 만난 이후 즉시 센터를 끊었었다.)


심한 감기 증상은 사라졌지만 기침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루 종일 기침을 하지 않다가도 잠들기 전 '이제 다 나았네. 기침이 안 나오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면 어김없이 기침이 나왔다. 마지막까지 눌어붙어 떼어지지 않는 테이프 자국처럼 들러붙은 기침은 귀찮았지만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주진 않았다. 그 문구를 보지 않았다면 더 이상 병원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학교 엘리베이터에 붙어있던 '2주 이상 기침하면 결핵검사'라는 내용의 포스터 문구였다. 결국 7월 초쯤 또 다른 병원을 찾아갔다. 기침을 몇 달째 한다고 말하니 엑스레이를 찍어보자 했다. 돌이켜 보면 한 달 이상 기침을 한다고 했는데도 왜 어떤 병원에서도 엑스레이 한번 찍자는 말을 안 했을까. 내가 너무 젊어서? 너무 건강해 보여서? 모르겠다. 의사 선생님은 엑스레이 사진을 보자마자 '폐에 뭐가 보인다. 큰 병원에 가보라.'라고 했다. 이 말은 살아가는 동안 들은 가장 충격적인 말 중 하나였다. 하필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혹시 병원에 가게 된다면 절대 금요일에 가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 주말에 지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다시 떠올려도 가장 고통스러운 날은 바로 그 '큰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들었던 때이다.


폐와 관련된 질병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기흉, 폐렴, 결핵, 폐암. 아직 이렇게 젊은데 '암'인가? 결핵일 수도 있겠지. 결핵이면 학교가 난리가 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암보다 나은데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아직 어떤 진단도 받지 않았는데도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고 했다. 질병 때문이 아니라 불안함 때문에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월요일이 되자마자 우리 동네 H대학병원에 예약을 하여 가장 빨리 진료가 되는 교수님을 만났다. CT를 찍었는데도 명확한 진단이 내려지지 않았다. 폐에 구멍이 있는데 태어났을 때부터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러고는 폐렴 약을 잔뜩 지어 주었다. 약을 부지런히 먹었으나 기침은 사라지지 않았다. 기침 외에 어떤 증상도 없었다. 폐렴이라면 이렇게 건강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 병원에서 호흡기내과로 안내하시는 분이 노골적으로 이 교수님 말고 다른 교수님으로 바꾸어 진료볼 것을 권했다. 어르신들의 말씀을 새겨들었어야 했다.

당시 나는 이러한 경험이 처음이었다. 부모님도 건강하셨고 특별히 가족 중 아픈 사람이 없었기에 병원 예약에 관해 무지했었다. 마음이 지옥인지라 H병원 전화상담사분이 유명한 교수님은 최소 한 달 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무조건 빠른 교수님으로만 예약을 진행했다가 시간만 버렸다. 조금 더 알았다면 그때 시간이 걸리더라도 처음부터 좀 더 유명한 교수님에게 예약을 했을 것이다. 전원한 지금 병원에서는 호흡기에서 흉부외과로 다시 종양내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친절하고 훌륭한 교수님을 운 좋게 만났다. 그러나 대학병원의 특성상 한번 교수님이 배정되면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조급하고 힘들겠지만 일단 많은 분들의 신뢰를 받는 교수님을 선택해서 예약하기를 권한다. 전화 예약만 되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대부분의 병원에 홈페이지에서 초진 진료예약이 가능하다. 처음에는 원하는 날짜가 없을 수 있지만 수시로 병원 사이트에 접속하여 검색하면 취소되는 자리가 나오기도 하니까 부지런히 빈자리를 찾아보면 예약을 당길 수도 있다.


아무튼 기침이 사라지지 않아 고민 끝에 동생과 의논을 했고 동생의 권유에 따라 나는 분당에 있는 병원의 가장 빨리 예약되는 호흡기내과 교수님으로 예약을 했다. 다른 교수님들은 모두 1-2개월씩 기다려야 했고 나는 단 하루도 기다릴 수 없는 상태여서 또다시 '가장 빠름'을 선택했다. '피가 마른다'는 표현 외에는 떠오르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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