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채는 그냥 유채야
몇 년 전부터 간절하게 원했던 제주 한살달이를 시작했다. 4월 1일 제주에 내려오자마자 우릴 반겨주던 것은 어딜 가나 그득그득 피어있는 유채꽃이었다. 벚꽃도 만개했지만 18일이나 지난 지금, 이미 벚꽃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 오래인데 유채는 여전히 피어 만발하다.
-왜 유채를 심었을까?
H는 목적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었다.
-글쎄. 특별한 이유가 있으려나, 제주가 유채가 자라기 좋은 환경이어서?
-이유 없이 심을 리가 있나. 다 쓰임이 있을 거야.
예쁘고 아름다우니까 심은 거 아닌가, 유채에 상업적 목적이 있을 리 없어, 아니 설령 그렇다 하더라고 그냥 지천으로 심어놓은 제주 사람들의 마음에 감사하며 즐기고 싶어. 생각하며 대화를 마무리하려다, 내 생각이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검색해 보니 유채기름이 카놀라유라는 걸 알게 되었다.
-거봐. 세상에 그냥이 어딨어?
그럼에도 동의가 되지 않았다. 어디나 어느 들판에나 지천으로 피어 만발한 유채꽃에 목적이 있다고? 아름다움 이상의 목적이? 이 많은 유채를 심어 카놀라유를 만든다고? 말도 안 돼.
제주에 오면 좋은 공기에 있던 병도 사라지고 절로 치유가 될 줄 알았더니 제주에도 미세먼지는 있고 비가 오지 않아 건조주의보가 내렸다. 표적치료제를 복용하면서 극심한 피부 건조증(건선, 각질, 곱슬, 손톱 빠짐, 손가락 쭈글거림, 햇빛 알레르기)이 생겼다. 경기도 집에서는 습도 60%을 유지 중이라 그나마 나았는데 제주집은 빨래를 매일 해서 널어도 아침이면 빳빳하게 말라버릴 정도로 건조하다. 그러다 보니 목이며 눈꺼풀은 간지러움이 너무 심해 퉁퉁 부었고 눈 아래는 마스크와 닿아선지 찢어질 듯 아프다. 며칠을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제주 시내의 피부과를 방문했다.
마스크를 내려 보라시더니 얼굴이 울긋불긋 엉망인데 화장을 했다며 꾸짖으신다.
-선크림을 발랐을 뿐인데요.
주눅이 들어 작게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보름 동안 나름 선크림도 바르고 모자도 썼는데도 팔이랑 손, 발목이 까마귀가 되어 버렸다. 한여름도 아닌데 한낮에 좀 다녔다고 이렇게 탈 일인가. 그런데 화장이라니 억울했다.
-선크림도 화장이지. 그래 놓고 클렌징한다고 벅벅 씻어대면 얼굴 더 상하고. 여기 건조증으로 오는 사람 열이면 열이 다 여자야. 왜 그런지 알아? 앞으로는 화장품 아무것도 바르지 마. 밖에 나갈 때는 모자를 써.
의사 선생님의 말투가 너무나 강해서 괜히 억울하고 혼나는 느낌을 받았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나아질 때까지 화장하지 마세요. 하며 상냥하게 웃는다.
피부과, 우리 동네 피부과는 피부 관련 질환으로 내원하는 걸 싫어한다. 지난겨울 건선으로 내원했을 때도 본원에서 처방받으라 했다. (본원에서는 동네 병원에서 받으라 했다.) 몇 년 전 손톱이 빠졌을 때도 접수처에서 쫓겨났다. 보지도 않고 큰 병원엘 가보라고. 내가 사는 신도시 피부과는 치료는 못하거나 안 하고 미용만 한다. 의사인데도 치료를 못하거나 안 하고 효과도 없는 레이저를 권한다. 아주 친절한 말투로. 레이저를 하지 않으면 접수조차 받지 않는다.
혼나고 나오는 길인데 왠지 믿음이 간다. 후기에서도 까칠하시지만 진짜 의사이시다는 내용을 보았었다. 이 느낌이구나. 신도시 피부과에서는 만나지 못한 느낌.
유채는 카놀라유를 얻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저 예쁘게 피어 꽃도 나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피부과는 미용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피부과'니까 불친절하게라도 나의 피부 질환을 치료해 주었으면 좋겠다.
덧.
찾아보니 유채는 관광이 목적이라는 글도 있고 다양한 쓰임(먹을 수 있고 카놀라유나 꿀로도 만들 수 있어서) 때문이라고.