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소원이 무엇이냐?
제주 사려니 숲길을 걸었다. 테크로 된 무장애나눔길은 장애인, 노약자, 어린이가 쉽게 다니도록 만든 길이라니 노약자에 해당하는 나도 놀멍, 쉬멍 여유를 즐겼다. 걷다 보면 교차로에서 길이 미로숲길과 나눔둘레길, 소망담은길로 갈라지는데 나는 고민도 없이 소망담은길로 갔다. (결국 모든 길은 다 만난다.) 아픈 이후로 소망, 소원, 기원과 같은 단어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절에 가거나 교회, 성당에 가게 되면 간절함을 마음에 꾸욱 눌러 담아 그 길을 걷거나 잠시 묵념한다.
'건강하게 오래 살게 해 주세요.' 나는 정말 오래 살고 싶은 건가? 하긴 가족력에 따르면 나는 100살까지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증조할머니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모두 구순을 넘기셨고 친가 쪽도 아버지 형제, 남매는 한 분 빼고 모두 팔순도 넘으셨다. 우리 부모님도 곧 팔십에 다가가는 중이고 건강 장수 집안의 유일한 흠이다. 내가.
아니면 완치되기를 바라는 건가? 다들 알다시피 암 사망률 1위는 폐암이고 4기 환자 5년 생존율은 8.9%이다. 뭐 이미 난 8.9% 안에 드는 환자다. 4기이다. 완치는 불가능한. 그래서 이 병을 불치병이라고 부르는 걸.
행복하고 싶은 건가? 말로 풀어내지 못한 그 소망 앞에 잠시 주춤하던 즈음, 단톡방 뜬 목사님의 말 ‘난 오래 살고 싶진 않은데 천천히 살고 싶긴 해.' 아, 이거다. 내 소망.
원래 오래 살고자 하는 욕심은 없었지만 행복하게 살기를 간절히 바랐었다. 그래, 나도 천천히 살아가고 싶다. 너무 바쁘지 않게, 조급해하지 않고, 쫓기지 않고. 그런데 그러지 못한 2020년도에 나는 다시 병을 키워가고 있었던 거였다. 초유의 코로나 사태에 최초의 원격수업 시스템 마련 업무도 쉽지 않은데 수업 방식과 시스템 선택에 대한 신구 세대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하필 그 해에 이 모든 갈등을 중재하고 풀어내야 하는 역할을 맡은 나는 총알받이가 되었다. 주말에도 칼이 된 말들이 가슴을 찔러댔고 나는 벚꽃을 보러 가서도 눈물만 흘렀다.
시간이 지나 잊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스트레스를 풀어내지 못하면 마음으로든, 몸으로든 반드시 온다. 애써 괜찮다고 빨리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몸이 기억했나 보다.
다시 소망을 생각한다. 2016년에 다짐했던 것들, 쉬엄쉬엄 대충대충 놀멍 쉬멍 살기로 했던 것. 돈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살기로. 하긴 어제도 그제도 생각했던 것들이다. 학교를 떠나면 어떨까. 보육원 봉사를 하거나 대안학교 교사를 하거나 해외 이주 여성이나 아이들을 위한 한국어 수업을 하거나 아니면 제주에 와서 아이들과 쉬멍 놀멍 하면 어떨까 하고.
내 속에 있던 생각을 한 문장으로 명쾌하게 답해 준 목사님께 감사한다. 추앙한다. 유머와 인정과 유식함과 섬세함을 겸비한 목사님이 계시어서 다행이다.
오래 말고 천천히 살자.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자.
그게 내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